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2 편 건축을 위한 준비 제5장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
 

 하늘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출 25:8, 신킹제임스역)라.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이라는 감동적인 말을 우리는 얼마나 가볍게 읽고 있는가? 게다가 그 말씀 속에는 그분의 방황하는 자녀를 향한 울적한 사랑과 그리움을 얼마나 가득 담고 있는가! 다음의 간단하고 짧은 이야기는 그 몇 마디 말씀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속에 숨기고 표현된, 하나님의 동정심 많은 마음을 느끼도록 우리를 도울 것이다. (47.1)
 ‘바비’는 대단한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삼 일 동안 연달아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알리지 않고 학교에 결석을 했다. 선생님은 그가 몸이 불편한가 걱정이 되어 부모님께 문의 전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는 아침이면 여전히 가방과 도시락을 챙겨 부모님께 깍듯한 인사를 드리고, 저녁이면 빈 도시락과 함께 돌아와 숙제를 하는 척했으나, 그는 못된 친구와 어울려 며칠 동안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그들을 속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랐을 뿐 아니라 매우 슬펐다. 그들은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어떤 벌칙을 시행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밤새워 상의한 끝에, 그가 그의 자유를 남용했던 기간인 삼 일 동안만큼의 자유를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다락방에 있어야 했으며, 거기서 홀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했다. 거기에는 안락한 침대가 있었고, 식사 시간에는 아빠가 음식을 그에게로 가져왔다. 밤이 오자, ‘바비’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서움에 떨었다. 부모들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잘 수가 없었고, ‘바비’에 대해 깊이 걱정을 하였다. 아버지는 이리저리 오가면서, 다락에 혼자 있는 어린 ‘바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47.2)
 “존, 무슨 일이에요? 왜 잠자리에 들지 않아요?”라고 아내가 한마디 건넸다. (47.3)
 “잠이 오지 않아요. 아무래도 올라가서 ‘바비’와 같이 있었으면 해요”라고 남편은 대답했다. 그리고 다락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거기서 ‘바비’는 홀로 깨어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아이의 곁으로 이불을 들치고 들어갔다. (47.4)
 그리고 그는 아들을 팔로 안고 뺨에 입맞춤으로 아이의 눈물을 훔쳐 냈다. 그가 말할 수 있었던 전부는, “아빠는 나의 아들 ‘바비’를 사랑하지. 그리고 아빠는 네가 좋은 소년이 되길 원해”였다. (48.1)
 그들의 눈물은 뒤엉키었다. 그처럼 말썽쟁이였던 이 어린 소년은 그의 그릇된 행동이 결코 갚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매일 밤 다정한 아버지는 그의 안락한 침대 대신 다락에 있는 ‘바비’의 침대를 선택했다. ‘바비’가 다락에 있는 동안, 그는 결코 자신의 편안한 방에서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삼 일이 끝났다. ‘바비’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고, 그의 가족의 품으로 원상 복귀할 수 있었다. (48.2)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그러하시다. 죄의 문둥병 때문에 우리는 격리, 즉 그분의 임재로부터 분리되었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위대한 마음은 그분의 방황하는 자녀를 그리워하며 따라가신다. “온 하늘은 세상과 인간의 창조에 깊고도 즐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새롭고 특수한 존재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창 1:27; R&H, 1902. 2. 11.; SDA Com. Vol. 1, 1081). 죄가 창조주의 사업을 더럽혔지만,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으셨다. 그분은 그들과 함께 계셔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우리 구주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그분은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도록 하라는 사랑의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 줄 성소를 짓도록 하셨다. (48.3)
 성소란 무엇인가?
 성소(聖所)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하여 둔 장소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생활의 염려와 혼란한 활동에서 벗어나, 조용한 명상과 연구를 위하여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개인 용도를 위하여 그의 가정에 방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는 이 방을 그의 거룩한 곳(Sanctuary)이라고 부른다. “성소”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거룩하다”를 의미하는 “거룩한 곳”과 같은 개념을 담고 있다. 만약 사람이 그의 거룩한 곳을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사용함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문자적으로 “가장 신성한 장소”를 의미하는 “지성소”라고 말할 수 있다.1) 웹스터 사전은 “성소를 피난처나 보호의 거룩한 장소”로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우리가 그분과 함께 조용히 친교하며 피할 수 있는, 우리의 피난처와 보호의 장소, 즉 우리의 성소(Sanctuary)로 삼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48.4)
 마음속에 있는 “작은 성소.”
 시내 산에서의 성소의 건축이 이스라엘 경험에 새로운 시대를 구분하여 주듯이, 성소가 우리의 마음속에 세워질 때, 그것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에 새로운 시대를 펼쳐 준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이방에서 멀리 떨어져서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가 포로로 체류하는 나라에서 “작은 성소”(겔 11:16, 킹제임스역)로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분의 임재의 방”2)으로 하나님의 성소가 있어, 우리가 적의 올무와 함정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표상인가! (49.1)
 하나님과 하나가 됨
 “내가 그들 가운데(among) 거”(출 25:8)한다는, 성경절의 실제적인 의미는 ‘내가 그들 안에(in) 거’하여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망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하”(요 17:21, 신킹제임스역)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한 육체가 되신 것은, 우리가 그분과 더불어 한마음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시대의 소망, 388).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한 것”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요 17:23. 새번역)고, 그분의 백성 안에(in) 거하기를 갈망하셨다. 이것은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이라는 표현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능한 가장 밀접한 관계이다. (49.2)
 성소의 건물 안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이 연합이 나타난다. 성소의 모든 부분품들은 그리스도뿐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닮아야 할 모습을 보여 준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갈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성소는 그분께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 하늘로 데려가시기 전까지, 지상에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동행하여야만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가 있어야만 한다. (49.3)
“주여 옛날 에녹같이
주와 동행 원하오니
나의 손목 잡으시고
나와 동행하옵소서.”

-L. D. Avery Stuttle, 찬미 534장-
(49.4)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히 2:11; 11:16, 신킹제임스역)신다. (49.5)
 옛 영국 작가인 레인포드는, 성소를 사람들과 함께 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소는 “성령의 전”(고전 3:16; 6:19)으로 참된 신자의 표상이다. 또한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엡 1:23, 신킹제임스역)인 교회의 표상이다. 성소는 죄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실수가 없는 표상이다. 성소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로 이르는 길이다. (50.1)
 하나님과 영원히 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