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구원 (구속론) 제 4 장 성화(Sanctification)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서약은 참으로 놀랍지 않는가! (84.1)
 침례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죽음이 회개한 죄인을 위하여 중요하고 유효함을 선언하신다. 그리하여 죄인은 이제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요점은 이렇다. 즉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침례시 선언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죄의 가책이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옮겨짐과 동시에 권세는 깨어지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통치하시는 권세 아래 놓이게 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 3:5)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기록했다. (고전 6:11과 비교하라) 베드로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 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1, 22)고 설명했다. (84.2)
 침례는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침례시 그리스도의 정복하시는 능력, 곧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새 생애를 살게하신다. (85.1)
 바울은 침례의 이 역동적인 특성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 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85.2)
 그리스도와 함께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예수를 죄와 사탄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받아드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의 주님, 주인, 통치자 또는 왕으로 받아드리기를 서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85.3)
 침례는 세상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포기하는것이며 또 이 세상 임금의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요 12:31; 16:11) (85.4)
 침례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사탄이나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게되어,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자발적이고 사랑스런 새로운 마음이 되어 그분께 순종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의 전(殿)에 계시므로 그런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라간다.(갈 2:20엡 3:17을 비교하라) (85.5)
 침례시에 그리스도인은 마치 고대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거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처럼,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라는 초청을 그가 받아 드렸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즉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7, 18). (85.6)
 하나님과의 이 특별하고도 자비스러운 교제에 기초하여,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후 7:1)는 윤리적인 명령을 던졌다. (86.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침례 예식은 공식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상호간의 서약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는 그리스도인 경험을 위한 모든 기회를 제공한다. 엘렌. 지. 화잇이 매우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우리는 침례를 받는 즉시 그리스도의 학교를 졸업할 준비가 되는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서약할 때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성령, 곧 이 하늘의 세 위엄들과 권세들은 만약 우리가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침례 서약을 실행하기만 한다면, 모든 편의가 우리에게 제공될 것이라고 친히 서약하신다.”(원고85,1901— 본 교회 성경주석 6권 1075페이지에서 인용) (86.2)
 뒤집을 수 없는 순서:구속의 은혜-도덕적 순종(The Irreversible Order:Redeeming Grace-Moral Obedience)
 신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선물들은 그분의 요구들 보다 선행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들에게 먼저 주시지 않으신 것을 결코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가 요구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언약 가운데서 가능한 것들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덕적 계명인(출 20장)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의 자비로운 약속에 의한 그의 능하신 행동으로 속박의 집(출 12 장)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후에 비로소 주신바 되었다.(창 15:13-16; 신 7:7-9) 십계명 자체도 “나는 너희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3)고 말씀하신 여호와(Yahweh)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구속받았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86.3)
 구속하시는 은혜가 시작에 불과한 것처럼, 도덕적 순종은 단순히 구속하시는 은혜의 결과일 뿐이다. 그 이유는 구속은 본질상 구속주에 대한 감사와 충성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도덕적 율법을 통하여, 세상의 재판장께서는 무지한 이방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구속주가 구속받은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구원을 전제로 하는 십계명은 구원을 얻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상 숭배와 부도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87.1)
 야훼(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하나의 단순한 이유때문에 절대적인 충성과 경배를 요구하셨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신(god)도 그들을 노예로 억압했던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 족속들을 구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 13:1-5을 보라)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예배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어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 27:9, 10) (87.2)
 여기에 뒤집을 수 없는 모든 참 예배의 순서가 입증되고 있다. 즉, 구원(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선행되고 다음 구속주에 대한 구속 받은 자들의 도덕적 순종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구속받은 백성의 표(sign)로서 그것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이와같이 이스라엘도 순종하는 백성이 돌리는 영광을 통해서만이 이방에 빛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영광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미칠 수 있다.(사 42:6; 49:6) (88.1)
 신약 성경에는 복음이 이스라엘의 예배 가운데 있는 구속과 순종에 대한 언약의 골격을 충분히 유지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깊은 차원이 부가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며 또한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성전예배의 근본적인 이유임을 인정하셨다.(요 4:21, 22) 그러나 그는 메시야의 구원(Messianic salvation)의 때가 “지금” 이르렀고, 따라서 보다 내 면적인 예배, 곧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약속된 메시야, 즉 “세상의 구주”가 그에게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요 4:23-26, 42) 곧이어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성소의 세키나 영광이 인간의 육체로 거하시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 1:14, 마 12:6) (88.2)
 우리 주님의 사명은 새로운 교훈을 가져다 주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사건을 가져다 주시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단과 죄와 죽음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자유케 하는 능력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셨는데, 이는 사람으로 더 내면적인 사랑으로 그를 예배하고 메시야의 충만한 기쁨으로 그를 섬기도록 하시고자 함이었다.(요 15:11; 17:13) (88.3)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이적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병자를 고치시거나 마귀를 쫓아내시거나 죽은 자를 살리시지 않았다. 비록 죄의 용서까지도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가 병든 몸을 치유하시거나 영혼의 죄를 용서하셨을 때에, 원칙적으로 예수님은 그와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아래 새 생애를 살도록 요구하셨다. 위선적인 바리새인 무리가 공포에 사로잡힌 한 여인을 사형선고 받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 앞에 끌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고 하셨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면죄의 은혜를 새롭고 거룩한 생애로의 초청과 연관시키셨다. (89.1)
 예수께서는 자기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으로 준비한 선물을 인정하시고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헌신적인 행위를 보시고 그 여자는 더욱 많은 죄의 용서를 받았으므로 더욱 많이 사랑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면서, 자기 육체의 질병은 치료받은 것에 비하여 비교적 “조금” 그리스도를 사랑한 잔치집 주인인 바리새인 시몬과 현저하게 대조시켰다. (눅 7:47) (89.2)
 그리스도께서는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에게서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어 구원하신 다음, 그들에게 명령하시 기를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족에게 고하라”(막 5:19)고 하셨다. (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