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제 2부—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과 일요일 제11장—종교개혁 시대의 안식일과 일요일
 안식일과 일요일의 문제를 둘러싼 좀더 진전된 공개 토론은 칼빈이 제네바 개혁사업에 동참한 이후인 1536년 10월에 로잔느(Lausanne)시에서 이루어졌다. 이때도 역시 파렐이 프로테스탄트측의 대표적 토론자로 나섰으며 비 레트가 조언자로 파렐을 도왔다. 가톨릭측은 도미니쿠스파 수도자인 도미니크 데 몽부송(Dominique de Monbouson)이 대표했다. 이때도 문제는 카톨릭교회가 성경에 관계없이 교회의 제도를 제정하고 교인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찌하여 프로테스탄트는 토요일 안식일 대신에 가톨릭 교회가 제정한 일요일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미니크 데 몽부송은 “만약 그대들이 성경에서 아무 것도 고치기를 거부하고 성경의 글과 문자에 철저히 머물러 있고자 원한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유대인들처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2 (207.3)
 비레트는 이에 대하여 일요일의 준수가 성경에 어긋난 신앙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에서 추론된 결론에 따른 신앙행위라고 대답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 대답의 핵심은 결국 안식일의 문자적 준수가 아니라 영적 준수 차원에서 일요일 준수를 옹호하려는 것에 다름이 없었고 결국 그는 일요일이 율법의 말씀에 충분히 일치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옹호하였던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함께 모일 필요성이나 노동으로부터 휴식해야 하는 필요성의 관점에서 일요일을 옹호하였다.23 이처럼 개신 교회측의 주장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세 번의 토론에서 가톨릭측이 일관되게 제기한 문제는 개신 교회가 가톨릭이 제정한 일요일을 준수하면서도 가톨릭의 권위로 제정된 다른 제도들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 과연 앞뒤가 맞는 태도이냐고 하는 것이다. (208.1)
 그러면 칼빈은 일요일과 안식일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견지했는가? 그는 제네바에 도착하기 전인 1536년 봄에 바젤에서 출판한 그의「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의 초판에서 두 날에 대한 자신의 기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안식일 계명에 대해 세 가지의 기본 인식을 피력했다. 그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첫째로 인간의 영적 성장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제도이다. 둘째로 안식일은 공적 예배의 닻과 같은 날이다. 셋째로 안식일은 종들에게 쉼을 보장해주는 사회적 가치의 날이다. 이 “세 관점이 칼빈의 안식일관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24 (208.2)
 칼빈은 자신의 초기 저술에서 루터처럼 특정한 날의 선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안식일 계명과 일요일 준수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의 고리가 없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그는 안식일과 일요일에 대한 가톨릭 스콜라 신학자들의 주장도 배척하였고 루터가 일요일의 준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안식일에서 도덕적인 요소와 예식적인 요소를 구분하는 방식도 함께 배척하였다.25 (208.3)
 그는 비록 일요일을 안식일처럼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유대인 보다 세 곱절 더 안식일의 세속적인 미신에 빠지는 ”행위라고 비판했지만26 골로새서의 주석에서는 신앙의 기강과 교회 예배의 질서를 위한 일요일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일요일로 안식일을 대신 하도록 한 것은 이유 없는 일이 아니었다. 주님의 부활은 고대의 안식일이 예표했던 참된 안식일의 끝이요 성취이다. 이 날(일요일)로 말미암아 안식일이란 표상이 철폐되었다. 그리하여 이 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림자 같은 예식에 집착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나는 교회를 그 굴레 아래로 끌고 가는 제칠일의 7이란 숫자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다른 성일들이 이러한 미신을 방지해 주기만 한다면 교회가 다른 성일들에 모임들을 개최하는 일에 대해서도 정죄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강과 규칙적인 질서를 지키기 위한 목적만으로 교회가 그러한 성일들을 사용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27 (208.4)
 재세례파와 안식일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급진적인” 그룹에 해당하는 재세례파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켰다. 그러나 그 중의 일부 그룹들은 토요일인 제칠일을 지켰다. (209.1)
 주지하다시피 재세례파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그룹들로 나뉘어진 채 유럽 대륙의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제세례파라는 이름은 그들이 장성한 어른의 세례만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에게 부친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재세례파란 명칭이 뜻하듯이 두 번씩 세례받은 사람들로 처신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 고백에 기초하지 않는 유아 세례를 세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유아세례는 진정한 의미의 세례가 아니기 때문에 새롭게 신앙 고백에 기초하여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신앙 신조나 관습들에 있어서는 재세례파 그룹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많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화주의자들이었지만 어떤 그룹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신념을 위해 직접 무기를 들고 폭력을 행사하였으므로 이것이 재세례파 전체의 이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했다. (209.2)
 16세기 후반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 의해 작성된 기독교 소 종파 집단들의 목록 가운데 토요일을 지키는 안식일 준수 재세례파(Sabbatarian Anabaptists)그룹이 포함되어 있다. 안식일 준수자들은 숫자상으로는 재세례파의 다수파를 형성하지 못했으나 소종파 집단의 목록을 편찬하던 사람들이나 안식일 준수를 비판하는 저술가들의 주목을 받은 것을 볼 때 그렇게 미미한 세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28 (209.3)
 안식일을 지키는 재세례파 그룹의 초기 지도자들중에서는 오스발트 글라이트(Swald Glait)와 안드레아스 피셔(Anareas Fischer)가 가장 두드러진 인물들이다. 이 두 사람은 1527년과 1528년경에 토요일을 주님의 안식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여러 지역들을 찾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했으나 그들의 주요 근거지는 모라비아의 니콜스브르크(Nikolsburg)였다. 두 사람은 안식일에 대하여 책들도 썼으나 불행하게도 후대에 전해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책들의 기본 내용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박해한 원수들이 남긴 비판문들을 통해 어느 정도 헤아려 볼 수는 있다. (209.4)
 글라이트의 안식일 교리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카스퍼 쉬벵크펠트(Casper Schwenkfeld)가 글라이터의 글에 답변하여 쓴 글이다.29 쉬벵크 펠트의 비판을 통해 볼 때 글라이트의 안식일 교리의 요점은 십계명 자체에 대한 강조였던 것 같다. 쉬벵 크펜트에 따르면 “오스발트 글라이트의 가장 강력한 주장은 십계명의 숫자이다.—그는 막무가내로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지킬 계명으로 여덟 계명이나 아홉 계명을 주지 않고 열 계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에 대해 일관된 태도로 지키려면 “안식일도 지키든지 아니면 다른 아홉 계명도 모두 배척하든지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30 (209.5)
 쉬벵크펠트의 답변을 통해 볼 때 글라이트의 안식일 교리의 강조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 될 수 있겠다.

   (1) 글라이트는 안식일이 창조 때부터 제정되어 준수되었다고 믿었으며 하나님께서 낙원에서 아담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고 믿었다.

   (2) 글라이트는 할례가 아브라함으로 더불어 시작되었으나 안식일과 그 밖의 계명들은 세상의 시작과 더불어 존재하였다고 믿었다.

   (3) 글라이트는 출애굽기 16장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부터 안식일을 지켰으며 이로써 안식일이 시내산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란 사실이 입증되어 있다고 믿었다.31 (209.6)
 안드레아스 피셔의 안식일 교리의 내용은 주로 발렌타인 크라우트발트(Valentine Crautwald)의 비판적인 기록들을 통해 밝혀졌다.32 크라우트발트는 피셔가 주장했다는 16개의 항목을 언급했다. 피셔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즉 십계명은 안식일을 포함한 10개의 언약의 말씀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키지 않은 안식일 계명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의 계명 전체가 모두 파괴된다. 선지자인 모세와 신약 성경이 모두 사람들에게 십계명의 준수를 명하고 있으며 안식일은 엄연히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다. 율법이 야고보와 바울에 의해 언급될 때 그 율법은 안식일을 포함하는 율법이다. 더군다나 믿음은 율법을 견고히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안식일도 견고하게 세운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안식일에 모임을 가졌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모든 초기 교부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다. 교황 빅토르와 황제 콘스탄타누스가 일요일을 지키도록 명령한 최초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십계명은 영원한 계명이다. (210.1)
 피셔의 열 한 번째 논지는 성경의 증거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사색을 나타내고 있어서 특별히 주목을 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너무나 자주 안식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약 성경이 안식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듯이 일요일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다면 나는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겠다.”33 (210.2)
 일요일을 준수하는 재세례파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게르하르트 에프. 하젤(Gerhard F. Hasel)은 글라이트와 피셔의 안식일 교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자료의 본질상 글라이트의 안식일 교리와 피셔의 안식일 교리를 서로 비교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재세례파 그룹의 이 두 지도자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솔라 스크립투라’(성서만으로) 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가르침을 세웠다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성경 중심적 원칙이 그들에게 강력한 논지를 제공하였고 이로써 안식일 교리의 전파가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실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불가분리의 하나로 존중하였다. 이처럼 두 사람의 주장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 교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교 활동을 위하여 이 두 사람의 주장을 하나로 묶어 사용했던 것이다.”34 (210.3)
 스페인에 있어서의 제칠일 안식일
 스페인의 종교개혁은 그 동안 북 유럽의 좀더 역동적이고 광범위한 종교개혁 활동에 가리워져 상대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 면이 많았다. 그러나 1972년에 마리오 벨로소(Mario Veloso)가 세빌레(Seville) 지역에서 이루어진 종교 개혁의 흥미로운 모습과 성격을 발표하면서 학계와 기독교계로부터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스페인의 개혁자들 중에서도 벨로소가 특별히 주의를 환기시킨 사람은 콘스탄티노 폰체 데 라 푸엔테(Contantino Ponce de la Fuente)이다. 그는 알카라와 셰빌레의 여러 대학에서 수학하고 설교자로 크게 명성을 날린 사람이었다. 그는 1540년대에 이르러는 설교자로서의 명성 위에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추가하였다. 1548년에는 필립 왕자의 초청을 받아 그의 해외여행에 수행 신부로 봉사했다. 그러나 1555년에 세빌레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종교재판관들의 표적이 되어 끝내는 1560년 2월에 감옥에서 그 생애를 마쳤다. (210.4)
 벨로소가 지적했듯이 콘스탄티노는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종교 개혁 활동을 추진했던 여러 독립적인 종교개혁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개혁 교리를 독일이나 스위스로부터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두명의 선구적인 스페인 개혁자 발러(Valer)와 에지디오(Egidio)로부터 전수받았다.35 여기서 콘스탄티노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가 안식일의 준수를 강조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대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싶지 않다면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36 그는 안식일의 교리를 그리스도인의 의와 완전의 교리에 관련시켜 가르쳤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안에 두고 자신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어내야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행함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요함의 단편들이며 잔존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것들이 그에게 기인하고 그를 통할 때 만 가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신뢰를 두어야 한다.”37 (211.1)
 콘스탄티노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마땅히 십계명을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순종해야할 십계명의 일부로서 안식일 계명을 특별히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안식일 계명과 안식일에 행해서는 안 될 “노예적인 일”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노예적인 일”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필요치 않거나 자선적인 목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일을 하거나 또는 남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이런 일들을 금지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금지한 이유는 십계명이 선포되던 당시에 그런 일들이 자체적으로 악했거나 또는 지금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거룩한 날의 진정한 영적 거룩함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38 (211.2)
 콘스탄티노는 또 우리에게 안식일을 일종의 십일조처럼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가르쳤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자신을 창조해주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의 힘든 생활에서 자신을 지켜 주시고 또 미래의 영원한 상급까지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걱정들에 의해 방해를 받음이 없이 마음 안 밖으로 인정하여 하나님께 십일조처럼 바쳐야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콘스탄티노에 의하면 안식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준비에 따라 교회의 다른 형제들을 만나는 날이며 그 날에 다른 교인들과 자리를 함께하여 그가 그들의 순종과 똑같은 순종을 하나님께 바치고 있음을 그들에게 증거해야 되는 날이다.39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