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1 장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쉬셨다고 진술하는 창세기의 역사 기록은 사도들의 복음과 그 미래의 희망을 암시한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쉼”을 구원의 복음으로 확대한다. 히브리서 4장은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창조의 안식일이 계속된 복음적 의미를 제시한다. 버카워(G. C. Berkouwer)는 이러한 계속성의 의미에 대해 바르게 설명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이후 하나님의 쉼으로부터 신자들이 들어가게 될 쉼,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아직도 남아 있는 안식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통해 계속된다(히 4:3, 9).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취하신 것을 사람과 나누신다.”21 (17.2)
 구속의 역사 안에서 창조의 안식일이 “계속된다는 것”은 아담과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그리고 미래의 안식일, 즉 아직 “남아 있으면서” 영광의 왕국에서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안식일의 쉼”(히 4:9)을 약속하면서 사도 교회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근본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17.3)
 헤셀(Abraham J. Heschel)은 옛적의 유대 전통이 어떻게 안식일이 미래의 모본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하였다. “안식일은 다가 올 세계처럼 거룩함을 소유하고 있다.”22 탈무드에 따르면 안식일은 메엔 올람 하바(méen òlam ha-ba)인데, 이것은 낙원에 대한 미리 맛보기, 즉 “거기로부터 하늘이나 다가 올 세상의 생명들이 그 근원을 취하는 우물”23로서 경험하게 될 우리 삶의 일곱 번째 부분을 의미 한다. 헤셀은 설명한다. “안식일 율법은 몸과 마음을 거룩함의 차원으로 인도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람은 자연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의 창조주와의 관계도 서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24 (17.4)
 안식일은 낙원에서 모든 것의 공동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의 언약적 “은혜”로서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칼 바르트는 신약 학자로서 창조 안식일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의미를 추적하였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창조에서 언약이 더 이상 보이지 않거나, 언약에서 창조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창조가 은혜라는 주장은 유지될 수 없다.”25 다시 말해, 마르씨 온이 주장한 것처럼 구약의 낮은 “유대”신이 한 일로서의 창조 사역으로부터는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18.1)
 인간은 창조의 원 계획과 언약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거룩한 언약의 선물로 인간에게 주어진 좋은 창조를 이루시는 능동적인 창조주이시다. 사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 하는 모든 것의 공동 창조주라고 확언한다(요 1:1-3; 히 1:2). (18.2)
 바울은 심지어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6-18). (18.3)
 기독교 창조론은 창조는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언약은 복음 선포의 궁극적 목적을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것이다. 이 언약을 등한시한 것이 성령의 전인 사람의 몸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또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책임 있는 피조물로서 지구를 질서 있고 아름다운 상태로 유지할 책임을 허물면서도 인간의 “영혼”은 강조하는 축소된 복음으로 귀결되었다. (18.4)
 그러나 성서적인 창조 신학은 구원과 인간 도덕성 신학을 위한 대신할 수 없는 기초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적 언약은 인간과 맺은 원래의 창조 언약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창조주를 향한 우리의 순종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피조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19.1)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 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19.2)
 참고문헌
 11 J. Arthur Thompson, in ISBE, 2nd ed., vol. 1 (Grand Rapids, MI: Eerdmans, 1979), 790, 792.

 12 George E. Mendenhall, Law and Covenant in Israel and the Ancient Near East (Pittsburgh, Pa.: Presbyterian Board of Colportage of W. Pennsylvania, 1955), 32-34쪽 요약.

 13 Walton, Covenant: God’s Purpose, God’s Plan, 60-61.

 14 Karl Barth, Church Dogmatics, vol. 3, Pt. 1(Edinburgh: T & T Clark, 1958), 217.

 15 John Calvin, Commentary on Genesis (Grand Rapids, M: Eerdmans, 1948), 창세기 2:3 주석. 그의 책 Inst., LCC, vol. 20(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ET 1967), 36도 참조하라.

 16 Sakae Kubo, God Meets Man (Nashville, Tenn.: Southern Pub. Assoc., 1978), 16.

 17 G. C. Berkouwer, The Providence of God, 3rd. ed. (Grand Rapids, MI: Eerdmans, 1972), 55.

 18 Gerhard von Rad, Genesis: A Commentary, trans. John H. Marks(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1), 60.

 19 화잇(E. G. White)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하나님께서 죄가 존재하 도록 정해 놓지는 않으셨으나 죄가 존재할 것을 내다보시고 그 두려운 비상사태 를 위하여 대비책을 세워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기를 언약하셨다.”(The Desire of Age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1898], 22).

 20 E. G. White, Patriarchs and Prophet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1913), 373.

 21 Berkouwer, The Providence of God, 57.

 22 A. J. Heschel, The Sabbathi: Its Meaning for Modern Man (New York: Farrar,1984), 73.

 23 Ibid., 74.

 24 Ibid., 75.

 25 Barth, Church Dogmatics, vol. 3, 1:334.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