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5장 교회들에게 보낸 기별 (제2부)
 사데 도성은 비옥한 헤르무스 계곡(Hermus Valley)을 내려다보는 가파른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였다. 그 도성이 세워진 산 위의 평지가 계속 성장하는 그 도성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좁아지자 그 도성은 그 주변에 있는 계곡으로 점점 뻗어 내려갔다. (78.1)
 이 도성은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 약 6세기 전에 사데는 고대 세계의 가장 큰 도성들 중의 하나였다. 이 도성은 B.C. 6세기에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대왕이 이 도성을 통치하던 부유한 크로이수스 왕(King Croesus)을 패배 시키기까지 리디아 왕국(Kingdom of Lydia)의 수도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 도성은 예전의 명망을 잃어버렸다. 아직도 번영과 부를 누리고 있었으나, 이 도시의 영광과 자부심은 현재의 실상보다는 과거의 역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2 (78.2)
 이 도성은 그 당시 양모, 염색, 의류 제조업 등의 무역 중심지로 유명했고, 따라서 그 시민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이 도성에서 가장 큰 건물은 아르테미스(Artemis, 아데미, 행 19:27-28)의 신전이었다. 이 도성의 수호신(patron deity)은 ‘신들의 위 대한 어머니’(Great Mother of the gods)인 퀴벨레(Cybele)였는데, 그의 신전에는 환관 승려들이 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여신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믿었다.3 (78.3)
 이 도성은 특별히 가파른 언덕에 건설되었고, 게다가 올라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을 방어하기가 쉬운 천연의 요새였다. 이 때문에 그 도성 사람들은 매우 거만하고 자신감이 지나쳐서, 그 성벽들을 경계하는 일을 등한히 하거나 때로는 아예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이 도성은 두 번 기습공격에 의해서 점령당했는데, 먼저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에 의해(B.C. 549), 그 다음에는 헬라의 안티오코스 3세(Antiochus II)에 의해(B.C. 218) 점령당했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적군들은 야간에 절벽을 기어올라 공격했는데, 사데인들이 그 성벽에 파수병들을 두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 도성이 빼앗겨서 파괴된 것은 그 성 사람들은 과도하게 자신감에 취해 있었고 파수꾼들이 경계근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78.4)
 사데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별
 사데 교회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계 3:1). 그 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에게서 강한 책망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생명 없는 교회를 일깨워서 다시 살릴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하심과 함께 이 교회에 다가오신다(참고 롬 8:11). (79.1)
 그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어조는 처음부터 경고적인 것이다. 이 교회는 아무런 칭찬도 없이 책망만 받는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참된 영적 상태를 알고 계신다. 그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경지에 도달했다. 이러한 영적 현상은 그 도시의 실제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그 도시는 살아 있다는 좋은 평판은 가졌으나, 그것은 과거의 역사이고 현실은 생기가 없는 도시였다. 그 교회의 행위는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하여,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2)라는 책망을 받았다. 그 신도들의 행동에는 복음의 성화시키는 능력이 없었다. (79.2)
 사데 사람들은 특별한 죄나 이단 때문에 책망받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상태 때문에 책망받았다. 영적 나태와 무기력이 그들의 문제였다. 그들이 이교도의 환경에 타협했으므로, 영적 생명이 죽었고 그들은 복음을 증거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 3:2a)고 권고하신다. (79.3)
 에베소 교회에서와 같이, 사데 사람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경험을 시작할 때 그들이 복음을 어떻게 듣고 받아들였는지를 기억하라고 권고하신다(계 3:3a).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께 재헌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거의 경험을 마음속에 되살려서 그것을 현재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회개를 경험하고 현재의 무기력한 상태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할 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헌신이 다시 불붙을 것이다. (79.4)
 그러나 그들이 깨어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은 밤의 도적과 같이 뜻밖의 시간에 오셔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성은 항상 깨어 있는 것이다(계 16:15). 교회가 깨어 있지 못하면, 이 사데 도시의 역사를 재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사데 도시가 역사에서 두 번이나 나태하여 그 성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적군에 의해 함락되었던 것과 같이, 영적으로 나태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오셔서(3:3b),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때에는 회개하기가 너무 늦을 것이다. (80.1)
 그럴지라도 사데 교회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던 그리스도인들이 좀 남아 있었다. 이런 교인들은 이교도와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의복을 더럽히지 않았다(계 3:4). 그러나 이 무리는 그 교회 내에서 소수이고, 그들조 차도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3:2). 예수님은 그들이 흰옷을 입고 그분과 동행할 것을 약속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할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을 흰옷은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충성에 상응하는 것이다. (80.2)
 예수님은 이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입을 흰옷을 입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계 3:5). 이것은 그 앞절의 약속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복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 즉 이교도의 환경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그 나태한 교회에 물들지 아니한 자들은 흰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거닐 것이다. 이 약속의 성취는 요한계시록 7:9-17에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은 또한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아니하고, 하늘 아버지와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약속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라는 약속의 메아리이다. (80.3)
 사데 교회에 보낸 기별은 종교개혁 이후의 시기인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 시대의 그리스도 교회의 상황과 적절하게 부합한다. 활기찬 종교개혁 자들의 세대는 중세기 동안에 잊어버렸던 복음을 재발견하였고, 성경을 백성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고, 그리스도교는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슬프게도 활기찬 종교개혁자들이 별세하자 생기 없는 형식주의가 교회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계승한 사람들은 점점 더 교리적 논쟁과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교회는 점차적으로 영적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시대의 말기로 접어들면서 증가하는 철학적 합리주의(philosophical rationalism)와 세속주의(secularism)의 물결의 영향을 받아 구원하는 복음의 은혜와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이 쇠퇴하였고, 그리하여 교회는 합리주의와 신학적 논쟁으로 빠져들었다. 이 시기의 교회는 겉으로는 살아 있는 것같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다. (81.1)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보낸 기별(3:7-13)
 여섯째 기별은 빌라델비아(Philadelphia, 현재 터키의 알라세히르[Alasehir]) 교회에 보내 졌으며, 이곳은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약 25마일(43킬로미터)에 위치한 도시이다. (81.2)
 성경절 : 요한계시록 3:7-13

 (81.3)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도성
 빌라델비아는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도시였다. 이 도시는 산이 많은 화산 고원지대에 위치하여, 강한 요새 도성을 이루고 있었다. 이 도시는 버가모의 왕 앗탈루스 2세 필라델푸스(Artalus II Philadelphus, 159-138 BC)가 건설했고, 그가 이 도성의 이름을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빌라델비아, “형제 사랑, 우애”)라고 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형제 에우메네스 2세(Eumenes II)에 대해 가졌던 사랑 때문이었다. 에우메네스가 보좌에 올랐을 때, 앗탈루스는 동생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세력과 여러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군 장성으로 에우메네스를 충성되게 섬겼다. 앗탈루스는 그의 동생이 사망한 이후에야 비로소 보좌를 차지하였다. (82.1)
 빌라델비아는 그 도(道)의 동쪽에 있는 전 지역과 서쪽에 있는 전 지역을 연결하는 제국의 통상도로 상에 위치한 번영하는 도성이었다. 이 도성은 또한 버가모로부터 라오디게아로 뻗은 주요 우편 도로 상에 위치해 있었다. 애초부터 빌라델비아는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를 리디아(Lydia)와 프리기아(Phrygia, 브루기아) 지방에 전달하는 선교 도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지리적 여건 때문에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을 겪어야 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지진은 AD 17년에 일어났는데, 이때 빌라델비아와 사데와 그 주변의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었다. 빌라델비아는 티베리우스(Tiberius, 디베료)의 치하에 로마인들이 재건하였다. (82.2)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