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제사장(하늘 성소의 예수 그리스도) 제 4 장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
 “중보하다”라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둘 사이를 통과하다”(to pass between)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을 화해시키기 위한 관점에서 양쪽 사이를 중재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중보’라는 신약의 단어는 특별히 하나님께 사람을 변호하는 것을 포함하며, 또 다른 편을 대신하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포함한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기도로서 하늘 아버지께 중보하셨다. (54.3)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9-11).
(54.4)
 그분은 우리의 대언자이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것은 법정 용어이다. 대언자(advocate)는 고소당한 사람을 대신해서 의의 법정에 서 있는 사람이며, 변론하기 위한 변호자이다. 우리의 대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무죄함을 탄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무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의 공로로 탄원하시는데, 왜냐하면 죄인은 자기 스스로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히 9:24)고 하였다. 스데반은 자신의 시련과 순교의 시간에 거룩한 중보자를 바라보았다. (54.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 56).
(55.1)
 얼마나 신속하게 예수께서 스데반을 대신하여 중재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그분의 제사장 봉사를 비우신 적이 없다. 신자는 어디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안다. 그분은 그분의 자녀들이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신다. 이와 같이 그들은 완전한 신뢰심을 갖고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그들이 죄를 범하고 회개할 때 그분은 용서를 위해 탄원하실 것이다. 그들이 비난받을 때 그분은 그들의 정당함을 선포하실 것이다. 그들이 시험받을 때 그분은 그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비롭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시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사람에게 흘러나온다. 그분은 지상에 계실 때와 같이 하늘 성소에서도 똑같이 계신다. (55.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홀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55.3)
그러므로 저가 법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 18).
(55.4)
 지상 성소의 대제사장도 지파의 이름들을 그의 가슴 위의 판결 흉패에 새기고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갔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마음에 우리를 간직하고 계신다. 아버지 앞에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역의 따뜻함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55.5)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 42).
(55.6)
 보혈로 탄원함
 그리스도의 흘려진 피는 중보의 사역에 있어서 핵심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희생의 공로로 탄원하신다. 하늘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이다. (56.1)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56.2)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계 5:6)으로 서 계신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출 12:13)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은 구속의 모든 축복을 믿는 자에게 줄 수 있는 근거이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히 9:22)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분의 십자가나 죽음보다도 신약에서 더욱 자주 언급되었다. 그 주된 강조점은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그분의 생명을 포기하심과 그 구속적 행위를 인간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적용하는 데 있다. (56.3)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56.4)
 신약은 항상 적극적인 구속의 행위를 활용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스도의 피가 더럽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죄가 더럽힌다. 피는 구속 사역에서의 중심이다. 그것은 깨끗케 한다(요 1:7; 계 1:5). 그것은 의롭게 한다(롬 3:24, 25, 5:9). 그것은 화목 시킨다(엡 2:13). 그것은 구속한다(엡 4:7; 골 1:14; 계 5:9). 그것은 성화시킨다(히 10:29; 13:12) (56.5)
 하늘에서 그리스도 사역의 기초는 그분의 흘리신 피이다. 십자가는 모든 화해와 구속적 활동의 기초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늘 성소에서 모든 중보를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56.6)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을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1-15). (57.1)
 그리스도의 피는 하늘의 통화(currency)이다. 회개하는 죄인은 다른 어떤 것으로 호소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다른 어떤 것도 소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죄 없는 생애와 그분의 완전한 희생의 공로에게 탄원할 뿐이다. 믿는 자는 그 자신 안에 드릴 만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용서와 죄에 대한 승리에는 단 하나의 길만이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것을 분명히 하셨다. (57.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갈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3-57).
(57.3)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중보(intercession, 간구)를 통하여 자신의 희생과 피의 공로가 하나님 앞에 항상 유효함을 선언하신다. 사람의 죄들은 심판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선포한다. 사람 자신의 거절 외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죄가 용서되고, 허물이 옮겨지고, 심판을 피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이 진리를 가리우도록 허락되지 말아야 한다. 대신하는 어떤 제물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어떤 업적도 소용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유용하다. 하나님의 왕국으로 가는 오직 하나의 문이 있다. (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