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4장 교회들에게 보낸 기별 (제1부)
 이러한 위대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충성되고 열심히 일하는 교회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식어진 것이었다. 초창기에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엡 1:15)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사랑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올바른 행실과 건전한 교리에 치중함으로써 그리스도께 그들의 사랑이 쇠퇴했고, 그 결과로 서로간의 사랑이 사라졌다. 그들의 종교는 율법적이고 사랑이 없는 믿음이 되었다. 그들은 바른 행동을 했으나 그들의 행위는 냉랭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와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결여되어 있었다. (63.1)
 에베소 교회의 상태는 고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 가기 전의 형편과 흡사했다. 예레미야의 말을 빌자면, 이스라엘은 예전에 가졌던 하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을 잃어버렸다(렘 2:2).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에 빛을 전하는 하나님의 증인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고, 동료 인간을 학대하고 압박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부터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백성의 특권을 박탈하셨다. 이와 비슷한 벌이 에베소 교회에게 내려질 수 있었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반사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바로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에베소 교회는 고대 이스라엘이 그들의 특권을 상실했던 것과 같이, 그들의 촛대가 그 자리에서 옮겨질(2:5) 위험에 처해 있었다. (63.2)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세 개의 명령문으로써 호소하시는데, 그것은 “생각하라”(문자적으로는 “계속해서 기억하라”[keep remembering]), “회개하라”(repent), “처음 행위를 가지라”(do the first works)는 것이다(계 2:5). 첫째로, 에베소인들은 생각해야(계속해서 기억해야) 했다. 그리스어 본문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그들은 한때 그리스도와 나누었던 관계를 완전히 잊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마음속에 항상 생각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이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던 그리스도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서로간의 사랑을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그 교인들은 현재의 자기들의 영적 상태를 깨닫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해야 했다. 성경에서 회개는 한 사람의 생애가 근본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에베소인들에게 그들의 현재 상태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고하신다. (63.3)
 끝으로, 에베소인들이 해야 할 것은 그들의 처음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올바른 일을 행하는 데 손해를 봐 가면서 사랑하라고 재촉하지는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처음 사랑을 재생시키기면 올바른 행실이 따라올 것이다. 만일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헌신으로 돌아오면, 그들의 동료 인간을 향한 사랑은 그들 가운데서 넘쳐 흐를 것이다. (64.1)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율법을 엄격히 지키며 실천하는 일과 예수님의 사랑과 동정을 표현하는 일 사이에서 언제나 고전해 왔다. 이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기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구적인 경고가 되는데, 이는 그들의 일차적인 관심이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복음의 중심 주제인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64.2)
 에베소 교회에서 승리하는 자들—그리스도의 권면에 유의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그들은 생명과를 먹는 것을 금지 당했다. 이제 이 에베소 교회의 신실하고 이교의 관습에 가담하지 않은 신자들은 회복된 에덴에서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받을 것이다(계 22:2). (64.3)
 에베소 교회의 상황은 제1세기에 존재한 교회 전반의 상황과 영적 상태를 적절히 보여 주고 있다. 제1세기는 복음에 대한 사랑과 충성스러움이 특징을 이루던 시기였다. 그러나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하던 당시에 그 교회는 처음 사랑의 불길을 잃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복음의 순수성과 성결함에서 떠나가고 있었다. (64.4)
 서머나 교회에게 보낸 기별(2:8-11)
 둘째 기별은 서머나(현재 터키의 이즈미르[zmir])에 있는 교회에 보내졌으며, 그 도시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35마일(60킬로미터)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서머나 교회에 보낸 그리스도의 기별은 일곱 기별들 중에서 가장 짧은 것이다. (64.5)
 성경절 : 요한계시록 2:8-11

 (64.6)
 서머니(Smyma) 도성
 서머나는 에베소 곁에 위치한 또 다른 중요한 도성이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서 머나는 소아시아에서 무역과 통상이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항구 도시라는 평판을 얻었다. 이 도시는 또한 브루기아(Phrygia)와 루디아(Lydia)로 향하는 주된 교차로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 통로였다. 그 위치, 무역, 비옥한 농토 덕분에 서머나는 인구가 20만이나 되는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65.1)
 그 도시는 또한 정치, 종교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명한 체육 경기장, 도서관, 그 도(道)에서 가장 큰, 2만 명을 수용하는 공공 극장은 서머나의 자랑이었다. 부유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이 도성은 “아시아의 영광”으로 일컬어질 만했다. 또한 그곳에 번성한 학문과 의학 산업으로 유명했다. 이 도시는 또한 고대의 요명한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의 출생지였음을 자랑으로 삼았다. (65.2)
 서머나는 그 당시 자유도시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 로마와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이 도시는 많은 특권을 누렸다. 로마제국의 원로원은 서머나에 티베리우스(Tiberius. 디베료)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전을 짓는 특권도 부여하였다. 그래서 서머나는 황제숭배의 중심지가 됐다. 1세기말 이후로는 황제숭배가 모든 국민들에게 강제사항이 되었다. 충성을 표하는 행동으로 1년에 한 번씩 모든 시민은 신전에 가서 황제의 조상(彫像) 앞에 향을 사르고, “가이사(Caesar, 시저)는 주님(Lord)이다.”고 선언하는 것이 모든 시민의 의무였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만이 생계를 위한 직업(job)이나 사업(business)을 할 수 있는 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의 무사항을 따르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핍박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3 (65.3)
 이런 상황이 그 당시 서머나 교인들의 사정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황제숭배나 이교의 종교예식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신분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핍박을 당했고 심지어는 순교까지도 당하였다. (66.1)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별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계 2:8)라고 소개하신다. 예수님의 이러한 특성들은 서머나 교회의 사정에 적절하게 부합한다. 그 교회의 신도들은 지금 핍박의 어려움 속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극심한 핍박을 당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도 죽임을 당하기까지 핍박을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신도들이 당하고 있는 사정을 잘 이해하시는 분으로 그들에게 다가오신다. 예수님은 그들의 시련 속에서 그들을 붙들어 주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66.2)
 첫째로, 예수님은 그들의 환란을 잘 알고 계신다. 여기에 “환란”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thlipsis(쓸립시스)는 사람을 눌러 부수는 무거운 압박을 가리킨다.4 둘째로, 그 교회의 신도들은 극심한 궁핍과 가난 속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들의 궁핍은 그들이 겪고 있던 핍박과 관련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충성하여 우상숭배와 제왕숭배를 거절했으므로, 사회에서 추방을 당하거나 실직을 당하였고[제왕숭배를 거절하면 사업의 면허나 직업 인가를 못 받는 것이 당시의 법이었다.—역자 주], 어떤 이들은 투옥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환란과 물질적 궁핍 속에서도 서머나 사람들은 은혜와 믿음에 있어서는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66.3)
 또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악의적인 훼방으로 그 교회가 심각하게 해를 당하고 있음을 언급하셨다. 그 당시 로마제국 안에서 유대인들은 통상 제왕숭배나 이교적 우상숭배를 면제받고 있었다. 하지만 1세기 말경에는 서머나에 살던 유대인들은 그 지방 지역 관리들과 좋지 않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로마인들은 가끔 초기 그리스도들과 유대인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별시키려고 했다. 유대인들은 지방 관리들 앞에서 악의적인 고소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을 중상했으며, 당국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도록 선동하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회”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기 위하여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사탄의 회”(the symagogue of Satan)를 이루고 있었다(계 2:9). (67.1)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장래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님은 온유한 음성으로 “두려워하지 말라”(stop fearing, 계 2:10)고 권고하신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일 4:18).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곧 10일 동안 옥에 갇히고 심한 시련을 받을 것인데, 이는 옛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에서 10일 동안 시험을 받았던 것과도 같다(단 1:12-15). 하지만 예수님은 서머나의 신도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충성하도록 당부하신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계 2:10). 여기서 “면류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stephanos(스테파노스)는 고대 올림픽 경기 등에서 승리자에게 주는 화환(gatland)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서머나의 신도들에게 약속하신 면류관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주실 영생을 뜻한다(딤후 4:8). 야고보가 말씀한 바와 같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약 1:12). (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