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에서는 제칠일 침례 교회(The Seventh Day Baptist)가 지도적인 안식일 엄수 교회로 등장했다.166 미국에는 1671년 12월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에 이 교회가 처음으로 조직되었다.167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1845년에 제칠일 침례교회로부터 안식일의 기별을 받아들인 사실을 고마운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다.168 몇년 후인 1860년에는 제칠일 하나님의 교회로 알려진 무리들에 의하여 안식일이 창조의 법령으로 채택 되었다.169 근래에 와서는 세계적인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와 그밖에 수 많은 군소 교단들에 의하여 이 가르침이 채택되고 있다.170 (45.2)
 개혁교회의 전통. 영국의 청교도, 장로교회, 회중교회(또는 조합교회), 감리 교회, 침례교회 등 개혁교회의 전통에 속해 있는 교회들은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창조의 법령으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요일을 교회에 의하여 수립된 안식일의 적법한 대체(代替)제도로 옹호하는 이른바 “타협적인 입장”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일요일의 준수를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구별한다. 특별히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들의 안식일 엄수주와 사상에 원대한 영향을 끼친 이 사상의 개척자와 추진자로는 칼빈을 들어 마땅할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칼빈의 기본적인 입장은 율법과 복음을 반정립(反定立)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루터의 입장에 대한 그의 반대에서 나타나고 있다. 칼빈은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 통일성을 유지하려함으로써 율법을 기독교화시켰며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안식일 계명을 영(靈)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171 (45.3)
 칼빈은 안식일이 창조 때에 제정된 하나님의 규례임을 명백히 인정하였다. 그는 창세기 2장 3절에 대한 주석에서 “하나님은 첫번째로 안식하시고 다음에는 그 안식을 축복하심으로써 모든 세대에서 그 안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거룩히 여겨지도록 하셨다. 아니면 모든 제칠일을 안식일로 구별하여 그 분 자신의 귀감을 영구적인 규범으로 삼도록 하신 것”172이라고 확언하였다. 그는 사망하기 일년 전(1564)에도 5경(經)의 조화(Harmony of the Pentateuch)에서 꼭같은 확신을 피력하여 말하기를 “분명히 하나님은 세상 창조의 일이 끝나자 자신을 위하여 제칠일을 취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당신의 종들을 온갖 걱정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여 당신의 창조 업적의 아름다움과 뛰어남과 적합성을 깊이 생각하도록 하였다.”173 몇 줄을 건넌 다음에 칼빈은 또 “안식일을 거룩하게 한 사건이 그 법보다 앞서 있었다”174고 하였다. 또 그 동안에 안식일 이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완전히 끊어진바 되었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서도 거의 잊혀진 바 되었기 때문에”175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때에 그 계명을 다시 반포하신 것이었다. (46.1)
 칼빈은 안식일을 인류를 위해 창조때에 제정된 규례로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그 계명의 의식적인 부분이 철폐된 사실은 전혀 의심할 수 없다”176는 주장을 할 수 있었는가? 달리 말해서 어떻게 안식일은 모든 인류를 위한 창조의 규례가 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철폐된 유대(모세)의 예식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칼빈은 안식일 계명을 도덕적인 면과 예식적인 면으로 구분한 아퀴나스의 구분방식을 다소 수정하여 이로써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려 하였다. 즉 그는 창조의 때에는 안식일이 영구적인 규례로 주어졌지만 “후에 율법 시대에 와서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계명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 계명은 유대인들에게 특유한 것이었으며 일정 기간에는 유효한 것이었다”177고 했다. (46.2)
 그러면 유대(모세)의 안식일과 기독교(창조)의 안식일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신학적인 의미의 미세한 차이점들에 대한 훈련을 쌓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차이가 쉽게 간파되지 않는다. 칼빈은 유대의 안식일을 “표상적”(또는 상징적:typical)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영적인 쉼과 또 그리스도 안에 명백히 나타난 진리의 전조(前兆)가 된 의식적인 규례”178라는 것이다. 그 반면 기독교의 안식일(일요일)에는 “표상이 없다.”179 여기에서 그가 명백히 뜻하는 바는 일요일은 더 실용적인 제도로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기본적인 목적들 즉 첫째,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일하게 하며 둘째, 명상과 교회의 예배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주고 세번째, 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하가 위하여 고안되었다는 것이다.180 (46.3)
 해결되지 않은 모순. “창조의 영구적인 규례”로서의 안식일과 “일시적인 예식법”으로서의 안식일 사이에 있는 긴장을 해소시키려했던 칼빈의 시도는 성공적이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안식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끼치고있는 것과 동일한 실용적인 기능들을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끼치지 않았는가? 그뿐 아니라 칼빈은 안식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부정”과 또 복음의 “참된 안식”을 의미한다181고 가르침으로써 그가 유대의 안식일의 역할로 지정한 그 전형(典型 또는 표상)성에 가까운 “표상학적—상징적” 의의를 역시 일요일에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46.4)
 이미해결의 긴장은 칼빈의 후계자들의 주장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끝없는 논쟁의 불씨들로 작용해 왔다. 그 일례로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으로 알려진 개혁교회의 중요한 신앙고백서의 편찬자인 자카리아스 우르시니우스(Zacharias Ursinius)는 가르치기를 “제칠일 안식일을 세상이 시작되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에 의하여 제정된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귀감을 따라 일손을 놓고 쉬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 비록 신약 시대에 와서 예식적인 안식일이 폐지되었지만, 도덕적인 안식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적합한 것”182이라고 했었다. (46.5)
 이같은 입장은 1595년 영국의 유명한 청교도인 니콜라스 보운드(Nicolas Bownde)183가 집필한 안식일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Sabbath)와 그밖에 1619년의 도르트 종교회의 신조(Symod of Dort of 1619)184와 1647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85 같은 신앙고백 문서들에서도 줄기차게 옹호되었다. (46.6)
 이것들과 이밖에 이와 유사한 문서들은 일요일에 적용된, 이른바 안식일의 도덕적(항구적, 영구적, 자연적)인 면과 그리스도에 의해서 무효화 되었다고 하는 이른바 안식일의 예식적(부수적, 일시적, 모세의)인면 사이의 인위적이고 독단적인 구분에 대하여 합리적인 설명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안식일을 제칠일로 특정화시키는 것은 그것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창조를 기념하고, 영적인 안식을 체험토록 도와주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의 예식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들 못지 않게 그와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리다. 즉 그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한 날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바치는 이유에 대하여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R. J. 바우캄(Bauckam)은 그가 “16세기 중반기의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대부분의 시대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래 왔듯이 일요일 준수의 기초에 대하여 부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이와같은 혼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186 (47.1)
 네째 계명의 도덕적인 측면과 예식적인 측면 사이에 있는 미해결의 모순은 일요일과 안식일 계명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재연 시켜왔다. 참으로 이 안식일은 한번도 안식을 누려보지 못했다. 안식일을 도덕적인 면과 예식적인 면으로 나누는 이 주장은 일요일에 대한 두개의 주요 대립적인 사상을 유도하였다. 그 예로서 화란에서는 도르트 종교회의(synod of Dort(1619). (47.2)
 이후 10년 이상이나 두 주장이 서로 격돌하였다. 한 쪽에서는 빌렘 틸링크(Willem Teelinck), 윌리암 아메즈(William Ames), 그리고 안토니우스 발리우스(Antonius Waleeus) 같은 화란 신학자들로 진용을 이루어 안식일의 참조 기원과 또 네째 계명을 일요일 준수에 적용시키는 것의 적법성을 옹호하는 논문들을 발표하였다.187 다른 한 쪽에서는 지도적인 교수인 프란시스쿠스 고마루스(Franciscus Gomsrus)가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연구 및 주일(主日) 제도에 대한 고찰(Enquiry into the Meaning and Origin of the Sabbath and Consideration of the Institution of the Lord’s Day 〈1628〉)이란 글로 답하였다. 이 글에서 그는 안식일의 기원이 모세 법에서 연유되며 일요일은 교회가 별도로 제정 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88 (47.3)
 이 두개의 대립적인 입장을 둘러싼 논쟁은 여러 나라들에서 수 없이 재연되었지만189 아직도 화해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근래에 출판된 두 연구서는 이러한 현상의 적합한 실례로 생각되는데 하나는 1968년에 윌리 로르도르프(Willy Rordorf)에 의해 발표된 것이며190 다른 하나는 로저 T. 벡크위드(Roger T. Beckwith)와 월프리드 스톳트(Wilfrid Stott)의 공동노력에 의하여 1978년에 출판되었다.191 로드도르프는 자신의 논문에서 “안식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을 가진 창조의 규례가 아니라 가나안 정착 이후에 소캐되었으며, 그리스도에 의하여 폐기된 ‘사회 제도’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일요일과 네째 계명의 관계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일요일은 주님의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독교가 제정한 제도로만 생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192 (48.1)
 안식일 계명과의 모든 관련성을 배제시킴으로서 로르도르프는 일요일을 근대 생활의 요구에 마추어 시간 배정을 할 수 있는 일개 예배 시간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함축된 의미는 분명하다. 만약 끝까지 밀고간다면 이 입장은 곧 “일요일의 사망 증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193 왜냐하면 조만간에는 예배의 시간까지도 근대 생활의 바쁜 일정 때문에 얼마든지 쥐어짬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48.2)
 벡크위드와 스톳토는 그들의 저서, 이날이 그날이다: 기독교 일요일의 성경적 교리(This is the Day: The Biblical Doctrine of the Christian Sunday〈1978〉)에서 로르도르프의 주장에 도전하여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여 그 뜻을 명백히 했으며 또 사람들이 흔히 주일(主日)로 호칭한 창조의 규례라고 주장하였다.194 그들은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신약의 전체적인 빛으로 볼 때 주일(主日)은 구약의 안식일이 지적한 것의 신약적인 성취 곧 기독교의 안식일로 볼 수가 있다”195고 하였다. 이같은 결론이 실제적으로 뜻하는 함축적인 의미는 곧 일요일은 로르도르프가 주장하듯이 일개 예배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예배와 휴식과 자선을 위한 ∙∙∙ 거룩한 축제일로 구별된 하루 전체”라는 것이다.196 (48.3)
 이 문제에 관한 여러가지 주장들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저(署) “안식일에서부터 일요일로”에서 취급되어 있으나197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실은 안식일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끝나려땐 요원한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학구적인 토론이라기보다는 안식일이 기독교인 생활에 대하여 갖는 의미와 관련성이다. (48.4)
 결 론
 이제까지의 검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개의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성경에는 안식일의 창조, 기원을 뒷바침하는 명백한 합의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유대의 전통도 안식일의 기원을 창조의 절정으로 거슬러 간다는 것이다. 세째는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비단 제칠일 안식일 준수자들 속에서만이 아니라 일요일 준수자들 사이에서도 안식일의 에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상당한 주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49.1)
 후자의 무리는 일요일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안식일의 창조 규례설을 옹호해 왔다. 안식일의 창조 기원을 도전하는 세력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한 세력은 안식일 엄수주의의 계율적인 성격에 분개하여 반발하는 그리스도인들이고 또 하나의 다른 세력은 모세 5경의 역사성, 특히 창조 설화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비판적인 학자 집단이다. (49.2)
 창조의 계율로서의 안식일의 타당성에 대한 이른바 압도적인 역사적 뒷바침을 토대로 하여 논의하는 것은 역사적인 외루(外里)를 어떠한 성경적 교리의 찬반(反) 기준으로 삼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득표(得票)가 성경 해석학의 인정된 원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49.3)
 우리의 연구가 의도하는 것은 단지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신앙이 성경과 역사에 깊이 뿌리를 둔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현대 과학과 일치하지 않은, 계율적이며 미신에 사로잡힌 것”이라는 낙인을 찍어 배척하는 것은 자기 기만적인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꼬리표를 붙였다고 해서 성경적인 명령이 정직히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을 그 계명에 대한 의무로부터 놓여 나게 해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