네 손을 내밀라 제 2 장 중보적 치유의 기적들 기적 3 ►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하소서
 “가라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106.3)
 백부장이 믿은 것은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는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에 마비됐던 하인의 손발에 새로운 생명력이 돌아왔고 언어 장애(言語障꾜)가 풀렸다. 백부장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그가 믿은 대로 종은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고 이미 강건해져 있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하인을 감싸고 있었다. 놀랍게도 주님의 치유의 능력은 거리에는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역사하였다. 그분은 직접 보거나 만지지 아니하고도 멀리서 말씀으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셨다. 오늘날도 시공을 초월하시는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106.4)
 백부장의 믿음으로 하인이 나음을 입었다. 중보적 치유의 경우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생각해 주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보고도 주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중보적 치유의 은사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간구해야 한다. (106.5)
 그러면 백부장이 주님의 은총을 입어 하인의 병이 나은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106.6)
 거기에는 중요한 몇 가지의 동인(動因)이 있었다. (106.7)
 첫째, 이방인이요 이방인 교육을 받은 로마 백부장은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는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여 믿었다. (106.8)
 둘째, 백부장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달았다. 자기와 같은 죄인이 감히 어떻게 주님을 집에까지 오시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을 낮추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이다. (107.1)
 셋째, 주님께서 집에 오시는 수고를 하지 않으셔도 다만 말씀만 하시면 자기의 종이 낫겠다는 믿음을 가졌다.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와 같은 믿음에 주님께서 놀라신 것이다. 바로 그러한 믿음을 본 주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우리 마음에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잉태하여 분출돼 나올 수만 있다면 분명히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유대 장로들은 백부장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사실 하인이 나은 것은 백부장의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은 결코 의로운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라고 했다. (107.2)
 오늘날 우리는 가버나움에 살았던 백부장의 믿음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주님께서 일단 말씀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고 실제로 주님께 그렇게 고백했던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관습을 깨고 하인을 지극히 사랑했던 백부장의 인간애(人間愛)에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가졌을 뿐 아니라 자기 종에 대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을 가졌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방인과 유대인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던시대에, 그리고 종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짐승처럼 생각하던 시대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훌륭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과 인간애를 배워야 한다. (107.3)
 또한 당신을 항상 트집잡는 장로들이 요청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으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할 때에 많은 교훈과 감동을 받는다. 그러므로 항상 괴롭히고 손해를 끼치는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만일 도움을 요청한다면 개의치 않고 기꺼이 도와 주는 것은 예수님의 정신이다. 사도 바울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고 하였다. (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