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와 안식일 제 5 장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 아버지가 사람의 아들에게 생명과 사랑과 거룩으로 입맞추는 날이다. 사람은 창조주일의 제6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아들은 제칠일에 태어났다. 여인은 제6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신부는 제칠일에 태어났다. 제칠일은 아들과 신부가 태어난 날이다. 사람이 아들과 신부로 거듭난 날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과 신부로 태어나는 행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는 행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아들과 신부로 아는 행위이다. (50.1)
 거룩은 앎에 이르는 행위이다. 앎으로 구별된다. 안수 행위가 앎에 이르는 행위이다. 입맞춤이 앎에 이르는 행위이다. 기름부음과 성령 부음을 입는 행위가 앎에 이르는 행위이다. 할례가 앎에 이르는 행위이다. 같이 있고, 같이 자고, 같이 생명과 사랑의 호흡을 나누는 안식의 행위가 앎에 이르는 행위이다. 거룩에 이르는 길이다. (50.2)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 날이다. 하나님을 알고 영생에 이른 날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이다(요 17:3). 안식일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아버지 되고 아들이 된,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신부가 된 “화목의 비밀을 아는 것”(요 13:11) 이다. 안식일은 그 지식, 곧 이 “천국 비밀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를 아는” 날이다.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를 아는 우리의 앎이 다시금 새로워지는 날이다. (51.1)
 안식일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사람과 함께 하고 사람과 함께 안식하여 그 불타는 사랑의 숨을 사람아들의 마음에 물 붓듯 부으신 날이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을 그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을 그 남편으로 아는 지식을 넘치게 하는 날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날이다. (51.2)
 이 영화, 이 거룩은 하나님의 아들이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이며 거룩이다. 첫 제칠일 안식일에 사람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요 17:5) 거룩이다.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소서”(요 17:5)가 우리의 안식일 기도이다. 또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1)가 “일곱째 날이 이를 때”(창 2:2)에 우리가 주께 드리는 안식일 기도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마 6:9),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서”(요 17:5)가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날에 주께 빌도록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이다. (51.3)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마 6:9)
 안식일은 사람아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마 6:10) 하는 날이다.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만” 그렇게 하지 말고 “네 골방에서,” 문 닫고 사는 “은밀한”(마 6:6) 생활 가운데서 그렇게 해야 하는 날이다. “은밀한” 네 마음속에서 그렇게 하는 날이다. 안식일의 하나님 아버지는 은밀한 중에 계시는 분이시며,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시다(마 6:6). 하나님의 이름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두신 이름이다. 은밀한 곳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이름이다.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시 91:1)이 안식일이다. 안식일에 거하는 자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이다. (52.1)
 제칠일 안식일은 아버지가 아들을 영화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날일뿐 아니라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날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사람아들인 우리가 거룩하게 지켜야 할 날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날이다. (52.2)
 하나님의 사랑의 기름 부음을 통하여 거룩하게 된 제사장은 하나님에게 그 거룩을 되갚는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해야한다. 거룩한 제사와 거룩한 헌신 봉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는 제사장의 행위이다. 신랑에 의해 거룩하게 된 신부는 신랑에게 거룩의 되갚음을 한다. 신랑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과 헌신이 그것이다. 신랑에 대한 신부의 배타적인 헌신과 봉사를 통하여 뭇 남자들 중에 제 남편을 뚜렷하게 구별하고, 자신이 이 한 남자에게만 속하였음을 사람들 중에 나타낸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남편의 “이름을 나타내는” 그것이 신랑을 거룩하게 함이다. 이처럼 아들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는”(요 17:6) 것이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요, 아들이 아버지 존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 15:4) 하는 삶이 아버지를 거룩하게 하는 안식일의 삶이다. (52.3)
 신약성경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잔치를 열고 하나님과 자리를 함께 하고 기름을 부어 하나님을 거룩하게 한 하나의 사건이 소개되고 있다. 요한복음 12장 1절-3절 그리고 마태복음 26장 7절의 이야기이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요 12:1)에서 발생한 이야기이다. “나사로의 있는 곳”은 하나님이 사람을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살아나게 하신 제칠일 안식일과 같은 곳이다. 안식일은 부활한 나사로가 있는 곳이다.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 시간이다(고전 15:44). (53.1)
 안식일은 사람아들의 “나 있을 곳”이요 “나 있는 곳”이다. 이 안식일과 같은 곳인 “나사로의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날인 안식일처럼 다시 태어난 “나사로가 예수와 함께 앉아 있는”(요 12:2) 곳 바로 임마누엘의 공간에 잔치 자리가 베풀어졌다. 이 자리에서 마리아가 지극히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붓고”(마 26:7) “예수의 발에 부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였다”(요 12:3). 사람아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거룩하게 하는 안식일의 집은 이러한 곳이다. 안식일은 하나님 아버지를 거룩하게 하는 향유 냄새가 가득한 시간의 성소이다. (54.1)
 “이 여자가 예수의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위하여 함이었다”(마 26:12). 즉 이 사건은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와 성령을 쏟으며, 그의 여자인 교회를 거룩하게 씻을 사건의 예시였다. 교회가 순교의 피로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거룩을 하나님께 갚음할 사건의 예시였다. 성자 하나님이 자기의 피, 곧 “내피로 세우신 언약 즉 너희를 위하여 붓는”(눅 22:20) 피의 언약을 미리 보여주는 행위였다. 십자가 사건의 갚음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태초의 첫 제칠일에 하나님 아버지가 사람에게 지극히 귀한 유향보다 더 향기로운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호흡, 당신의 생명을 부어 사람을 자신의 아들로 거룩하게 씻어주신 행위의 재현이었다. (54.2)
 그러나 그 뿐이 아니었다. 마리아의 이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갚음할 것을 미리 나타낸 행위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여자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갚음할 것을 미리 보여준 행위였다. 사람의 아들 예수는 이 여인처럼 십자가에서 그 보배로운 피를 하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그 머리털로 하나님의 발을 씻으신 것이다. 순교자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유향 같은 피를 붓고 그 머리털로 그리스도의 젖은 발을 씻었던 것이다. (55.1)
 안식일은 우리에게 이러한 심정의 날이다. 우리의 거짓됨이 없는 거룩한 사랑을 남김없이 아버지의 이름 위에 쏟고, 우리의 머리털로 하나님의 발을 씻는 날이다. 저 태초의 안식일은 예수님이 우리의 발을 씻으신 날이다(요 13:4, 5). 아니다. 모든 안식일이 하나님이 우리의 발을 씻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 그리고 이 날은 우리가 그 거룩한 사랑을 갚음하는 날이다. 하나님께 배운 사랑과 거룩의 행위로 예수께 배운 그 사랑과 거룩의 행위로 하나님 아버지 발을 씻는 날이다(요 12:3). 하나님의 발을 씻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마 6:9) 하는 날이다.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1) 하는 날이다. “세상 중에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게 하옵소서”(요 17:6) 하는 날이다. (55.2)
 아들 하나님이 인류의 머리에 자신의 피를 붓고 사람의 발을 씻은 거룩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귀한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은”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전하여 기념해야 한다”(요 12:3; 마 26:13).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아들을 거룩하게 한 희생적 사랑이 재현되어야하는 날일뿐만 아니라, 사람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를 거룩하게 한 희생적 사랑이 재현되어야하는 날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교회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거룩하게 하는 순교적 사랑이 재현되고 구현되어야 하는 날이다. (56.1)
 세상 중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게 하고서(요 17:6)
 안식일은 우리의 온 삶을 통하여 세상에 아버지를 알리는 날이요, 세상에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는 날이다. 신부가 신랑 한 사람에게 배타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하여 세상 중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랑의 존재를 뚜렷하게 구별하듯이, 하나님의 그 자녀이며 신부인 우리들도 배타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 한 분, 하나님 남편 한 분에게만 바치고 부음으로써 “세상 중에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는”(요 17:6) 날이다. 이런 날이 제칠일 안식일이다. 시편 92편은 바로 이러한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십현금과 비파와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다”(시 92:2, 3). 시편 113편도 안식일의 노래로 합당하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시 113:1). (56.2)
 안식일에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기를 비는 마음과 “세상 중에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게 하옵기를” 비는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요 17:9) 마음이다. 매사에 마음을 조심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이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다. “여호와의 안식일에서 참 기쁨을 얻는”(사 58:13, 14) 길이다. (57.1)
 안식일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내 영혼에 하나님의 이름을 아로새기고, 아로새긴 그 이름을 더욱 뚜렷하게 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자신의 현존과 그 이름을 사람에게 허락한 날이며, 사람의 영혼에게 자신의 현존과 이름을 아로새긴 날이다. 안식일은 그 아로새겨진 하나님의 이름, 그 현존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날이며 하나님의 이름이 명각된 날이다. 하나님의 도장이 된 날이다. 사람아들은 안식일에 제 영혼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새긴 아들이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아들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사람아들이 제 영혼에 명각된 하나님의 이름과 현존을 거룩하게 하는 날이다. 제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 현존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57.2)
 그럴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우리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요 17:6), 곧 “저희를 위해서도 나를 거룩하게 하는”(요 17:8) 날이다. “저희에게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요 17:8), 곧 “진리를 주어 저희로 거룩함을 얻게 하는”(요 17:17, 19) 날이며,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고 지키는”(요 17:12) 날이 안식일이다.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신 성자 하나님의 본을 받아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어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듯”이, 형제의 발을 “씻어” 거룩하게 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