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1 장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
 사카이 쿠보가 그것을 잘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안식일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우정의 기념이요,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식이다.”16 하나님이 제칠일에 쉬시고 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은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그분의 관심이었다. 그 날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쉼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모든 피조물들은 조물주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될 것이다. (11.1)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축복 속에서 무죄한 인류와 그 자신이 나누는 생명의 관계를 제공하셨다. 그 결과 인간은 성화되어 하나님께 헌신한다. 인간은 엿새 동안 일한 후에 하나님의 쉼에 참여함으로써 매주 다가오는 유익을 경험한다. 신약은 이 하나님의 모본을 따르는 축복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 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0-11). (11.2)
 이 하나님의 제칠일의 축복은 안식일의 성찬 축복의 기능을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신 8:3)기 때문이다. 무죄한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그 축복을 필요로 했다면 죄인들은 얼마나 더 하겠는가? 결국, 인간 존재의 거룩한 의미는 단지 그들이 매일하는 일에만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일에서 떠나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자신의 피조물임을 표현하는 것에도 놓여 있는 것이다. 버카워(G, C. Berkouwer)는 하나님의 쉼의 날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대로(막 2:27) 은혜로 세상에게, 즉 사람을 위하여 주어진 것”17이라고 하였다. (11.3)
 사실, 그리스도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모든 인류를 위하여 있는 것”(막 2:27)이라고 하실 때, 안식일은 창조 규례라고 선포하셨다. 폰 라트(Gerhard von Rad)는 심지어 창조 안식일은 “인간을 위하여 필요”하였고, “언젠가는 그를 영원히 종말론적으로 맞이할 것이라”18고 하였다. 안식일은 완전한 인간성을 위한 성례전으로 마련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새롭게 하는 기쁨과 유지시키는 쉼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위한 그분의 사랑과 헌신의 거룩한 서약으로 그의 거룩한 안식일을 기념하셨다. (12.1)
 모세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창조 언약의 제칠일 안식일은 시내 언약의 도덕법 안에 통합되 었다. 그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12.2)
 모세는 안식일 축제에 이중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억하는 것임을 새롭게 하였다(출 20:8-11). 그리고 그는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야훼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고 말함으로써 그것이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은 그들의 창조주이신 구속주와 나누는 교제의 성찬이 되었다. 안식일은 그가 자신의 창조의 계획과 인류를 위한 영원한 목적에 여전히 신실하시다는 하나님의 보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계획의 분리될 수 없는 통일성을 상징한다. (12.3)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 하게 하는 야훼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6). 야훼의 거룩한 통치권에 대한 그와 같은 찬양은 야훼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라는 정체성에 근거한 것이다(출 31:17). (13.1)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의 이 두 가지 행동을 통해 안식일은 언약의 표징의 차원으로 격상된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그 의 택하신 백성과 맺으시는 은혜 언약의 성사로 정하셨다. 창조주께서는 그 자신을 은혜로우시고 자비가 많으신 야훼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셨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을 지상의 모든 가족들에게 선교하는 백성이 되도록 선택하셨다(창 12:2-3; 출 19:4-6; 사 42:6; 49:6).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구속 계획의 통일성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언약의 동반자인 인간과 맺은 최초의 계획에 여전히 신실하시다. 하나님의 언약은 은혜로우신 창조주의 영원한 의지에 굳게 의지하고 있다. (13.2)
 하나님의 에덴 언약
 하나님은 타락 직후에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은혜의 언약을 시작하셨다. 낙원에서 죄가 시작되자 마자, 구주에 대한 약속이 주어 졌다. 창조주는 계획하지 않은 일의 발생으로 좌절하지 않으셨다.19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존귀한 약속에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여자의 후손]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14.1)
 이 승리의 구주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첫 약속을 의미한다. 이 보증은 모든 인류와 맺으신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 구속의 약속이 그의 택한 백성과 맺으시는 이어지는 언약들 속에서 새롭게 되었다. 그와 같이 거룩한 약속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다. 온 백성에게 그의 “후손”을 통해 소위 “메시아적 축복”이 이르리라는 구주의 강림에 대한 약속이 한 번 이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고,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 12:3; 22:18; 갈 3:16, 29도 참조하라)라고 하셨다. (14.2)
 하나님은 그의 구속의 계획을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점차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그리고 그는 그의 백성들이 희망의 기별과 미래에 대한 보증의 증언을 갖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아가기를 의도 하셨다. 화잇(E. G. White)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는 의지의 연속성을 인식하였다. “하나님의 사업은 비록 발전의 정도가 다르고 같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기 위하여 그분의 능력의 나타남 또한 다를지라도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한결같다.”20 (14.3)
 하나님의 창조 언약을 그의 구속 언약과 연결하는 고리는 하나님의 안식일 쉼이다(창 2장).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쉼”의 의미는 신약의 히브리서에 선포되어 있다. 히브리서 4장은 하나님의 원 안식일의 쉼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구속 하시는 은혜의 “쉼”과 연결시킨다. 저자는 유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반복해서 거절했던 이스라엘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항상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히 3:7-11; 시 95:7-11에서 인용). (15.1)
 그는 그들의 과거의 역사로부터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9; 4:6과 비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제안은 지속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 함이라”(히 4:1-2). (15.2)
 더 나아가 사도의 편지는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 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 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 4:3; 창 2:2-3에서 인용)고 하면서 현재의 “복음적” 은혜를 창조 사역이 완성된 후의 하나님 자신의 쉼과 연결시킨다. 저자는 모든 독자들에게 그가 창조의 안식일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안식에 들어가라고 권하고 있다. (15.3)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9-11). 그는 은혜의 언약이란 곧 지금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하늘의 대제사장으로서 주시는 메시아적 안식이라고 확인해 준다(4:14-15).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16.1)
 이러한 메시아적 적용은 창세기 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안식일 안식에 대한 신약의 해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쉼”을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임재로 확인한다. 즉 하나님 자신의 “쉼”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제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 것이다(출 33:14마 11:28을 비교해 보라). 하나님의 쉼에 들어가는 약속은 마침내 신자들이 “장차 올”(히 13:14) 도성에서 “평화의 하나님”의 영원한 쉼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16.2)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의 뜻과 계획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가 시간 속의 영적 성전 즉 하나님의 공적 예배를 위한 거룩한 시간으로서 제칠일 안식일의 쉼을 창조하 셨을 때 완성되었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인간 존재에 거룩의 차원을 더 해 주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오직 인간의 물리적 복지와 번영을 위해서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동반자로서의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가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모든 이들과 나누는 영원한 교제를 위해 준비하셨다(사 41:8; 약 2:23 참조). (16.3)
 인간은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 기사의 결론이 아니다. “제칠일” 이 창조 기사의 결론으로서 세 번씩이나 강조되었다(창 2:2-3). 창조의 목적은 창조주와 동행하는 것이다. 즉 찬양과 경배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쉼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의 일은 제칠일의 새롭게 함과 “재창조”를 통해 심원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