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4장 그분은 순교하신 의인이십니다
  (46.1)
 실락원 후에 형제살인이 발생하고, 강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46.2)
 아벨의 제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세기 4:3-5).
(46.3)
 민하. 최초의 형제 살인 사건은 제사 때문에 발생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다. 제물로 번역된 ‘민하’(מִנְחָה)는 일반적인 제물(창 4:3-5) 소제(레 2), 선물(창 32:20-21; 33:10), 조공(삿 3:15, 17-18)을 가리킨다. 민하(מִנְחָה)는 주로 곡식제사를소제 가리키지만 창세기 4장에서처럼 동식물제사 모두를 가리키기도 한다. 창세기 4장은 왜 하나님이 가인의 식물제사를 거절하고 아벨의 동물제사를 받으셨는지 그 이유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1 (46.4)
 창세기의 동물제사. 창세기 3장4장은 연속적인 이야기 일 뿐 아니라 다수의 주제어가 공통적으로 사용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읽어야 한다.2 창세기 3장의 가죽옷은 동물제사를 암시한다(창 3:21). 창세기 4장 뒤에 등장하는 제사로는 노아의 동물제사, 이삭과 아브라함의 제물이었던 양이 있다(창 8:20; 22:7, 13). 야곱이 드린 제사는 ‘살륙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자바’(זָבַח)인데 이것은 동물제사를 가리킨다(창 31:54; 46:1). 창세기에서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모두 동물제사이다. (46.5)
 죄인을 위해 피 흘리고 죽으신 주님. 구약의 근본적인 제사는 동물을 잡는 피흘림의 제사이다. 피흘림 없이는 죄인이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히 9:22). 그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지어 입히신 가죽옷이 상징하는 것처럼 죄의 수치를 가리고 용서를 베푸실 대속주를 의지하는 믿음을 나타낸다. 아벨은 피흘림의 제사를 통해서 대속주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지했다. (47.1)
 예배자의 태도는 제물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하나님이 제물 뿐 아니라 예배자를 보신다. 하나님이 받으신 것은 아벨과 그의 제물이고 거절하신 것은 가인과 그의 제물이다(창 4:4-5).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하나님의 우선적 관심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3 가인의 태도와 제물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47.2)
 가인의 제사는 자기 숭배.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가인의 행동은 하나님께 도전적인 태도를 보여준다(창 4:6, 9, 13, 17). 가인은 ‘얻음’을 뜻한다.4 (창 4:1).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획득하는 자이다. 가인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대신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획득하고자 했다.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발붙일 틈이 없다. 그는 하나님이 지정해 놓으신 방식이 아닌 스스로 정한 방식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 그가 선택한 예물은 최선의 것이 아니라 땅의 소산 중에 자기 맘에 드는 것에 불과했다.5 인간 스스로 만든 예배방식은 사실상 자기 숭배이다. 가인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거절했다. (47.3)
 아벨, 의인이신 주님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8-10).
(48.1)
 의인 아벨. 아벨의 히브리어 이름은 ‘헤벨’(הֶבֶל)이며, 헛됨을 뜻한다. 전도자는 그의 이름을 사용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표현했다(전 1:2). 헤벨(הֶבֶל)은 비누방울이 탁 터지며 사라지듯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헛됨을 표현한다. 아벨은 죄를 범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지내다가 순식간에 허망하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48.2)
 의인 예수. 그가 까닭 없이 죽은 것처럼 예수님도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다. 아벨은 동일한 운명을 겪으신 예수님을 표상한다.6 예수님은 의인 아벨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연결시키셨다(마 23:35; 눅 11:51). 의인이 자기 형제에 의해 피를 흘려야 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의인이 걸어야 할 운명의 길을 걸으셨다. 십자가 죽으심 후에 형 집행 담당관인 백부장은 말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 스데반에 따르면 선지자들은 의인이 오실 것을 예고한 자들이고 의인의 운명인 죽임을 당했다. 예고된 의인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형제인 동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스데반도 이 의인에 대해 설교했기 때문에 순교했다(행 7:52, 59). (49.1)
 의인이 받을 보상. 아벨은 이 세상에서 그 믿음에 대해 전혀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구속자가 되셨다. 하나님은 그의 억울함을 옹호하셨고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조상 제 일번으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 11:4) (49.2)
 예수님은 의인에게 천국을 약속하셨다. 이 땅에서 의인의 삶이 허망하게 끝날 때가 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시련 뿐일 때도 있다. 이 땅에서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말씀 위에 굳게 선 의인을 구원하신다. 하늘에 속한 것으로 의인에게 분명히 갚아주신다. 허망하게 사라져간 아벨에게 영원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49.3)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피. 아벨의 피는 보복을 호소했다(창 4:10).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의 보혈은 모든 죄를 정결하게 한다(눅 23:34; 요일 1:7). 또 만물이 화목을 이루어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한다(롬 5:11; 골 1:20).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의 주인공 예수님은 승천하셨다(히 12:24). 그분은 하늘 성소에서 자신의 보혈을 갖고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 하신다(히 8:3; 9:12, 24).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간 성도들은 이미 하늘 예루살렘 시민이다(히 12:22-24) (49.4)
 가인에게 주신 보호의 표, 용서와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주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세기 4:15).
(50.1)
 가인을 보호하신 주님. 살인자 가인에게 하나님은 보호의 표시를 주셨다. 칠 배를 충분하게, 혹은 극심하게로 해석하거나 일곱 명의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는 뜻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7 가인에게 주신 표는 저주의 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의 표였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하나님의 은총의 표를 마치 가인에게 주신 훈장이라도 되는 듯 살인을 저지른 다음에 이렇게 노래했다.8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4). (50.2)
 가인의 후손은 보복의 전통을 세웠지만, 예수님은 용서의 한도에 대해서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하셨다(마 18:22) 가인의 복수 전통은 세상이 대홍수로 멸망을 받을 만큼 폭력적인 세상을 만들었다. 반대로 예수님의 무한한 용서는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왔고 하나님의 평화의 왕국을 영원히 세웠다.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