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 제 5 장 세 천사의 기별과 성화와 완전(목회부)
 “우리 자신[그리스도인]의 선행을 통해서는 완전함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스스로의 의를 거부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불완전한 자요, 자신의 회개를 불충분한 것이요. 자기의 가장 강력한 믿음을 가장 연약한 것이요. 자기의 가장 값 비싼 희생을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게 되며, 십자가 아래 겸손히 엎드리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한 음성이 그에게 말씀한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는 주님안에서 완전하다’는 기별을 듣는다. 이제 그의 영혼에 모든 것이 평온하다. 더 이상 자기 자신 속에서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 하나님의 은총을 얻으려는 어떤 공로를 찾고자 발버둥치지 않게 된다”(믿음과 행함 107, 108). (134.2)
 “비록 우리가 육체의 완전성은 주장할 수 없으나 영혼의 신앙적인 완전성은 가질 수 있다. 우리 인류를 위하여 치루신 희생을 통하여 죄들은 완전히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이 의존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위하여 하실 수 있는 그것을 의존한다.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완전히 믿을 때에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다. 양심은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님의 피를 믿은 믿음을 통하여 모든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될 수 있다. 우리들이 불가능한 일들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들은 성화를 주장할 수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실가에 대하여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대속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그대들은 사랑하시는 주님 안에서 받으신 바 되었다”(가려뽑은 기별 2권, 35). (134.3)
 율법은 성화의 표준임과 동시에 인간의 의가 보잘 것 없음을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를 절실히 필요하게 하는 신비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영적인 완전을 경험한 사람은 마침내 그리스도 재림시에, “불가불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고전 15:53, 54)는 변화를 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죄 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죄 짓지 않는 완전에서 죄 없는 완전으로 영원히 옮겨간 것이다. (135.1)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135.2)
 “이 저열한 몸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형성 되기까지는, ‘나는 죄가 없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영문 시조, 1888년 3월 23일). (135.3)
 “∙∙∙ 마음과 심령과 육체에 주님의 완전한 형상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오 얼마나 놀라운 구속인가?”(GC, 645, 524) (135.4)
 “태초에 인간은 품성에 있어서만 아니라 용모와 자세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고 거의 지워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려진 것을 회복하려고 오셨다. 그는 우리 천한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만드실 것이다. 한 때 죄로 더러워져서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죽을 수 밖에 없이 된 썩어질 형체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불멸의 것이 될 것이다. 모든 흙과 결함은 무덤에 남겨진다 ∙∙∙ . 마지막 까지 남아 있던 저주 받은 죄의 흔적은 사라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입혀진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의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품성의 완전에 도달하게 된다. 우의 매일, 매 시간의 일이 ‘믿음의 주요 완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는 사도의 말에 제시돼 있다 ∙∙∙ .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공로를 신뢰함으로써 우리는 성령 안에서 빛과 평화와 기쁨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 . 형제 자매이여,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바라봄으로써이다. 하나님과 우리 구주의 사랑에 거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하며 거룩한(신의) 성품의 완전함을 명상하게 될 때, 우리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5T 744). (135.5)
 3. 참다운 성화와 완전
 가. 참다운 성화와 거짓된 성화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그분의 완전함을 새롭게 발견함과 동시에 자신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발견함과 동시에 자신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그리스도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같이 갈망하게 된다. (136.1)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의 생애에서 더 많은 결점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죄 많은 우리 자신들을 완전하신 구주와 비교 할 때, 우리는 더욱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사단이 우리를 지도하는 힘을 잃을 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죄된 사람임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거할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면 우리는 구주의 거룩한 품성을 흠모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 많은 상태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결코 볼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자랑할 것을 적게 발견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순결과 아름다움을 더욱 많이 발견하게 된다.”(정로의 계단. 영한 대역, 149). (136.2)
 이러한 신앙 경험의 원칙은 이 세상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실이다. 빛에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사물이 더 잘 보이는 것과 같다. 더러운 것도 빛에서 멀리 떨어진 어두운 곳에서 보면 더러운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깨끗한 줄로 알았던 것도 밝은 빛에 나가 보면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창문 틈으로 햇빛이 들어 올 때, 방안의 공간에 갑자기 숨 쉬기가 곤란한 정도로 먼지가 많은 것을 본 경험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완전함에 비추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 많은 상태를’ 보지 못하면,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우리 마음에 거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보지 못한 증거이다. 다음의 말씀은 참된 성화와 거짓된 성화의 특성을 잘 구별해 준다. (137.1)
 “성화는 전인(全人)—영, 혼, 몸—과 관계가 있다고 성경에 나타나 있다 ∙∙∙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 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근본적으로 거짓되고 그 영향력에 있어서 위험한 성화의 이론이 종교계에 있다. 많은 경우에 성화를 공언하는 자들은 참 것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성화는 말과 의지 숭배에 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참으로 구하는 자들은 그들이 죄 없다는 사상에 결코 빠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의 생애가 흠 잡을데가 없고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품성에 거하도록 훈련되면 될수록, 그들이 그분의 신성한 형상에 더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분의 흠 없는 완전을 분별하게 되고, 그들은 자신들의 결함을 더욱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성화되었다고 주장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충분한 증거를 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약함과 결핍상태를 보는데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을 참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과 구주 사이가 멀면 멀수록 그들의 눈에 스스로가 더 의롭게 보여진다 ∙∙∙ . 그분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그 분의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이 일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면, 우리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게 될 것이며, 우리의 무력한 영혼을 그분의 공로에 내어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게 될 것이다.”(성화된 생애  영문, 7.8). (137.2)
 위의 사실을 다음의 도표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38.1)
참된 성화와 그릇된 성화

참된 그리스도인 성화의 특징 그릇된 완전주의적 성화의 특징
죄 없다는 사상에 결코 빠지지 않는다. 성화를 주장하고 공언하나,
사실은 말과 의지 숭배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품성의 결함을 점점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죄 없이 완전하다는 사상에 빠지게 된다.
바라봄으로 변화된다. 자신들의 품성의 결핍함을 보는데 실패하고 있다.
결코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참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공로에 내어 맡기고
그리스도를 더욱 높이게 된다.
스스로를 점점 더 의롭게 본다.
(138.2)
 “그리스도를 참으로 따르는 자들은 거룩함에 대한 자랑스런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 . 그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며 그는 그 분과 함께 계속해서 동행함에 따라 하나님의 품성의 거룩함과 그분의 요구의 요원성을 더욱 더 분명하게 감지(感知)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함을 더 확실히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계속적인 믿음과 계속적인 회개의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믿음과 행함 • 영문. 53, 54). (138.3)
 거룩하신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자신의 결함을 점점 더 확실히 보게 된다. 이들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거나 미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참으로 따르는 자들”임을 유의하라. 그렇다면 가장 성화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결함을 가장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 어떻게 기뻐 찬미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더 확실히 보게 됨에 따라서 그는 점점 더 분명히 그리스도의 보혈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충분성을 깨닫게 된다. 골짜기가 깊을 수록 산도 더 높은 것이다. 이 경험을 로마서 5장 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죄의 죄됨을 더 깊이 느끼고 실망하는 것 만큼 이에 상응하여 “더욱” 더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롬 11:33). (139.1)
 “우리들은 우리 자신 안에서는 죄인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인들이다”(가려뽑은 기별 1권. 496). (139.2)
 “In ourselves we are sinners:but in Christ we are righteous”(1SM. 394). (1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