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4장 묵시문학에서의 최후 전쟁 전망
 야훼의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실함에 달려 있었다(시46편; 48편).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반역과 완고함은 모세언약에도 구체적으로 나와 있듯이(레 26:27-34) 역으로 야훼의 심판과 성전(聖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자신의 형벌적 공의의 달갑지 않은 동반자로서 앗수르와 바벨론조차 고용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항상 그의 은혜로써 그의 언약의 백성, 신실한 남은 자들을 보전하셨다. (75.1)
 다니엘, 에스겔, 요엘 그리고 스가랴의 묵시문학적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충만한 메시야 백성들과는 화해할 수 없는 대적들과 자신이 벌이는 최후 전쟁을 지휘하신다는 신학을 발전시킨다. 야훼의 전쟁은 결코 열방간의 세속적 정치적 싸움이 아니다. 성경상의 예언의 말씀에 등장하는 최후의 전쟁을 이와 같이 해석하는것은 현대 거짓 예언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전투는 메시야적 남은자들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드리는 거룩한 경배에 대한 마지막 공격자들과의 전투이다(시 2편; 욜 2:32; 단 11:45; 12:1; 겔 38장; 39장; 슥 12:8, 9; 13:9; 14:1-3). 이것이 성경 예언에 나오는최후 야훼 전쟁의 진수이다. (75.2)
 야훼 전쟁의 목적은 열방 가운데 그의 주권적 왕권을 옹호하는 것이고, 낙원의 평화와 의(義) 가운데 메시야의 통치를 지상에 회복하는 것이다(겔 39:21-29; 47:1-12; 48:35; 슥 14:9, 16; 욜 3:18; 미 4:1-5; 암 9:13-15). (75.3)
 구약신학자인 피터 크래기(Peter C. Craigie)는 전사 하나님이라는 주제가 히브리 성경에서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신구약의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면 중의 하나”라고 정확하게 결론 짓고 있다.4) (76.1)
 이스라엘의 고대 예언들의 궁극적 중요성은 세계를 위한 그 메시야적 희망에 중심을 둔다. 조이스 볼드윈(J. G. Baldwin)이 스가랴 9:9, 10의 메시야적 통치자에 대한 주석에서 매우 잘 진술하였듯이 “세계 평화의 유일한 실제적 희망은 여전히 이 왕에 중심을 둔다.”5) (76.2)
 2.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야훼 전쟁의 관련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도 동일하시기에 과거에 그분이 내린 심판도 미래에 그분이 내릴 심판의 본질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로 보아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초기의 구속 행위들은 모형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 바벨론의 멸망은 묵시문학에 나오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모형 혹은 예표기능을 한다(렘 50장, 51장계 17장, 18장 참조). 여호와의 날에 있을 전국적인 심판은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우주적, 세계적 날의 예언적 모형이다. 시온산에 중심을 둔 중동의 지형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적그리스도 간의 전세계적인 전투장의 모형으로서 도움을 준다. (76.3)
 요한계시록은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극적으로 묘사함에 있어서 히브리 이름들과 야훼의 전쟁 영상들을 빌린다. 이 기독론적 완성은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의 백성 즉 그리스도의 세계적 교회로서 정의한다는 것을 뜻한다(행 4:25-28을 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모형론의 성경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6) 신약성경을 모형론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옛날에 이스라엘의 원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구약의 야웨와 그의 언약 백성들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자들을 신학적으로 원수로 보았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에 그 히브리 이름들은 그리스도와 우주적 교회인 그의 새 언약 백성들의 원수를 지칭하는 모형인 것이다. 이 기독론적인 초점과 종말적인 적용은 그리스도교 모형학과 구속사에 있어서 모든 우화적인 오용과 문자주의적 반복을 구분짓는다. 모형과 실체(antitype)의 관계는 민족적 혹은 지리적 반복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한 종말적인 완성과 확대 관계이다. 과거의 사건이 미래에 문자적으로 재현된다는 개념은 신약성경에 의하여 극복되어진 이교적 주제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도래할 심판과 구속은 역사상의 사건과 단순하게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종말적인 성취가 구약성경의 모형들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고차원적인 영광의 단계에 의하여 결정되어지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스케일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초월한다.7) (76.4)
 새 언약에는 옛 언약의 영광을 훨씬 넘어서는 영광이 있다(고후 3장). 메시야적 이스라엘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대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이다(롬 9장-11장: 필자의[예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7-8장에서 이 점에 관하여 다룬것을 보라).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의 대적들—애굽, 바벨론, 에돔그리고 그 외 다른 열방들—은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적하는 대적자의 상징이다. (77.1)
 야훼의 날은 그리스도의 날로 변화되었다(고전 1:8; 고후 1:14; 빌 1:6, 10; 2:16). 야훼의 진노는 어린양의 진노가 된다(계 6:16). 신약성경은 하늘의 용사로서의 야훼를 거룩한 전사로서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바꾼다(계 19:11-15). 구약성경이 야훼를 “모든 신의 신, 모든 왕의 주재”(단 2:47)로 인정하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6)라는 칭호를 받으신다.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그의 구원하고 벌을 주는 의(義)를 나타내셨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전능하신 이의 큰 날”(계 16:4)의 전쟁에서 그의 구속하고 처벌하는 심판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적 대적들의 영토에 내린 심판은 아마겟돈전쟁에 대한 모형들(types) 혹은 행동화된 예언들(acted prophecies)이 되고 있다. (78.1)
 1) A. J. Ferch. The Son of Man in Daniel Seven. Andrews University Seminary Doctoral. Disssertation. Series 6 (1979). pp. 99-107.

 2) The Interpreter s Bible (Nashville: Abingdon Press. 1956). 6: 756.

 3) J. G. Baldwin. Haggai, Zechariah. Malachi, gen. ed. D. J. Wiseman. Tyndale OT Commenta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83). pp. 77—80를 보라.

 4) Peter C. Craigie. The Problem of War i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Pub. Co.. 1978). p. 38.

 5) Haggai. Zechariah. Malachi.. p. 167.

 6) H. K. LaRondelle. The Israel of God in Prophecy (Berrien Springs. MI: First Impression. 1984)의 4장을 보라.

 7) F. Foulkes. The Acts of God. A Study of the Basis of Typology in the Old Testament (London: Tyndale. 1955)을 보라. (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