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1장 총론 제3절 “제3의 새 종교”의 특성과 그 유물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담은 조각품들은 일종의 모조품인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시기 위해 오시기 여러 세기 전에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가 자기의 아들 호루스신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조각품, B.C. 1000년경의 작품으로 텔로(Telloh,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라가쉬[Lagash])에서 출토된 돋을새김(양각)으로 된 풍요의 여신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히타이트 왕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나톨리아(Anatolia)의 마라쉬(Marash)에서 발굴된 돋을새김의 마돈나, 소아시아의 아스그론 유적지에서 발굴된 이시스 여신과 그의 아들 호루스가 양각된 비석, 그 중에서 소아시아의 아르프로디시아스(Arprodisias) 유적지에서 발굴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녀의 날개 달린 사랑의 신 에로스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의 조각 등등이 인기가 있어 왔다. 그런데 “제3의 새 종교” 시대가 되니 그 여러 나라의 여신들이 마리아로 통일됨에 따라 “마돈나”로 통일하게 된 것이다. (111.3)
 

왼쪽 :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가 아들 태양신 호루스를 안고 있는 상. 카이로 박물관 소장
오른쪽 : 라기쉬에서 출토된 테라코타, 루브르 미술관 소장
(112.1)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에로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비너스와 쿠피드로 등장한다. (112.2)
 

여신 아프로디테가 아들 에로스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한 상
 

필리피노 리피 작, 산드로 (성회화) 에서의 성 모자,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마리아 상 위에 있는 조개 껍질을 주목하라. 이 마리아가 바로 조개 껍질 위의 “거품에서 태 어 난자” 라는 뜻의 아프로디테 여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임
 이 여신들은 「사랑과 미」의 여신들인데, 「제 3의 새 종교」시대 이후부터 마리아로 개명되었다. 이름은 바뀌었을지라도 그녀의 아들(에로스 또는 쿠피드)는 아기 예수와도 함께 나타난다. 그리하여 마리아라는 여신은 곧 아프로디테(또는 비너스)라는 여신이었다는 것을 중세 유럽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시대의 미술가들도 회화나 조각 또는 모자이크로 그런 것을 표출했던 것이다. (115.1)
 현대 일요일 신성론 신학자들이 일요일 예배의 기원을 성경 속에서 찾으려고 되지도 않는 안간힘을 기울일 것일 아니라, 유럽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신화와 점성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15.2)
 5. 성상 논쟁
 a. 개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6).
(115.3)
 출애굽기 20:4-6에 수록된 십계명 중 둘째 계명이다. (115.4)
 A.D. 313년에 밀라노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는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 황제들의 칙령이 반포되자, 오랜 박해 기간 동안 숨어 지냈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당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의 요청에 의해 황실 점성관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와 유세비우스 감독의 협상 성공으로 제국의 불패의 태양신 아폴로와 기독교의 의의 태양 그리스도가 통합되어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제국의 공적 휴업일로 제정, 공포하게 되었다(A.D. 321. 3. 7). 뒤이어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일요일 예배를 결의하게 되자 교회는 기독교의 옷을 입은 태양신교로 변모해 갔다. (115.5)
 

산타 콘스탄자
(116.1)
 이런 상황을 A.D. 330년경 로마 황제의 딸을 위하여 건축된 성당 산타 콘스탄자(Santa Constanza) 벽화에 그려진 모자이크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모자이크 그림의 내용은 다분히 주신제적이고 이교적인 묘사이지만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를 이교의 요소로 묘사했다. (116.2)
 A.D. 401~417년에 건축된 또 다른 성당 산타 푸덴찌아나(Santa Pudenziana) 벽화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보좌에 좌정하신 모습이 세속적인 통치자로 묘사되어 있고 그 모자이크 그림을 향해 경배하도록 하였다. (116.3)
 b. 마리아 숭배 시작
 A.D. 430년에 에베소 회의에서 오랫동안 논쟁 끝에 마리아를 “데오토코스”(θεοτοκος) 즉, 하나님을 낳은 신이라 하여 “마리아 숭배” (marialatry)를 결의하였다. (117.1)
 그러자 로마를 중심으로 해서 이탈리아 전역과 그리스, 소아시아 등지에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들이 세워지고 각종 이교의 신전들이 마리아 성당으로 바뀌면서 마리아 신상을 성당 안에 설치하고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것의 최초가 로마에 A.D. 342년에 세워진 성 아그네세 성당(Basilica of Saint Agnese)일 것이다. (117.2)
 

최초의 마리아 신상을 모시고 숭배하기 시작한 아그네서 성당 내당
(117.3)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성스러운 지혜’) 성당 돔의 정상 중앙의 쿠폴라스(Cupolas)에도 십자가형과 그리스도의 초상화 그리고 태양상이 모자이크되었다. 그리고 벽에는 마리아가 모자이크되어 있어서 마리아 숭배를 유도하였다. 그러나 성상 숭배를 반대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을 “성상 파괴자들”(iconoclasts)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항쟁은 나날이 거세어졌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성상 논쟁에 마침내 황제가 개입하게 되었다. (1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