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 부 하나님께서 압제를 지켜보심 (출애굽기 1, 2장) 제 1 장 하나님께서 압제를 지켜보심 (출애굽기 1, 2장)
 이들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매우 중요하다. 애굽에서 핍박받는 백성들은 우리가 창세기에서 만났던 동일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최초에 언약을 맺었던 아브라함의 직계들이다. 야곱의 모든 후손들이 빠짐없이 그곳에 있었다. (34.2)
 당신이 당신 자녀의 졸업식에 참석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의 이름이 명단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순서지를 보게 될 것이다. 또 수업시간에 출석을 호명할 경우, 여러분은 자신의 이름이 그곳에 적혀 있기를 희망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히브리인들도 그들의 조상의 이름이 언급될 때, 조상의 이름과 지파의 이름이 언급되기를 원했다. 그들 모두가 출애굽을 경험한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34.3)
 70이라는 숫자는 사실 많음을 나타내기보다는 적음을 나타내기 위해 주어졌다. 출애굽기 1장은 아브라함과 야곱 자손의 급속한 번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하여 이 급속한 성장이 언급되어졌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증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1:7). 바로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1:9, 10). 애굽의 학대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가로막지 못했으며(1:12), 산파들의 온정이 이스라엘의 번성을 지속시켰다(1:20). (34.4)
 그들의 번성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매우 중요했다. 첫째로, 그것은 언약의 직접적인 성취였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첫 번째 언약은 그로 하여금 크게 장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다(창 12:2). 이 언약은 계속하여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이 언약은 창세기 13:16; 15:5; 17;2, 4; 18:18; 22:17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26:4에서는 이삭에게, 창세기 28:14; 35:11; 46:3에서는 야곱에게 나타났다. (35.1)
 비록 출애굽기 1장이 그들의 빠른 성장 뒤에 하나님께서 계셨음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의 분명한 성취로 간주하였다. (35.2)
 이러한 사실들은 그들 부조의 아내들이 가졌던 생식적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생식문제에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들의 주치의가 되어 약간의 재산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라가 처음에 자녀를 가지지 못하다가 기적적으로 그의 나이 90에 수태하게 된다. 다음 세대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는 20년 동안이나 자식이 없었지만 이삭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잉태하여 쌍둥이를 갖게 된다(창 25:19-21).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도 처음에는 불임이었지만 기도의 응답으로 수태하게 된다(창 29:31; 30:22, 23). (35.3)
 그러나 출애굽기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번성하게끔 축복하셨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첫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토록 풍성하게 축복하셨다면 두 번째 언약인 약속의 땅을 주시기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35.4)
 압제의 진행
 이스라엘의 번영이 중요했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번영이 자신들을 노예 상태로 전락하게 한 중요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기사 속의 또 다른 상대를 주목하게 되는데, 바로 좀 더 확대해서 애굽이라는 한 국가이다. (35.5)
 바로는 거대해진 이스라엘 집단이 애굽의 주변 세력들 중 하나와 연합할 것이라는 추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애굽의 국내 안정에 매우 위험한 존재였다.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였던 이스라엘 자손의 증가는 이것을 우려하는 바로에겐 이스라엘 백성을 탄압하는 한 가지 빌미가 되었다. (36.1)
 억압과 압제의 경우가 흔히 그런 것처럼 명백한 노예상태는 점진적으로 잔인해져 목숨을 위협하는 상태가 되었다. 첫 번째 조치는 감시하의 강제 노역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애굽인들은 더욱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했으며, 더욱더 잔인해져 갔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건축하는 노역을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들에 나가 농사 짓는 일과 온갖 노역들로 “그 시키는 역사가 엄하였다”(1:14). (36.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만 하는 노역들 가운데 하나는 벽돌을 굽는 것이었다(1:14). 애굽인들은 훌륭한 건축자들이었으며, 그들의 건축 계획들은 수많은 벽돌을 필요로 했다. 다사의 세소트리스 3세의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는 대략 2,450만 장의 벽돌을 필요로 했다(Sarna, 23). (36.3)
 벽돌을 굽는 자들에게 할당량이 주어졌다. 라메세스 2세(Rameses II) 치리 5년째의 한 가죽 두루마리에는 40명이 한 팀으로 벽돌을 구웠음을 언급하고 있다. 한 명의 작업자에게 하루에 2천 장의 작업량이 주어줬지만, 목표량이 너무 높아 거의 이룰 수가 없었다. 작업량을 이루지 못한 작업자들에게는 처벌이 늘 뒤따르곤 했다. 이러한 현실은 바로의 계획된 압제 속에 이스라엘이 치러야 할 한 몫이었다. (36.4)
 강제 노역뿐만 아니라, 바로는 유아살해 계획을 꾸몄다. 히브리 이름을 가진 산파들에게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만약에 바로의 이러한 명령을 따르지 않다가 발각되면 그들은 바로의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36.5)
 산파들은 바로의 포악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의로운 결정을 했기 때문에 바로는 마지막 수단으로 모든 애굽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도록 명령했다. 이 성경절에 대한 유대인 주석가들은 애굽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을로 데려가 함께 돌아다녔다고 설명하고 있다. 애굽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울려 그 울음소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의 아이들이 따라 울게 하여 아이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37.1)
 압제의 상황은 단순한 노예신분에서 국민적 몰살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몰살 계획에 대한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없었지만, 이미 언급한 바대로, 인간적인 견지에서, 바로는 한 가지 이유를 주장하고 있다. 몇 가지 추측에 의하면, 그 당시 애굽의 인구의 ⅓은 외국인이었다고 한다(Ramm, 8). 만약에 독자의 나라에 그 많은 외국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분명히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바로가 선동하는 폭정보다도 더 큰 소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리라! (37.2)
 이러한 모든 일을 자행하는 이 통치자는 누구인가? 출애굽기 1:8에는 그를 “새로운 왕”으로 부르고 있다. 출애굽기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것이 새로운 왕조 또는 통치계급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통치계층은 요셉(그리고 그의 가족)을 개인적으로 몰랐으며 일찍이 요셉이 애굽을 구했던 모든 일들을 알고 있지 못했다. (37.3)
 우리는 이 바로의 이름을 확실히 알 수가 없다.1 그는 출애굽기가 있었던 시대의 바로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일부 학자들은 출애굽의 연대를 B.C. 1300년과 1250년 사이의 13세기 초반으로 간주한다(더 자세한 것은, LaSor, Bush, Hubbard, Old Testament Survery, 125-128 참조). 이 계산은 그 당시 압제자 바로는 세티 I세(Seti I, 1305-1290)였으며, 출애굽 시의 바로는 라메세스 II세(Rameses II, 1290-1224)가 된다. (37.4)
 또 다른 학자들은 출애굽의 연대를 B.C. 1445년쯤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본교성경주석(SDA Bible Dictionary) 331, 332에는 이 입장을 고수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만약에 이 연대가 맞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바로와 출애굽시의 바로는 투트모스 III세(Thutmose III, 1492-1450)와 아멘호텝(Amenhotep, 1490-1425?)가 된다. (38.1)
 하지만, 바로와 연대에 대한 우리의 불확실함이 출애굽에 대한 사실과 그 의미와 가치를 결코 변경시키지 못한다. 몇몇 학자들은 바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항했던 모든 압제자들의 적절한 상징으로서, 신의 섭리에 의해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압제자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애굽의 바로는 후에 비슷한 길을 걷는 하만과 헤롯 같은 인물들의 한 전형으로 구별될 만큼의 악인은 되지 못한다. 이들은 압제적 조직의 대표자들이다. (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