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4장 교회들에게 보낸 기별 (제1부)
 서머나 교회의 이기는 자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계 2:11). 육신의 죽음은 일시적인 수면(잠)이며, 부활의 소망 때문에 영원한 비극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둘째 죽음, 곧 부활이 없는 영원한 사망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경고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68.1)
 서머나 교회의 경험은 2세기와 3세기 동안에 로마제국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해졌던 심한 핍박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기별에 언급된 “10일 동안”(계 2:10)은 예언적으로 악명 높은 제왕들의 핍박, 즉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황제가 시작하여 그의 후계자인 갈레리우스(Gallerius) 황제가 계속한 10년 기간(A.D. 303-313)에 적용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서머나 교회는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에서 2세기 초기로부터 대략 A.D. 313년까지의 기간, 즉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저 유명한 밀라노의 칙령(Edict of Milan)을 내려,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때까지의 시기를 대표한다. (68.2)
 버가모 교회에게 보낸 기별(2:12-17)
 세 번째 기별은 서머나에서 동북쪽으로 약 40마일(G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 한 버가모(Pergamum: 현재 터키의 베르가마[Bergama])에 있는 교회에 보내졌다. (69.1)
 성경절 : 요한계시록 2:12-17

 (69.2)
 버가모(Pergamum) 도성
 버가모는 2세기 반 이상 동안(소)아시아 도(道)의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에베소가 수도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버가모는 정치적으로 중요했을 뿐 아니라, 헬레니즘 세계의 지적(知的) 생활의 소아시아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다. 이 도시의 유명한 도서관은 거의 20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여,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도서관 다음가는, 고대에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서관이었다. 이 도시는 또한 고대 세계의 유명한 의사 갈렌(Galen)의 고향이었으며, 갈렌은 그곳에 있던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의학당에서 공부했다. (69.3)
 버가모는 또한 이름난 종교 중심지였으며, 아시아에서 황제숭배를 도입하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 아구스도) 황제를 위해 거대한 신전을 건축한 첫 번째 도성이었다. 서머나와 마찬가지로 버가모는 황제숭배를 의무화했다.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증명서나 사업면허증을 얻기 위해서 시민들은 1년에 한 번씩 황제의 조상(彫像)앞에서 향을 사르고, “가이사(시저)는 우리의 주(主)이다”(Caesar is our Lord)라고 선언해야만 했다. 그 의무를 거역하면 시민의 법적 지위를 박탈당하고 핍박을 받아야 했다. (69.4)
 그 도시는 또한 제우스(Zeus), 아테나(Athena), 디오니소스(Dionysus),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에게 헌정된 장엄한 신전들로 잘 알려졌다. 그 도성의 성채에는 제우스를 위한 웅장한 제단이 있었고, 그 제단의 중심부는 현재 베를린의 버가모 박물관(Pengamon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그 도성의 근방에는 그리스의 치료의 신아스클레피오스의 거대한 사당이 서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구원자”(the Savior)로 불렸으며, 뱀으로 상징되었다. 뱀이 현대의 서양 의학에서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 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요한의 시대에 아스클레피오스 사당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사람들은 이 구원자—신의 치료를 받기 위해, 온 세상에서 몰려들었다. 이로 인하여 버가모는 일약 “아시아 도의 루르드”(Lourdes of the province of Asia)가 되었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도시로서, 1858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하는 가톨릭 여신자의 주장에 따라 기적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관광도시이다.—역자 주] (69.5)
 이 모든 것들이 버가모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운 상황을 조성하였다. 그들은 이교주의와 이교의 찬란한 신전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에 반대 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 도성의 상부에 위치하여 전 지역을 압도하는 제우스 제단에서 올라가는 연기를 항상 보면서 살았다. 그들은 아스클레피온(아스클레피오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치유센터)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기적적 치료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소문은 그들 가운데서는 기적이 사라져 가고 있는 때에도 유포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버가모를 “사탄의 위(位, 보좌)가 있는 곳,”“사탄이 거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70.1)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별
 예수님은 버가모의 그리스도들에게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소개하신다(계 2:12). 버가모에 있던 로마의 주지사는 “칼의 권능”(ius gladii[유스 글라디이], “the right of the sword”), 즉 사람을 죽음에 처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6 이 사람이 그러한 권세를 그리스도인들에 행사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교회에게 생사를 좌우하는 권세는 오직 자신에게만 속해 있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다(참고 계 1:17-18). 인간이 그러한 권세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그 최후의 결정권은 예수님의 것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70.2)
 예수님은 버가모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대적하는 곳에 살고 있음을 아신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사탄이 거하며,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 즉 사탄의 활동 본부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함이 확고부동하였다. 그들은 황제숭배를 용인하지 않고 이교의 신들과 그들의 행습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그들 중의 더러는 그들이 그리스도께 충실함 때문에 벌금을 물기도 하였다. 한 탁월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안디바(Antipas, 안티파스)는 그리스도께 충성함으로써 로마의 도지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71.1)
 그렇다고 해서 버가모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충성한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는 자기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교의 관습과 타협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두 진영, 즉 니골라당(Nicolaitans)과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에게 속하였다(계 2:14-15). 예수님이 그 두 부류를 함께 언급하셨다는 사실은 그 두 그룹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발람”(Balam)은 히브리어 이름이고, “니골라”(Nicolaos)는 그리스어 이름인데, 두 이름 모두 “백성들을 정복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언약의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모압 여인들과 부정한 관계를 맺게 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한 것과 같이(민 31:16), 이 사람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와 이교의 사교적—종교적 활동들에 참여하는 일에 있어서 타협함으로써 핍박을 피하도록 종용하였다(계 2:14). 에베소 교회는 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저항하였으나(참고 계 2:6), 이 니골라당 교사들이 버가모의 신자들 가운데서는 약간의 추종자들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계 2:15). (71.2)
 예수님은 이교의 종교적 관습과 타협하지 말도록 격려하신다. 그분은 그들이 회개할 것을 권고하신다(계 2:16).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 노선에서 돌아 서지 않으면, 심판이 곧 임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그들과 싸우러 오신다(계 2:16). 발람이 그가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사람들과 함께 검으로 죽임을 당한 것처럼(민 31:8; 참고 25:1-9), 발람과 니골라당을 따르는 자들이 이와 비슷한 심판을 당할 것이다. 임박한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되돌아서는 것이다. (71.3)
 버가모 교회의 이긴 자들, 즉 이교의 행습에 가담하기를 거절한 자들은 “감춰진 만나”“천사들의 떡”(“the bread of angels” [NIV, NASB], “권세 있는 자들의 떡”[개역한글판], 시 78:25)—를 먹을 특권을 약속받았다. 황제숭배에 가담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은 로마의 지사가 발행하고 그들의 이름이 적힌 증명서를 박탈당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약속하셨는데, 이것은 이교의 생활이 주는 어떠한 쾌락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권세를 그들이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72.1)
 이러한 버가모 교회의 상황은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주후 313년 이후의 그리스도 교회 전반의 상태를 대표한다. 교회가 이교와의 투쟁에서 마침내 이겼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이나 압력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 내의 다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이교와 타협하기를 선택했다. 이교의 철학 사상과 관습이 교회 안으로 침투하여, 점차적으로 교훈과 신앙의 근원이 되는 성경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기간에 확고부동하게 복음에 충실했으나, 4세기와 5세기에는 교회가 영적으로 쇠퇴하고 배교가 일어났으며, 이러는 사이에 교회는 타협의 유혹과 씨름하게 되었다. (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