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와 안식일 제 6 장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
 안식일, 하나님이 온전히 다 이루시고 다 갚으신 날
 최초의 안식일은 “천지 만물이 다 이룬” 날이다. 육일 동안에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가 최초로 베풀어진 날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세워진 날이다.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날이다. 오늘 맞은 이 안식일에도 사람아들의 마음은 오직 “나라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5:10) 뿐이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뿐이다. “제 길로 행치 아니하고 제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으며” 사사로운 의도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존귀히 여기고”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히 여기고”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3, 14) 하는 마음뿐이다. 나를 아들로 삼으신 안식일 언약의 뜻은 나로 하여금 “내 뜻을 행하려하심이 아니요”(요 6:38) 나를 아들로 삼으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60.1)
 진실로 “제칠일은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출 20:10). “엿새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쉬셨기 때문이다”(출 20: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다 이루고 쉬셨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의 빚을 “호리도 남김없이 다 갚으셨기”(마 5:26)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사” 제칠일을 “여호와의 성일”(롬 9:28; 출 20:1)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61.1)
 하나님이 지으시고 다 갚으시고 다 이룩한 세계는 하나같이 좋았고 심히 좋았고 완전하였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중에 그 어떤 것도 “지은 자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말할 수 없었다”(롬 9:20).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고”(겔 27:4) “너는 온전히 아름다웠다”(겔 27:3). 하나님이 다 마친 이 세계는 마치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매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 같았다”(민 19:2). (61.2)
 하나님이 다 이루신 완전한 창조는 천연계 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도를 완전히 이루었다”(시 18:30; 20:31). “그의 말씀을 다 이루었다”(롬 9:28). 율법을 다 이루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시 19:7). 하나님은 “착한 일을 다 이루셨다”(빌 1:6). “어린양의 혼인 잔치” 준비를 다 이루었다(마 22:1; 25:10; 계 19:7, 9). 하나님이 제칠일이 이를 때에 다 이루신 그 착한 일과 율법과 의와 나라는 하나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심히 온전하였다. 일점 일획까지 다 마치고 다 이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율법이었다. 흠도 점도 없이 완전하고 풍성한 혼인 잔치 준비였다. “호리도 남김 없이 다 갚은” 구원이었다. (61.3)
 하나님은 그 뜻하신 바를 다 마치고 다 이루기까지 결코 쉬지 않으시는 분이다(사 61:1; 렘 30:24). 천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있어도 그 뜻을 온전히 이루고서야 쉬시는 분이시다(마 5:18). 이 하나님에 의하여 첫 안식일에 천지 만물이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모두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이 다 세워졌다. 하나님의 구속이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의 할 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62.1)
 이미 완전히 다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사람의 공덕과 의를 추가하는 일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화이요 재난이다. 파괴이고 죄악이다. 땅으로 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람의 일은 죄인 것이다. 거장의 작품을 어린아이가 고칠 수 있는가. 하늘 실로암에서 물들인 티없이 완벽한 옷감을 세상의 오염된 연못에서 세탁해서 되는가. 그래서 “너희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하신 것이다. (62.2)
 이와 같이 하나님이 완전히 다 마치고 다 이룬 그 나라와 그 의에, 그리고 하나님이 완전히 예비한 안식일의 혼인 잔치에 사람은 완전히 값없이 초청되었다. 예복 한 벌 준비하지 못한 채, 신발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적신과 빈손으로 초청되고 영접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제칠일의 안식은 사람에게 완전한 은혜였다. 오늘의 이 안식도 완전한 은혜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와 그 잔치와 그 안식과 그 영생에 완전히 빚진 자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안식일의 영생을 누리는 영원한 채무자이다. (63.1)
 안식일: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날, 생명수 샘물로 값없이 나아가는 날
 사람에게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이와 같이 완전한 창조와 은혜가 기념되고 재현되는 날이다. 그뿐 아니라 나에게서 온전히 새롭게 이루어지는 날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은혜가 오늘에까지, 나에게까지 확장되는 날이다. 우리가 새롭게 하나님의 “완전한 길에 주목하는”(시 101:2) 날이다. 여섯 날의 “초보” 같은 삶을 넘어서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히 6:2) 날이다. 그리스도의 “크고 완전한 장막의. . . 성소로” 들어가는 날이다(히 9:11, 12 참조). “그런 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왕상 8:61) 날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창 17:1) 하신 날이다.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 13:32) 한 제3일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완전케 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완전하게 되는 날이다.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나에게 완전하게 되는 날이다. (63.2)
 제칠일은 만물의 마침의 날이다. 완성의 날이다. 만물이 심히 좋고 심히 거룩한 경지에 다다른 날이다. 거룩의 끝 곳, 곧 지성소에 도달한 날이다. 만물이 선에 도달하고 심히 좋은 지선에 도달한 날이다. 세계와 의와 은혜가 완전으로 나아가고 완전에 도달한 날이다. (64.1)
 그러므로 제칠일은 6일을 폐하는 날이 아니다. 제칠일의 안식은 6일의 초보 같은 삶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 제칠일의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심은 6일의 근로와 근로 정신을 폐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태만과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케 하려함인 것이다.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한” 엿새를 완전케 하고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 하는 정신을 완전케 하려는 것이다. (64.2)
 하나님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신 것은 6일의 창조와 창조 정신을 완전케 하신 것이었다. 안식이 창조의 목적이고 근로의 보람이었다. 하나님의 안식이 그 창조와 일하심의 목적이었다. 안식이 창조의 크고 첫째가는 의도였던 것이다. 창조와 근로의 육일은 안식의 제칠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안식의 제칠일이 근로의 6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안식을 위한 창조와 근로이지, 창조와 근로를 위한 안식이 아닌 것이다. (64.3)
 사람은 하나님의 노동꾼으로 짐 나르는 짐승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동반자로 하나님의 영적 삶의 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노동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제칠일의 사랑이 6일의 노동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제칠일로 초청하였다. 6일로 초청한 것이 아니다. 6일은 사람의 시간이다. 6일은 사람이 힘써 제 일을 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육일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지라” 하셨다. 그러나 제칠일은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일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시 91:1) 같은 시간이다. 사랑의 처소이다. (65.1)
 하나님은 이 처소에서 사람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준비하여 사람아들을 초청한 것이다. 마당을 쓸고 떡을 준비하고 술을 준비하고 노래와 춤을 준비하는 것은 모두 잔치의 “초보”와 같은 것이다. 6일의 삶은 구원의 “초보”를 사는 것이다. 제칠일은 6일의 정상이고 절정이다. 우리는 사랑의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히 6:2). 오늘과 내일은 마당을 쓸고 떡을 만들고 포도즙을 준비하다가 제칠일에는 “완전하여져야 한다”(눅 13:32).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려야 한다”(롬 5:11). (65.2)
 이것이 제칠일 안식일 잔칫날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구원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안식일에 사람의 할 일이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요 17:4)이다. “예수 그리스도 나타날 때에 너희에게 가져온 은혜를 온전히 바랄 뿐”(벧전 1:13) 이다. 내 뜻대로, 내 스스로, 내 공로를 나타내기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은혜 되게 하는 것이 내게 하라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그의 구원에 내가 온전히 빚진 자가 되는 일이 안식일에 내가 할 일이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하는 신앙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는 신앙이다. (66.1)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의 높이에 완전히 서고, 나의 능 없고 의 없고 공로 없음과 빚 많고 죄 많고 불의 많음이 절대의 낮음에서 완전히 확인되고 자인되는 날이 안식일이다. 제칠일 안식의 혼인 잔치에 온전히 값없이, 온전히 은혜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참여하고 누리는 삶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신 분부대로 사는 삶이다. 이 삶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창 17:1)는 분부의 삶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골 1:28) 방식의 삶이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한”(고전 1:10) 삶이다. (66.2)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하신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해야한다”(롬 12:2). 기드온에게 이르기를 “너를 쫓는 백성이 너무 많다”하시고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할까 두렵다”(삿 7:2) 하신 말씀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자 법관은 향하여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 주고” 네가 온전히 가난한 자가 되어 “와서 나를 좇으라”(마 19:2) 하신 말씀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67.1)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약속된 축복이 예수님의 크고 첫째 가는 축복임을 분별해야 한다. 온전히 가난하여 온전히 빚진 마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이해하지도 누리지도 못하며 제칠일 안식일의 혼인 잔치를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칠일 안식일의 혼인 잔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한 뜻”과 땅에 사는 사람아들의 온전한 뜻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하여”(고전 1:10) 다 이루는 잔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히 됨”이 안식일 혼인 잔치에 우리가 입고 갈 예복이기 때문이다. (67.2)
 “천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 2:1).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눅 1:45).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 23:14).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이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고백하는 제칠일 안식일 신앙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5:10)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의 기도이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치는”(창 21:14) 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이다. 주의 뜻대로 “천지 만물이 온전히 다 이루었나이다” 하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이다” 하고,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주의 말씀대로, 주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 밖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치는” 삶이 안식일 신앙의 삶이다. (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