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4장 묵시문학에서의 최후 전쟁 전망
 다니엘과 에스겔은 묵시문학(apocalyptic)이라고 명명되는 새로운 예언문학 형태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궁극적으로 회복될 확실성을 제시하였다. 묵시문학의 한 가지 기본적인 특징은 현 시대와 메시야 시대라는 두 개의 연속적인 시기로 역사를 시대별로 분류한 것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개념은 하나님의 회의가 역사의 행로를 결정했다는 추정하에서(단 10:21) 연속적으로 전개될 미래의 사건의 순서를 예언한다. 역사의 클라이맥스는 야훼께서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는 우주적, 세계적 심판이다. 그분의 판결은 자신의 백성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성소에서 자신의 백성들이 드리는 경배에 대해 적대적인 모든 정권과 군사력을 전복시킨다. 그리고 그분은 너무나 오랫동안 욕됨을 당하고 거부당해 온 자신의 신실한 언약의 백성들을 옹호하실 것이고(단 7장8장을 보라), 그들에게 세계의 영원한 지배권을 위임하실 것이다(단 2:44; 7:27). 그렇지만 다니엘은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구원에 의하여 끝마쳐질 마지막“환난” 혹은 하나님의 성도들에 대한 전쟁이 먼저 있어야 됨을 지적한다(단 12:1; 11:44, 45). (67.1)
 그러나 성경은 인종적 이스라엘 모두에게 무차별적인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핍박 중에서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들과 그 이름이 “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구위함을 받을 것이다(단 12:1; 사 4:3; 말 3:16; 겔 13:9; 시 69:28). 이 묵시문학적 구원은 다니엘 3장6장에 나와 있는 정치권에서 내린 사형령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다니엘서의 놀라운 기사 속에 예시되어 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천상 방어자이신 “대군 미가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는 그는 이 땅과 우주에 있는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들에 대해 사법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결국 승리할 것이다(단 12:1; 10:13, 20, 21; 사 24:21). 다니엘 12장에 기록된 미가엘의 메시야적 승리는 다니엘 7장에 나온 인자의 즉위의 실제적인 결과이며 또 다니엘 8장에 나온 만왕 곧 메시야의 승리로 볼 수 있다.1) (67.2)
 신약성경의 묵시록인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의 천상 전사(미가엘)와 만군의 왕을 한 인물로 보아 그분을 부활하신 주님으로 그 신원을 밝혀주고 있다(계 12:3-10을 보라). (68.1)
 다니엘이 아주 간략하게 이스라엘에게 “환난”의 때가 있으리라고 지적한 것을(단 12:1) 에스겔은 두 장의 광범위한 시나리오에서 더욱 상세히게 전개한다(겔 38장; 39장). 에스겔 선지자는 유수후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온전한 언약의 축복하에서 “성벽 없는 고을”에 살면서 약속된 땅에서 회복되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겔 38:11). 만일 혹자가 37장39장의 연속적인 순서를 받아 들인다면, 이 장(38장)에 메시야 시대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더욱 위대한 다윗으로서의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신이 이스라엘에게 쏟아진다(겔 37:24, 25; 39:29). 선지자는 먼 북방의 곡이 지휘하는 열방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 종말적인 백성들에게 행하여질 대단위 공격을 “얕은 꾀”라고 칭한다(겔 38:10).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거룩하지 못한 전쟁을 하나님의 고차원적인 목적의 일부분으로서 해석한다.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16절; 4절 참조). (68.2)
 섭리가 기록된 성경은 야훼에 의한 살육의 날인 묵시문학적 대학살이 임할 것을 선언하기 조차한다. “너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서 고기를 먹으며 피를 마실지니라.”(겔 39:17; 삼상 17:45-47; 습 1:7; 사 34:5-8; 렘 46:10; 51:39, 40). (69.1)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다시 개입하실 것을 확신한다. 그분은 승리의 전사로서 고대에 하셨던 것처럼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야훼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임재를 “이스라엘 땅의 큰 지진”으로 나타내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적군들에게는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정도의 공포감을 조성할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이 쏟아질 것이다(겔 38:18-22). (69.2)
 선지자는 이전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전수된 야훼의 전쟁 개념을 설득력있게 사용하고 있다(겔 38:17; 39:8 참조).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대적은 이스라엘의 산에서 분쇄될 것이다(겔 38:8, 21:39:2, 17). “나의 산에서 발 아래 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라고 마치 이사야가 이전에 앗수르에 대하여 예고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대적은 이스라엘의 산에서 분쇄될 것이다(사 14:25). (69.3)
 요엘도 마찬가지로 매우 상세하게 이전의 선지자들의 일반적 전망을 전개한다. 그 한 실례로 미래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의 신을 부어 주실 것을 말한다(욜 2:28, 29; 참조. 사 32:15; 44:3; 겔 39:29). 그는 예루살렘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환을 이용하기 조차 한다. (69.4)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문자적으로는 거룩케 한다는뜻)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다 가까이 나아와서 공격하게 할지어다
(욜 3:9; 참조. 렘 6:4).
(70.1)
 요엘의 묵시문학적 조망은 야훼께서 열방들과 최후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에스겔의 기대와 놀랍게 맞아 떨어진다(겔 38장, 39장을 보라). 에스겔서에서와 같이 요엘도 이 최후 전쟁의 성질을 국가 대국가의 세속적 투쟁 아닌 하나님과 자기 언약의 백성에 대해 반역으로 뭉친 세계와 하늘 간의 우주적, 세계적 전쟁임을 강조한다. 야훼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사를 관장하신다. 그분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의 최후 대결을 명하신다. 이 골짜기는 심판을 위해지정된 장소로서 시온산 주위의 골짜기들이 합쳐진 곳이다. 야훼께서는 직접 그 최후 결과를 결정하신다. (70.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위하여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니라(욜 3:2).
(70.3)
 요엘은 야훼를 최후 소송에서 대적들에 대한 자신의 거룩한 원고(原告)로서 묘사하고 있다. 선지자는 계속 반복하여 이스라엘을 세속적 민족이나 종족적 이스라엘로서가 아닌, 야훼의 기업과 야훼의 백성(2-3에서 다섯 번)으로서 묘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영적 백성으로서 혹은 신정(神政)으로서 말이다. 야훼의 쉐카이나(Yahweh’s Shekinah) 즉 하나님의 영광 광채는 자기 백성을 위한 피난처인 시온산에 거한다(17절을 보라). (71.1)
 블레셋과 페니키아의 도성들 그리고 두로와 시돈에 대한 소추는 그들이 사로잡은 이스라엘인들을 헬라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열방중에 그들을 흩어 버렸다는 것(2절, 4절, 6절: 참조. 암 1:6, 9; 겔 27:13)과 그들이 야훼께 속한 이스라엘의 금과 은을 도적질하였다는것이다(욜 3:5). 고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4절)라고 묻는 자신의 묵시문학적 소송에서 그 자신을 자기 언약의 백성들과 일치시킨다. 하나님의 판결은 모세 율법이 담고 있는 응보적 공의와 일치한다.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라”(4절; 7절도 보라). 이 율법은 특히 거짓 증인들에게도 해당된디(신 19:18, 19 참조. 시 7:15, 16; 9:15, 16). 이방인들은 부당하게 이스라엘을 고소하고 정죄하였다. 역사는 유대인 노예 상인 페니키아인들과 블레셋상인들 자신들이 노예로 팔렸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그들을 노예로 팔았다.2) 하나님의 심판은 말세의 이교도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고소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그를 경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짓된 비난과 핍박이 바로 그것이다(욜 2:32). (71.2)
 이스라엘이 멸절 위기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선고의 집행에는 야훼 전쟁의 속성이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요엘은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라고 탄원한다(욜 3:11). 그것이 야훼의 우주적, 세계적 날이기 때문에(14-16절) 선지자는 묵시문학적 전장(戰場)을 기드론 계곡이라 부르지 않고 상징적으로 “여호사밧 골짜기”(2, 12절)라고 불렀는데, 이는 “야훼 심판”의 장소란 뜻이다. 포도주 틀 안에 있는 사악한 큰 무리의 “포도주 틀 밟는 자”로서 야훼를 묘사하는 익숙한 상징적 표현에서 재차 이 점이 강조된다(13절 참조. 사 63:3; 렘 25:30). 요한계시록은이 상징주의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전세계적인 그의 대적들에 대하여 묵시문학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묘사하는 것에 적용하고있다(계 14:4-20). (71.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종말적 전쟁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은 아주 중요하다. 스가랴서의 마지막 세 장은 문학적으로 교차 대구법(chiasmus) 형태인데, 그 중심점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야적 예고를 가리키고 있다(슥 12:10-14; 13:7-9).3) 스가랴서는 9장에서 왕 메시야를,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에서 “치임”을 당할 혹은 순교할 야훼의 친한 동료로서 소개한다(슥 13:7; 12:10).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미 이러한 고난받는메시야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양떼를 흩으려고 목자를 치리라”(슥 13:7, 예루살렘 성경). 수세기 후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스가랴의 예고의 성취로 보았다. 암시하는 바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야훼의 흩어진 양들로서즉 이스라엘의 참된 남은 자들로서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다(마 26:31; 막 14:27을 보라). (72.1)
 이스라엘이 목자 메시야를 거부하고 사형시킨 결과로 야훼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온 땅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러므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을” 것이(슥 13:7, 8 참조. 14:2). 이 심판 연설의 형태는 에스겔이 바벨론 유수전에 행하였던 예루살렘에 대한 신탁 유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겔 5:2, 4, 12). 예루살렘에 대한 에스겔의 전쟁 신탁은 신실한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이정표에 의하여 보호함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점을 강조하고 있듯이(겔 9장) 스가랴도 하나님께서 장차 말세에 신실한 남은 자들 즉 메시야 죽인 것을 회개한 이스라엘인들을 남겨 두실 것을 약속한다. (73.1)
삼분지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갈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할 것이라
(슥 13:8 하, 9 참조. 12:10).
(73.2)
 예루살렘에 대한 야훼의 전쟁을 설명한 스가랴의 충격적인 이론적 근거에 비추어 보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신 이유가 명확해진다(마 24:15, 16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로마 군대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킬때 야훼께서 거룩한 도성과 전쟁을 벌이시는 것으로 보았으니, 이것은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라고 한 스가랴의 예고와 일치한다(슥 14:2).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께서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눅 21:22)고 설명하실 때 이 예언과 그 외 다른 예언들을 생각하고 계셨다. 그리스도께서 선지서에 기록된 최후의 심판 신탁을 예루살렘에 적용한 이유는 그의 임재가 자신의 언약의 백성에게 메시야적 평화와 구원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문이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눅 19:41, 42). 예수께서는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시에 우시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오시는 때를(개역성경, ‘권고받는 날을’: NKJV, RSV. ‘방문’(visitation)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44절)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들 조상의 죄의 양을 채우는 것이다(마 23: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넘어서 만인의 심판자로서의 자신의 귀환도 보셨다. 또 스가랴의 예언이 전 세계적인 규모로 성취될 것이다(마 24:30; 슥 12:12).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찌른 자들과 자신의 백성 즉 영적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들과 성전(聖戰)을 벌이실 것이다(계 1:7; 6:14-17을 보라). (73.3)
 1. 요약
 구약성경은 야훼께서 애굽(출 15:3, 4), 아말렉(출 17:16), 블레셋(삼상 17:45-47), 아모리 사람(암 2:9), 바벨론 등과 같은 과거 이스라엘의 불구대천의 원수들과 실제로 전쟁을 벌이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해를 갑작스럽게 마르게 함과 바로의 군대를 익사케함을 통한 애굽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구원을 성경은 야훼, 왕권의 집행으로 보고, 약속된 땅에서 이스라엘이 거둘 미래 승리의 원형으로서 제시하고 있다(출 15:14-16, 18; 신 1:30; 7:19; 미 7:15; 사 11:10-16; 43:16-19). 성경의 저자들은 야훼 전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지진, 우뢰, 태양 현상들, 달, 별들 억수같은 비와 우박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의 공격자들을 마비케 하는 공포와 가공할 만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으로 일정하게 묘사한다(출 15:16; 신 7:20, 23). 이와 같은 것들이 야훼의 현현적 임재의 표시이다.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은 참된 야훼 전쟁을 이루고 있다. 즉

   (1) 여호와의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하여 전쟁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부름

   (2) 이스라엘의 참여를 위한 하나님의 지시

   (3) 승리에 대한 보증이다. (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