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5장 하나님의 전사(戰士),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의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구약성경의 전쟁과 보복의 하나님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것과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독교윤리와 예언상 전사로서 그 어떤 상징적인 표현으로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선의 개념을 미리 결정하는 이상주의적 철학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혹자는 하나님에 관한 원시적인 개념으로부터 보다 순수한 개념으로 발전 혹은 진화했다고 생각하나 그러한 신학적인 발전은 신약성경의 저자들의 정신 세계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과 구원을 실행하는 좌우에 날이 선 검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교훈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전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광야의 시험에서 아주 명쾌하게 나타난다. 사단은 광야에서 예수에게 자기의 지고한 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지상의 모든 나라의 통치권을 주겠다고 제안하였다(마 4:11; 막 1:12, 13; 눅 4:1-3). 예수께서는 죄된 인류의 배후에 서 있는 악의 세력과 전쟁을 벌이심으로 자신의 사명을 시작하셨다. 그분이 후에 귀신을 쫓아낸 것은 사단에 대하여 거둔 승리의 결과였다. 인간은 자기들보다 더 강한 누군가에 얽매여 있었다. 예수께서는 “강한 자”(마 12:29)를 결박하시기 위하여 또 자신을 신뢰하는 이들의 영혼으로부터 마귀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사단과 실제로 싸우셨다. (79.1)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28, 29절). (80.1)
 조지래드(George E. Ladd)는 그리스도의 영적 승리가 최고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주님의 사명의 핵심은 인간을 사단 왕국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다.”1) (80.2)
 그리스도께서는 이 신앙적, 정신적인 전투에서 여하한 외적 세력이나 외부 압력을 사용하기를 거부하셨다. 오히려 영원한 왕권을 설립하는 사명과 길로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택하셨다(요 10:17, 18; 막 10:45). 그분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나타내셨다.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그는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자기 나라의 영적 본질을 밝히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80.3)
 또 다른 한편에 있어서 그분의 재림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올 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분은 자신이 선택하신 자들을 압제자로부터 구출하기 위하여 힘센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마 24:30, 31; 막 13:26, 27; 눅 21:27). 대제사장이 맹세하고 물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엄숙하게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고 대답하셨다. (80.4)
 여기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예언에 나오는 메시야와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병거(兵車)를 탄 다니엘 7:13에 나오는 신적인 분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2) (80.5)
 1. 하늘 구름을 탄 자—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광채 가운데서 재림하실 것을 묘사한 것에 나오는 “구름”의 신학적 중요성은 구약성경과 당대의 종교 세계에서 구름이 갖는 뜻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고대의 가장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인 시편 104편은 우주의 왕인 이스라엘의 왕을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는 분”으로 찬송하고 있다(3절). 이 시적인 진술은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을 구름을 탄 자로서 묘사한 것에 비추어 보면 신학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리하여 시편 104편은 야훼께서 지존한 하나님이시고 통치자이심을 말하고자 한다.3) (81.1)
 구약성경은 정기적으로 야훼의 행동을 자기의 택한 자들을 위하여 싸우는 거룩한 전사로서 묘사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야훼는 구름수레를 타고 활을 쏘며 번개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파하신다(시 18:9-15; 68:4, 33; 신 33:26; 나 1:3, 4; 렘 4:13). 이사야는 애굽에 대한 전쟁 신탁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예루살렘 성경,가라앉으리로다)(사 19:1). (81.2)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의식에 가장 깊게 인상을 준 구절은 다니엘 7장의 심판 광경에 나오는 구름의 현현(Cloud Theophany)이다. 이 묵시문학적 구절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전 지구의 주권적 통치권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이”(13절)에게 위임하였다. (82.1)
 신약성경은 다니엘의 인자에 대한 이상을 그리스도의 귀환에 적용함에 있어서 세 가지 다른 전치사를 사용한다. 즉 이 전치사는 “구름을 타고 / on the clouds”(마 24:30; 26:64). “구름을 타고 / in a cloud”(눅 22:27), “구름과 함께(‘구름을 타고’로 개역성경은 번역) / with the clouds”(계 1:7)로 나온다. 구약성경 학자들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인자의 구름이라는 영상적 표현이 신적속성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앙드레 페이레(André Feuillet)는 구약 성경에서 “구름”을 신적 출현과 개입, 특히 심판 현현과 연관시키는약 70개의 본문들을 구별하여 냈다.4) 그러므로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천상의 “인자”는 신성의 범주에 속한다. 그분은 친히 죄를 용서하고(막 2:10), 하나님의 심판자로서 재림하는(마 16:27)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인자의 구름 현현을 심판의 날에 구름 탄 자가 되시는 자기자신에게 적용하였다.5) (82.2)
 요한계시록은 점점 더 확대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을 맞춘다. 계시자는 “구름 위에 ∙∙∙ 앉고”(계 14:14), 백마를 탄 왕 심판자로서 그리고 전사로서 오시는 그리스도를 보고 있다.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야훼 사바옷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늘 군대의 선봉에 서신다(14절). 그날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라고 불리운다(계 6:17). (83.1)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적 전사가 “피 뿌린 옷을 입었다”고 묘사한다. 그 이유는 마치 야훼께서 이사야 63:2, 3요엘 3:13에서 그리 묘사된 것처럼 그가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기 때문이다”(계 19:13, 15; 계 14:17-20 참조). 뿐만 아니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릴 것이기”(계 19:15)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 2:9이사야 11:4의 메시야적 약속들을 가리킨다. (83.2)
 요컨대, 요한계시록에는 그리스도께서 세계와 하나님의 마지막 전쟁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왕이신 메시야로 올 것이라는 희망과 하나님의 보증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83.3)
 2. 전쟁 상징을 위한 모방적 사용
 요한계시록은 대조를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께서 종말적인 적그리스도와 대적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요한계시록의 중심 부분인 12장부터 14장조차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을 멸하기 위하여 사단의 삼위일체가 일어날 것을 예고한다. 옛적부터 있어온 용(12장)은 성도들과의 전쟁에 두 명의 조수 혹은 동맹자를 고용한다. 그 둘은 바다에서 나오는 열 뿔 달린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달린 짐승이다(13장). 13장은 사단이 교회를 핍박할 것이라는 불길한 클라이맥스를 밝혀준다. (83.4)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은 박사학위 논문인 “유대 묵시문학과 요한계시록에 있어서의 다니엘서 사용”에서 요한계시록 3장다니엘 7장을 창조적으로 개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납득되어지도록 입증하고 있다.6) 요한계시록 13장다니엘 7장을 본 뜬 것이라는 증거들이 있다.” 7) (84.1)
 요한계시록은 다니엘 7장의 네 짐승들의 상징적 모습들(figure)을 하나의 묵시문학적 짐승과 통합시킨다(계 13:1, 2). 이 새로운 짐승은그 열 뿔에 열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것은 다니엘 7:7, 24에 나오는 네 번째 제국으로부터 일어날 열왕이나 혹은 열 나라를 확실하게 언급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3:1, 5, 6에 나오는 바다 짐승의 참람한 성질이 다니엘 7:8, 25“작은” 뿔의 참람한 주장의 연속인 것이다. 용이 짐승에게 자신의 권위를 부여한 것조차도(계 13:2, 4) 다니엘 7장에서(6절, 14절) 빌려온 특징이다. “누가 이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계 13:4)라는 전세계의 교만한 외침은 다니엘 7:21에 나오는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는 듯한 뿔”을 요한이 아이러니컬하게 적용한 것으로 볼 수있다. 요한이 짐승에 대해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었다”(계 13:7)고 말할 때 그는 다니엘 7:21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5에 나오는 참람과 박해의 통치를 하는 “마흔 두달”의 기간은 다니엘 7:25에 나오는 한 때, 두 때, 반 때와 일치한다(계 12:6. 14참조). (84.2)
 짐승이 하늘 성소와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는 모습은(계 13:6) 다니엘 8:10, 11에 나오는 뿔의 참람성에 그 기원을 둔다.(이미 요한계시록 12:4, 9, 13다니엘 8:10을 언급하였다). 비일(Beale)은 중요한 결론을 유도해 낸다. “요한은 다니엘 7장의 참람한 존재를 다니엘 8장의 그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것은 양자 공히 동일한 극단적 휘브리스(hubris, 교만한 자긍)로 특징지워졌기 때문이다.”8) (85.1)
 짐승과 성도 간의 세계적 전쟁이 나온 후에 요한계시록 13:7에는 주목할 만한 구절이 나온다. “짐승이 ∙∙∙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7, 8절), 이 권한부여 구절(“짐승이 권세를 받으니”)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하는 다니엘 7:13에 나오는 인자의 즉위식과 아이러니컬한 대조를 이룬다. (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