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둘러보니 사물들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흥분한 소경은 소리쳤다. (129.4)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129.5)
주님은 한 번 더 눈에 안수해 주셨다. 드디어 침침하던 눈이 더욱 밝아져 만물이 밝히 보이는 게 아닌가! 놀랍게도 소경은 눈을 뜨는 기적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외로움과 멸시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애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주님께서 소경에게 밝은 한줄기 빛이 돼 주셔서 시력을 회복시킨 것이다. (129.6)
“이제 됐으니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129.7)
“예, 선생님. 저의 눈을 뜨게 해 주셨으니 너무나 감사하나이다.”(129.8)
그는 마을로 들어가 주님의 치유의 은총을 받은 것을 자랑하고 싶었으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곧바로 동구 밖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 기사는 사복음서 중 유독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129.9)
오늘의 치병 사건을 살펴볼 때 소외된 시각 장애자를 불쌍히 여긴 마을 사람들의 착한 마음과 믿음이 돋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데려온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그를 고쳐 주셨다. 이런 중보적 치유의 경우는 우리 마음에 깊은 교훈을 심어 준다. 주위에 있는 병들고 소외된 자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병든자를 위해 간구하는 중보의 기도를 응답하사 반드시 치유의 은총을 내리실 것이다. (129.10)
예수님께서 소경을 왜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고쳐 주셨을까? 공중성을 피하시고 사적으로 고쳐 주신 예수님의 특별한 배려이다. 만일 소경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기적을 체험하면 당황해 할까봐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나 생각된다. 혹은 역사를 은밀히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며 소경이 눈을 떴을 때에 마을보다 훤한 들판을 보는 게 나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또는 벳새다 사람들이 이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마11:21). (130.1)
소경을 치료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왜 그의 눈에 침을 뱉으셨을까? 그것은 아마 소경을 시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소경이 기분 나쁘다고 투덜대며 뿌리치고 그냥 가 버렸다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침은 영적으로 안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그 당시 사람들은 침을 가지고 병을 고치는 이상한 신앙이 있었다. 주님은 소경이 이해하고 있는 그와 같은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여 치유해 주신 것이다. (130.2)
예수님께서 소경을 왜 점진적으로 치유하셨을까? 보통 예수님의 기적은 단번에 완결됐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소경에게 시력(視方)을 단계적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안수 후 “무엇이 보이느냐”고 하셨고 그리고 다시 그 눈에 안수했을 때에 소경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됐다. 이것으로 점진적인 회복을 교훈으로 가르쳐 주셨다. 주님의 치유의 역사는 즉각적일 때도 있지만 점진적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130.3)
오늘의 치유 기적에서 소경의 손을 친히 잡으시고 그를 인도하여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할 때에 나는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시는 목자 되시는 인자한 주님의 모습인 것이다. (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