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2 장 중보적 치유의 기적들 기적 2 ►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러분! 저의 처지를 말씀해 주신 것을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간청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이렇게 나을 수 있었겠습니까?” (98.7)
 즉시 딸과 함께 부엌으로 나간 노파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간구해 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대접할 음식을 마련했다. 그녀는 봉사하기 위해 고침을 받았다고 믿었고 자기 건강의 선물을 예수님과 이웃에 봉사하는 데 사용했다. (98.8)
 오늘날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고마움으로 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녀가 손님들에게 시중들었던 것을 보니 베드로의 부모님이 함께 살고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곳에 기거하는 동안 딸과 함께 예수님의 일행을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다. (99.1)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시는 동안 처음에는 아마 왕의 신하의 집에서 기거하셨고 그리고 나중에는 베드로의 집에서 숙식(宿食)하셨을 것이다. 이리하여 베드로의 집은 가버나움의 선교 센터가 되었다. 베드로의 가족들은 주님을 모신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고 그의 아내는 친정 어머니와 함께 최선을 다해 주님께 편의를 제공했다. 남편의 여러 친구 곧 제자들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녀는 남편을 따라 다니며 조력자로 일하게 됐다(고전 9: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와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의 아내가 말년에 가서 결국 남편의 목전(目前)에서 순교당했다고 했다. 순교장에서 베드로는 죽어 가는 아내에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의 주님을 기억하시오”라고 격려했다 한다. 베드로가 제자들 중에 군계 일학(群鷄一鶴)이 되고 전도의 거성(巨星)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교까지 당한 아내가 뒤에서 훌륭하게 내조(內助)해 준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99.2)
 베드로의 장모는 본인의 믿음이나 간구로 치유 받은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요청하여 치유함을 받았다. 이로 보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들의 믿음이 치유의 경험을 하는데 아주 중요함을 알 수 있다. (99.3)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는 기적을 행하셨을까? 거기에는 납득이 갈 만한 이유가 있다. 베드로처럼 복음 사업에 자신의 생애를 전적으로 헌신하는 종들에 대한 당신의 관심과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복음 사업에 헌신하는 주의 종들의 가정을 특별한 관심으로 돌보시는 것을 알 수 있다. (99.4)
 세태가 많이 변해 요즈음 신자들이 목회자가 심방 오는 것을 거북해 하거나 싫어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방을 간다고 연락을 하면 십중팔구 다음에 오라고 한다. 꼭 그분을 만나려면 아무런 연락 없이 들이닥쳐야 겨우 만날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한 번은 아무런 연락 없이 집사 몇을 대동하고 심방을 갔더니 들어가면서부터 싫다는 인상을 쓰고 “왜 우리 집에 심방 오셨냐고” 마구 항의하는 게 아닌가! 그 때 나는 눈물을 많이 흘렸으며, 왜 내가 목사가 되었는가를 한없이 후회했었다. (99.5)
 오늘날 우리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일행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을 환대한 것처럼 주의 사업에 헌신하는 종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의 일행을 환대했기 때문에 그의 장모의 열병이 깨끗이 낫는 축복을 받았다. 예수님은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베드로의 집으로 오신 것이다. 오늘날도 누구든지 주님의 종을 환대하는 자들은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축복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100.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0:11-15). (100.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100.3)
 아프리카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상한 미신(述信)을 신봉하는 종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열병에 걸린 환자는 무조건 앞을 보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낫는다고 맹신(盲信)하고 있다. 병이 자기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빨리 달아나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실 열병 환자가 질주한다는 것은 도리어 죽음을 재촉할 따름인 것이다. (100.4)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앓는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실 때에 그녀의 손을 붙들고 “열병아 나가라”고 꾸짖었고 열병은 꼼짝하지 못하고 순종하였다. 질병이 꾸짖음을 당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로 보아 인간의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가지신 분은 바로 주님이심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그분은 여전히 모든 질병을 통제할 수 있으시다. (101.1)
 베드로의 장모는 끙끙 앓게 하는 중한 열병에 붙들렸다. 여러분은 어디에, 무엇에 붙들렸는가? TV에 붙들리지는 않았는가? 세상 쾌락에 붙들리지는 않았는가? 주님께서 열병에 붙잡힌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셨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교회 외에 다른 곳에 붙잡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주님께 붙잡힌 사람이 되도록 고쳐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결코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아야겠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기 바란다. (101.2)
 행 18:5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