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안식일의 기쁜 소식을 생각하기에 앞서 안식일의 일부 역할들에 대하여 잠깐 예비적인 관찰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네 곳에서 안식일은 분명히 창조와 관련하여 기술되어 있다. 첫번째의 경우는 창세기 2장 2~3절에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제칠일이 창조 사건의 장엄한 결말로 나타나있다. 즉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고 하였다. (52.1)
그 밖의 세 참고절들(출 20:11; 31:17; 히 4:4)은 지금 소개한 설명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기능들을 이행하고 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는 창조의 안식일이 육일동안 일하고 제칠일에는 쉬도록 명하고 있는 안식일 계명을 위한 신학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즉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52.2)
출애굽기 31장 17절에서는 창조의 안식일이 부단한 의무의 근거로서만이 아니라(13~15절에는 너희 대대에라고 되어있다) “영원한 계약” 관계의 근거로서 제시되었다. 즉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칠일에 쉬어 편안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17절).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4장 4절에서는 창세기 2장 2절의 부분(제 칠일에 하나님이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이 인용되고 있는데 이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으로써(히 4:1, 3, 5) 발견하게 될 구원의 모든 축복들을 포함하는 안식일의 보편성을 수립하고자 함이었다.1(53.1)
노동과 휴식의 계명의 중요성, 그리고 그 계명의 심각성, 구원의 축복의 보편성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창조의 안식일에 호소하고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창조의 안식일에 얼마나 막대한 의의를 돌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창조의 안식일이 구속사(救績史)의 진행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까닭은 무엇일까?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창조의 설화에 있어서의 안식일의 의미와 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뜻하는 바 안식일의 의미에 대하여 먼저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53.2)
2. 완전한 창조의 기쁜 소식
창조의 이야기에 있는 제칠일의 명백한 기능은 하나님의 창조를 완전히 완성되고 완벽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그것을 완결시키는 일이다. 이와같은 의미는 특히 일곱으로 이루어진 그 설화의 구조와 사용된 용어들과 하나님의 안식의 기능을 통하여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언급한 이들 세개의 요소들을 지금부터 하나 하나씩 검토해보자. (53.3)
일곱으로된 구조. 창조의 설화(창 1:1~2~3)는 설화의 골격을 세우고 그 세부적인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하여 사용된 7의 숫자와 7의 배수(倍數)를 중심으로 구성된 놀라운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낱말로 구성되어 있고 2절은 7의 배수인 열네 낱말로 구성되어 있다. 1절에 나오는 세 명사들 즉 하나님(엘로힘), 하늘(사마임) 땅(에레스)은 창조의 설화에 다음과 같이 반복되고 있다. 즉 하나님은 7의 5배수인 35회, 땅은 7의 3배수인 21회, 하늘(또는 궁창:라키아)은 역시 7의 3배수인 21회에 걸쳐 등장하고 있다. (53.4)
네째 날(창 1:14-18)에 관한 이야기 속에는 빛(오르)에 대한 언급이 7회에 걸쳐 나오며 좋았더라의 표현도 7회에 걸쳐 나오는데 7회째는 심히 좋았더라고 되있다(창 1:31).2제칠일을 다루고 있는 일곱번째이며 마지막 차례가 되는 부분은(창 2:2, 3) 히브리어로 “세개의 연속적인 문장을 가지고 있고 각 문장이 일곱개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간에 제칠일(또는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이 항상 들어있는 현상은 대단히 의의 깊은 것이다.”3 즉
1.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2절 상단. 히브리 단어 수로는 일곱)
2.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절 하단. 히브리 단어 수로는 일곱).
7이란 숫자가 창조의 설화에서 하나의 순환(術環) 동기로서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숫자가 전체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제공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창조의 설화는 창세기 1장 1절의 서론 부분을 제외하면 일곱 개의 부분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창조의 7일 중 하나와 연관되어 있다.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날이라 ∙∙∙ 둘째날이라 ∙∙∙ 세째날이라”하는 문장은 일곱째 날로 그 절정을 맞는 창조 설화의 논리적인 구획을 긋고 있다. 일곱째 날이란 단어는 세차례에 걸쳐 등장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창조의 목표와 완결과 완전으로서의 일곱째 날을 강조하고 있다. 아래의 도표가 일곱으로된 구조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것이다: (54.1)
일곱째 날(추가 강조의 목적으로 세번씩이나 반복된다)에 절정을 맞이하는 여섯날의 이야기로 창조의 이야기를 조직화한 목적은 니콜라 니그렛티(Nicola Negretti)가 이 같은 구획에 대한 자신의 종합적인 분석에서 설득력 있게 밝혔듯이 중간에 개재해있는 6일간의 성취를 일곱째 날로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었다.4 니그렛티가 지적했듯이 제칠일은 “선행하는 6일을 완결시키고 완전케하며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5(55.1)
어찌하여 창조 설화의 구조와 여러 가지 세부적인 설명들이 7이란 숫자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져 있는가? 그 이유는 이 숫자가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뜻하는바 그 상징적 의미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 숫자의 사용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성서와 고대 근동의 문헌 속에서 7이란 숫자가 완성과 완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6 어떻게하여 7이란 숫자가 그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무래도 창조의 제칠일과 7이란 숫자의 연관 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7 다시 말해서 창조의 제칠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된 완성과 완전의 의미가 7이란 숫자의 일반적인 용도에 까지 쉽게 확대 적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55.2)
형태가 다른 도식적 배열이긴 하지만 기왕의 행동을 절정으로 이끌어 완성에 도달토록하기 위하여 7이란 숫자가 사용된 실례는 수멜一아카드 및 우가리트의 서사시 문학 속에도 많이 있다.8 예컨데 우가리트 서판 가운데 하나는 창조의 설화와 다소 유사한, 대조적인 구조(6일의 연속적인 진형과 일곱째날의 최종적이며 분해력있는 행위가 대조되어 있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즉 거기에는 “3월 제 1 일과 제 2 일, 제 3 일, 제 4 일, 제 5 일, 제 6 일 一 보라, 제칠일 동틀녘에 그대는 대(大) 우둠 저 웅대한 우둠(udum)에 당도한다”9고 기록되어 있다. (55.3)
이 이야기를 읽노라면 일곱 개의 나팔을 잡은 일곱인의 제사장들의 뒤를 따르는 무장한 백성들이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아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제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번 째에 ∙∙∙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수 6:15, 16, 20). (55.4)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진 구조의 최종적인 기능은 분명하다. 앞의 6일간에 성벽을 돈 행위는 제칠일에 경험하게될 극적인 종결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 작전의 완성은 6일간의 행위들과 제칠일의 행위를 대조시킴으로써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제칠일에 성벽을 일곱 번 도는 행위에 의해서도 강조되었다. 이 행위는 의심할 필요없이 앞서 6일 동안에 이루어진 행위들을 요약하고 완결시키기 위하여 제칠일에 일곱 차례나 반복된 것이다. 이 점은 “일곱번째에 ∙∙∙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수 6:16, 20)고 되어있는 사실로서도 확인되고 있다. (55.5)
이밖에도 7이란 숫자가 완비(完備), 완성, 완전의 뜻으로 사용된 예는 성경에 많이 있다.10 그 예로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에게 형제를 일곱번까지 용서해 주리까하고 질문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숫자인 7의 숫자를 이용하여 베드로에게 대답하시기를 그 숫자를 “일흔번”으로 늘리라고 충고하셨다(마 18:21-23). 예수님의 교훈은 명백한데 그것은 완전한 용서에는 숫자적 제한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55.6)
7이란 숫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한 이 정도의 간략한 부기(附記)로도 어찌하여 이 숫자가 창조 설화의 순환(術環) 동기와 기본적인 구조로 작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족할 것이다. 7이란 숫자는 완성과 완전의 상징이기 때문에 7이란 숫자의 빈번한 등장은 하나님의 첫 창조의 완전성을 알리는 전령관(傳令官)으로서의 제칠일의 기능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56.1)
날말들. 안식일의 이같은 기별은 첫 안식일의 의식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들에 의하여 한층 드높여지고 있다(창 2:2~3). 이에 대한 이해를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들의 빈도 수를 아래의 도표로 나타내 보았다. (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