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역사에 나타난 창조의 안식일
 유대의 전통. 유대교의 역사나 기독교 역사에서도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인정하는 광범위한 자료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기원에 대하여 두 개의 상이한 주장들을 발전시켰다. 대체로 이 두개의 주장은 언어와 지리적인 구분에 의하여 나누어지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팔레스타인(히브리) 유대교는 안식일을 모세 시대에 하나의 민족으로 출발을 본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과 연결된, 유대민족만의 독점적인 율법으로 제한시키고 있다. (36.1)
 이러한 견해는 안식일 본래의 전통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 종교의 포기를 강요하는 헬라 세력의 압력(특히 B.C. 175년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때에)에 직면하여 유대 민족의 주체성을 보존시켜야할 필요성에 고무된 제 2차적인 사태 발전을 대변하고 있다. 이 점은 팔레스타인 문헌들 속에서도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에 대한 언급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지적되고 있다. 그 일례로서 B. C. 140~160 경에 나온 요벨 서(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하면서(2:31) 또 다른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제칠일에 안식일을 지켰으며 모든 세대들을 위하여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고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들의 표로 정하셨다”(2:1)고 말하고 있다. (36.2)
 헬라 계(系) 유대 문헌 속에서는 안식일이 너무도 분명히 모든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창조의 법령으로 나타나 있다. 그 일례로서 필론(philon)의 선임자인 아리스토블루스(Aristobuhis)는 B. C. 2세기에 기록하기를 “모든 인간들의 삶이 고생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의 조물주되시는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쉬는 날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다.97 (36.3)
 2세기 후의 필론은 안식일에 대하여 훨씬 많은 언급들을 남기고 있다. 그는 단지 안식일의 기원이 창조의 시기로 부터 유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이 세계의 생일”로부르고 있다.98 필론은 창조의 설화에 언급하면서 “우리가 전해들은 것은 이 세계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이 제칠일에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그토록 잘 창조된 것들을 눈여겨 보신 후 이 세계의 질서 아래 시민으로 거주할 사람들에게 이 일에서도 다른 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귀감삼아 살도록 명령하셨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99 안식일은 창조의 시기 때 부터 존재해 온 날이기 때문에 필론은 그 날이 “일개 국가나 도시의 축제일이 아니라 우주의 축제일이며 이날 하루만이 모든 국민들에게 속한 공적인 날로 불릴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100 (36.4)
 초대 교회. 비록 일부의 경우에 안식일의 기원의 중요성이 도전을 받고 있기도 하고 또 안식일의 중요성이 일요일에 적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초대 교회의 문헌들 속에는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인정하는 참고 자료들이 없지 않다. 그 일례로써 250년 경의 시리아역 디다스칼리아(Syriac Didascalia)에는 안식일과 일요일 중 어느 날이 창조와 더 관련이 있는가 하는 논쟁이 소개되고 있다. 이 논쟁에서 일요일은 창조 주일에 있어서 안식일 보다 앞서 있으므로 안식일 보다 더 큰 날로 제시되었다. 일요일은 창조의 첫째 날로서 “세계의 시작”을 뜻한다는 것이다.101 (36.5)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의 안식일과 할례라는 논문에는 창조와 재창조라는 토대 위에서 안식일에 대한 일요일의 우월성이 주장되고 있다. 즉 “안식일은 첫번째 창조의 마지막 날이며 주일(主日)은 주님이 옛 창조를 새롭게하고 회복시킨 두번째 창조의 시작”이라고 하였다.102 안식일 준수자들과 일요일 준수자들이 모두 그들이 내세우는 날의 역할을 창조와 관련시킴으로써 그날의 적법성과 우월성을 옹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생각 속에 창조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36.6)
 380년 경에 나온 이른바 성(聖) 사도들의 헌법(Constitutions of the Holy Apostles)이란 것에는 “안식일이 창조의 기념일이고 주일(主日)은 부활의 기념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안식일과 주일(主日)을 지켜야 한다”103 되어 있다. 이 문헌에는 이밖에도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언급들이 더 나타난다. 그 일례로써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기리는 기도는 “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창조를 기념하여 안식일을 정하셨나이다. 왜냐하면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일을 끝내고 당신의 율법들을 명상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나이다”104 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37.1)
 장 다니엘루(Jean Daniélou)가 지적했듯이 창조의 안식일이라는 주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심 사상(思想)”의 하나이다.105 안식일의 쉼으로 극점에 이른 창조의 주일(週日)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에게 두개의 중요한 개념을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 첫번째는 하나님과의 최종적인 안식과 평화를 목표로 한 이 세상 역사의 전개라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영원한 안식의 실현은 “창조의 시초에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신 그 안식’의 구현이었다.106 (37.2)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두번째 해석은 쉼을 얻지 못한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기까지의 신비적인 전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인식의 적절한 실례를 그의 고백록(Confession)의 가장 장엄한 장(章)의 하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가 실려있다. “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주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 쉼의 평화, ‘저녁’이 없는 평화를 주시옵소서.107 사물들의 이 아름다운 질서는 그들에게 지정된 목적들을 성취하는 날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아침’‘저녁’과 더불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제칠일의 쉼에게는 ‘저녁’이 없으며 ‘끝남’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그 날을 거룩하게하사 영속토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모든 일들을 마치시고 제칠일에 쉬신 것은 우리로 우리의 모든 일들을 마친 후에 영원한 생명의 안식을 당신 안에서 누리게 하려함인 것을 당신의 책의 음성이 우리에게 예고하여 주고 있습니다.”108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이같은 신비적, 종말론적 해석은 비록 아우구스티누스가 네째 계명의 문자적인 준수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창조의 안식일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109 (37.3)
 중세 시대.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적인 해석은 중세 시대에 와서도 별다른 수정이 없이 계속 통용되었다.110 그러나 321년에 콘스탄누스의 일요일 법령이 제정된 이후로 하나의 새로운 진전이 발생하였다. 일요일에 노동을 하지 말고 쉬라는 황제의 법령에 신학적(神學的)인 재가(裁可)를 부여하기 위하여 교회 지도자들은 빈번히 안식일 계명에 호소하여 안식일 계명을 일요일 준수에 적용할 수 있는 창조의 법령으로 해석하였다. (38.1)
 크리소스톰(Chrysostom 약 347~407)은 “하나님은 제칠일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되있는 창세기 2장 2절의 주석에서 이러한 발전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가? ∙∙∙ ∙∙∙ 라는 질문을 제기하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일(週日)중의 한 날을 따로 구별하여 그날을 전적으로 영적 사물들을 위하여 바치도록 가르치고 계신다”111 고 대답한다. 이와같이 창조의 안식일이 제칠일이라는 특정일의 준수에서 부터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7일 중 아무날 하루를 쉰다는 원칙으로 변형됨으로써 안식일 계명을 일요일 준수에 적용시키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38.2)
 일례로서 1179년경에 사망한 페테르 코메스토르(Peter Comestor)는 창세기 2장 2절을 근거하여 “안식일은 안식일 계명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일부 민족들에 의하여 항상 준수되어 왔다”112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적용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안식일을 창조의 계명이며 보편적인 법령으로 인정하는 이 같은 주장들도 제칠일의 준수를 장려하는 동기를 가진 것들이 아니라 일요일 준수를 재가하고 강화시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38.3)
 후기 중세 신학에 와서는 네째 계명을 도덕적인 측면과 의식(儀式)적인 측면으로 구분하는 새로운 해석을 기초로 하여 안식일 계명을 일요일 준수에 문자적으로 적용시키는 일을 정당화시켰다.113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약 1225~1274)는 그의 신학대전(Summa Theologfca)에서 이같이 인위적이며 부당한 구분에 대하여 가장 정연된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주장하기를 “안식일 준수 계명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물들에 대하여 얼마의 시간을 주도록 명령하는 한 ∙∙∙ 도덕적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고정시키고 있는 점에 있어서 안식일 준수 계명은 의식적(儀式的)인 계명이다”114라고 했다. (38.4)
 어떻게 해서 네째 계명은 제칠일을 특정화 한다고 해서 의식적인 율법이 되고 예배를 위해서 어느 하루를 떼어 놓도록 명하고 있다해서 도덕적인 계명이 되는가?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안식일의 도덕적인 측면은 자연법에 근거되고 있다. 즉 예배와 휴식을 위하여 정규적으로 시간을 배정하는 원칙은 자연의 이성과 일치한다는 것이다.115 그 반면에 안식일의 의식적인 측면은 안식일을 “창조의 기념으로, 또는 현세에서는 은혜에 의하여, 내세에서는 영광에 의하여 하나님 안에 얻게될 마음의 평정의 예표”로 생각되는 그 상징성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다.116 (38.5)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안식일이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그리고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하나님 안에 발견될 쉽을 상징한다고 해서 의식적인(일시적인)율법으로 볼 수 있는가 하고 의아히 여긴다. 이같은 재보증이 아무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떼어 놓으라고 하는 주장의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칠일 안식일의 원래의 기별 즉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에게 쉼과 평화와 친교를 제공해 주시는 완전한 창조주라는 기별을 의식적인 것이라하여 거절한다면 아무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바쳐야한다는 그 도덕적 기초마저 파괴될 것이다. (38.6)
 다음 장(章)에서 취급되겠지만 하나님을 완전한 창조주로 믿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과 예배의 주춧돌이다. 아퀴나스가 안식일을 “그리스도가 당할 수난을 예표하는” 유월절과 같은 구약의 여타 상징적인 절기들과 구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퀴나스 자신도 자신의 추론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퀴나스는 후자를 “현세적이며 일시적인 것들로 말하고 따라서 다른 의식들과 희생제사들중에는 하나도 십계명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오직 안식일만이 십계명속에 포함된 것”117이라고 설명하였다. (38.7)
 안식일의 의식적인 측면에 대한 아퀴나스의 불확실성은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무효화하지 않고 안식일에 대한 바리세인들의 미신적인 해석을 무효화했다는 그의 주석에서도 반영되고 있다.118 바리세인들은 “안식일에는 친절을 베푸는 일까지라도 하지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것은 안식일 입법의 취지에 반대된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퀴나스의 이같은 애매모호성은 대부분 간과되고 안식일을 도덕과 의식(儀式)으로 분류한 그의 구분만이 일요일과 그 밖의 성일(聖日)들의 준수를 도입시키고 강화시킬 수 있는 조화와 관리를 옹호하는 표준적인 이론으로 사용 되었다. 이렇게 하여 랍비들의 안식일 준수법과 흡사한 일요일 준수의 정교하고도 율법주의적인 체계가 나타난 것이다.119 (38.8)
 루터교회.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은 안식일의 기원과 본질에 대하여 상이한 견해들을 피력하였다. 그들의 입장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또 안식일뿐만 아니라 그밖의 여러 다른 성일(聖日)들에 대한 가톨릭의 계율적이며 미신에 사로잡힌 준수 태도에 대한 그들의 반발심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것이다. (39.1)
 루터(Luther)와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안드레아스 카알스탓트(Andreas Karlstadt)120와 같은 좌파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촉진되어온 계율주의적인 안식일 엄수주의(Sabbatarionism)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안식일을 “유대인들에게만 특별히 준, 모세에 의한 제도”라고 공격하였다.121 이같은 입장은 대부분 구약과 신약을 지나치게 구별시키려는 태도에 의하여 결정되 었다. 루터는 대 교리문답(Large Catechism〈1529〉)에서 안식일은 “구약에 있는 다른 율법들과 마찬가지로 특정의 관습들, 사람들, 장소들에 첨부된, 순전히 외면적인 문제로서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122 이같은 견해는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의 28조에서 “성경은 안식일(Sabbath-day)을 폐기시켰다. 왜냐하련 성경은 복음이 나타났으므로서 모세의 모든 예식법들이 생략될 수 있다고 가른치고 있기 때문이”122 라고 하여 좀 더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123 (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