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이브를 볼 때 그의 놀라움을 표현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의 권위를 행사한 후,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혼례로 그들을 연합시키셨다. 곧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결혼에 관한 이 근원적 설명은 성경에 세 번 반복된다. 먼저, 예수께서 이혼에 관한 교훈을 말씀하실 때 두 번(마 19:5; 막 10:7, 8)과 그리고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관계를 예증할 때(엡 5:31)이다. (28.1)
 언약으로서의 결혼
 성서에서 결혼의 성질에 대한 첫 묘사는 떠남, 연합, 그리고 한 몸이 되는 것(창 2:24)인데 이것은 결혼에 대한 성서적 이해를 언약 관계로 제시하는 것이다. 배필에 대한 언약으로서 결혼 언약의 의미는 후기 성경에서 더욱 자세히 표현하는데 말라기 2:14과 같은 구절들이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 한 아내로되.”1 신성한 언약인 인간의 결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한 언약과,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의 관계라는 각 기둥(프리즘)을 통하여 신구약에 나타난다. 거룩한 언약으로서 결혼에 대한 성서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계약과 언약의 차이를 구별 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팔머(Paul E. Palmer)는 이 둘 사이의 차이에 대한 유용한 구별을 제공한다. “계약은 사람이 수행할 봉사에 서약하되, 언약은 사람 자신에게 약속한다. 계약은 약정하는 기간이 있으나 언약은 영원하다. 계약은 약속하는 쌍방에 물질적인 손실과 함께 깨어질 수도 있으나, 언약은 위반으로 인한 개인적 손실이나 마음을 상실케 할 일이 있올지라도 파기될 수 없다. ∙∙∙ 계약은 보증인으로서 국가의 사람에 의해 증거되나 언약은 하나님께서 보증자로서 친히 증거하신다.”2 하나님에 의하여 증거되고 보증된, 영원한 서약으로서 언약을 말하는 빛에 비추어 창세기 2:24에서 말하는 결혼 언약의 세 요소 곧 떠남, 연합, 그리고 한 몸이 되는 것을 연구해 보자. (28.2)
 떠남
 결혼 언약에서 나타나는 첫 단계는 가장 가까운 부모를 포함한 모든 다른 관계들로부터 떠남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창 2:24). 물론 떠남은 부모를 저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책임을 성년들에게 적용하셨다(막 7:6-13). 우리는 부모들이 노령에 있다 하여도 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예수께서 그들의 부모에게 드려야 할 금전을 성전에 내면 된다고 하는 외식하는 자들을 꾸짖으셨다(막 7:9-13). 성인으로서 우리는 그들에게라기 보다는 그들을 위하여 책임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는 결혼한 부부가 그들의 부모와의 관계를 단절하여야 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과 딸로서 그들의 이전 생애를 살아가며 그들은 남편이요. 아내로서의 관계를 굳게 하여야 한다. (29.1)
 새롭게 형성된 결혼 관계 때문에 모든 작은 관계들을 양보해야 만 하는 “떠남”의 의미는 무엇인가? 떠남은 남편과 부인의 언약 관계를 결합시키기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 떠남의 원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 5:11)고 말했던 제자들과 같다.3 (29.2)
 떠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것은 종종 아기가 엄마의 태반을 떠날 수 없듯이 어려운 것 같다. 엄마에게 붙어 있는 아기의 탯줄을 끊는 의사를 볼 때 잔인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의 성장과 발육을 위하여 필요하다. 또한 자녀들이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자녀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에 가야 되듯이,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도록 해야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의 태반을 떠나지 않으면 육체적으로 자랄 수 없고, 학교로 가는 떠남이 자녀들에게 없으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것과도 같이, 결혼은 남녀가 새로운 결혼 관계를 연합하고 새로운 가족을 갖기 위하여 그들의 부모를 기꺼이 떠나지 않는 한 성숙이 있을 수 없다. (30.1)
 떠남의 관점
 어떤 남녀는 아직 어머니의 앞치마에 싸여 있는 과잉보호로 결혼 언약을 굳게 하기가 어렵거나 혹은 부모나 직업, 진학, 운동, 과거의 생활, 친구들, 혹은 심지어 교회의 일등 때문에 결혼 관계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그런 일로부터 훌쩍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30.2)
 떠남은 부양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처신이 바뀔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재정적 의존이 끝나는 것도 포함한다. 친히 자신의 힘으로 자립을 해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부부는 독자적인 그들의 미래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들 부모의 권위의 간섭을 벗어나 떠나야 한다. 소유욕이 강하여 방해가 되는 부모들은 결혼에 대한 최대의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부모의 권면이 항상 존중되어야 하되 결혼한 자녀들의 사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없어야 한다. (30.3)
 떠남은 또한 우리 부모의 태도와 감화의 일부를 버리는 것을 배우는 것도 포함한다. 우리가 자신을 양육시켜 준 부모의 품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결혼 관계의 조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과거의 양육에서 무엇이 근본적이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구별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결혼의 안정과 성장을 위하여 부수적인 것들을 스스로 버려야 한다. (30.4)
 아마도 떠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일 것이다. 저자의 결혼 생활의 20년 동안은 선과 악의 감정을 경험하던 때였다. 성령의 치료하시는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결혼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 었다. 예수님의 사랑과 배우자의 격려는 우리를 과거로부터 해방시켰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해심이 많은 배우자들이 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창세기 2:24에 기록된 결혼의 거룩한 제도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결혼 언약의 감격스러운 “한 몸”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사소한 관계에서 기꺼이 떠나야 한다. (31.1)
 연합
 결혼 언약의 두번째 기본적인 요소는 연합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창 2:24). 떠남은 연합이 시작되기 전에 연합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 과정을 말씀한다. 남녀는 연합의 목적을 위하여 모든 사소한 관계에서 떠나야만 하는데, 곧 그들의 새로운 관계를 결속시키고 새 가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31.2)
 “연합”은 언약에 충실하는 언약-신실이라는 중요한 뜻을 나타낸다. “연합”을 말하는 히브리어 다바크(dabag)는 “영원한 결속” 혹은 “함께 결합한 존재”를 뜻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언약에 대한 헌신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 중의 하나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연합)하고”(신 10:20; 비교 11:22, 13:4, 30:20). 이 단어는 룻이 그녀의 시어머니를 떠나기를 거절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룻 1:14). (31.3)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연합은 우리 존재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곧 마음의 전적인 헌신을 뜻한다. 이것은 잠시 동안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영원히 결속된 것을 의미한다. 두 조각을 테이프로 붙인 나무판을 조각낼 수는 있으나, 두 나무 조각이 하나로 잘 결속된 나무판을 부수기란 어렵다. 사실, 함께 결속된 두 나무 조각은 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함께 결속이 됨으로 더욱 강하게 되었다. (32.1)
 연합은 결혼한 상대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포함한다. 남자가 “그의 아내”에게 연합되는 것을 주의하자. 이것은 결혼의 불신실을 배제한다. 다른 여자를 희롱하거나 성적으로 방탕하면서 그 의 부인에게 결코 연합될 수가 없다. 둘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 (32.2)
 결혼 언약에서 연합은, 관계가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을 때 “마음대로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마음대로 떠나는 것”이 진정한 선택으로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언약은 신실로 특징 지어지는 결혼 관계를 계발시키려는 전적인 노력을 망칠 것이다. 결혼 상담자 휘트(Ed Wheat)는 말한다. “잠시 피난한다는 구실로 이혼을 한다는 것은 상호간의 헌신에 일격의 돌풍이 있을 것을 예기하되 마치 작은 실금일지라도 넓어지면 큰 힘이 되어 가정과 가족을 파괴하여 치명적이 되게 할 수 있다.”4 (32.3)
 연합에 대한 성서의 표준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혼 서약을 심사 숙고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묻는 것과도 같다. 나는 나의 혼인할 배우자에게 죽음이 우리의 사이를 나눌 때까지 풍부하는 빈곤하든 지를 물론하고 일생의 헌신을 서약하도록 준비하였는가? 한 번 결혼하여 연합되는 의미를 스스로 묻되 이와 같은 행동, 말, 결정 혹은 태도가 우리 서로를 더욱 가까이 연합시키는가 혹은 분리시키는가? 우리의 관계를 굳게 하는가 혹은 끊어 버리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생활하기로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연합을 약화시키는 어떤 행동도 결혼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32.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상호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방법을 계발하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들의 인격 성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결혼한 독신들의 생활 양식인데, 부부가 한 지붕 밑에서 한 침대를 쓰면서 살되, 그들의 독립된 생활을 살아가기를 고 집하는 별난 생활이다. 그와 같은 결혼은 종종 실패할지도 모를 일인데, 그것이 놀랄 일이 아닌 것은 ”풍부하든지 빈곤하든지, 형통하든지 어렵든지, 아프든지 건강하든지를 물론하고, 서로가 연합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들을 기꺼이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