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3. 그리스도의 사업: 우리의 확증
 아버지께로부터 보냄 받은 분으로서 예수께서는 성경을 설명하시고 신성한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셨다(마 7:29; 요 4:25). 결과적으로 그분의 말씀은 마지막 심판에서 기준이 되어 그를 거절한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49.1)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 12:48, 49).
(49.2)
 또한 예수께서는 성경에 대한 일부 잘못된 해석들을 수정하시고 랍비들이 추가한 것들을 거부하셨다(마 5:21-37). 그는 진리를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진리” 자체이셨다(요 14:6). 그는 과장 없이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주장하셨다: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 (49.3)
 따라서 예수는 참으로 궁극적인 선지자이셨다. 그는 랍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세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셨다(마 23:2). 그는 자기 자신의 권위, 곧 메시야적 권위로써 말씀하셨다.6) 그는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적인 것으로 기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는 그것의 메시야적 성취를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가르침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성취하고, 확대하고, 설명하셨다. 그것은 선지자직의 절정을 이루면서 사도직으로의 전이를 의미했다.”7) (49.4)
 예수: 유일한 중보자
 하나님의 지명된 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레위인 제사장들의 속죄 봉사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거룩하신 이와 인간들을 화해하기 위해 지명된 이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의 사업의 관점에서만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 (50.1)
 성경이 화해의 방법을 제시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성소의 속죄 제물과 그 제물의 피의 적용 둘 다를 이야기한다: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26, 31). 이와 같이 예수의 제사장적 직무의 성취는 우리를 위한 그분의 무죄한 자기희생(self-sacrifice)과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그분의 계속적인 중보를 포함한다. (50.2)
 예수의 이 제사장적 사업은 그가 세상의 구주시라는 신약적 증거의 핵심을 이룬다. 예수의 주된 관심사는 그의 용서하고 회복하는 은혜를 통해 범죄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한 중풍병자가 그분께 운반되어 왔을 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5:20). 레위기 4:31에 의하면, 오직 레위인 제사장만이 이런 선언을 할수있었다. 랍비들은 이 절망적인 중풍병자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용서를 선언하셨을 때,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눅 5:21). (50.3)
 예수께서는 랍비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눅 5:23, 24). 그 사람의 육체적 치유는 그의 영혼이 회복되었음을 입증했다. (51.1)
 이 사건은 육체적인 질병을 앓고 있으며 죄의 짐이 그들의 병의 더 깊은 원인임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고통에서의 자유는 오로지 영혼의 치유자에게서만 온다.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화평은 심령에 활력을 주고, 육체에 건강을 줄 것이다.”8) 예수의 놀라운 은혜와 깊은 동정은 우리로 하여금 경탄케 하고 이 구원의 확증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찬양케 할 것이다: (51.2)
죄지은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치시기 위하여 몸을 굽히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여! 고통당하는 인류의 불행을 슬퍼하시고 위로하시는 신성이시여! 오, 인간 자녀들에게 이와같이 나타난바 된 기이한 능력이여! 누가 과연 구원의 기별을 의심할 수 있을까? 누가 과연 동정이 많으신 구속주의 자비를 경시할 수 있을까?9)
(51.3)
 히브리서는 십자가 위에서와 하늘 성소에서의 예수의 제사장적 사업의 변함없는 능력을 주장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흠 없이 드림으로써 구약의 표상을 능가하셨다(히 9:14).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제물도 되”셨던 것이다.10) (51.4)
 부활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의 희생적 죽음을 불멸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것에 영원한 효력을 부여하셨다. 그분의 대속적인 죽음의 구속적 능력은 우리가 주의 만찬을 거행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때마다 우리를 위해 작용한다(참조 마 26:28). 그러나 예수의 제사장적 사업은 그분의 부활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최고의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분을 그 우편에 앉도록 임명하셨다(참조 히 1:3; 6:20; 7:15, 16). 이제 그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히 7:27)시기 때문이다. 이 것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로부터 “때를 따라 돕는” 자비와 은혜를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히 4:16).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지금 우리의 “대언자”(파라클레토스 Paraklētos), 곧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로 나타나신다(히 9:24; 요일 2:1). (51.5)
 정복자로서 예수께서는 지금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신다. 그는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모든 혐의로부터 면제하고, 하나님의 율법의 정죄로부터 그들을 자유케하신다(참조 롬 8:1; 33, 34). 그의 영을 통해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지지하여 그들의 신앙이 실패하지 않도록 하신다(눅 22:32). 그는 그의 영광의 나라에 우리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을 확실히 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셨다(요 17:24). 그토록 전능하신 대제사장이 현재도, 활동하고 계신 중이라면(참조 계 1:12-18),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의 인간 제사장들, 중보자들, 혹은 희생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52.1)
 예수: 우리의 영원한 왕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의 아들이 “예수” 혹은 “구주”라는 이름을 가질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 분명히 예수께서는 사무엘하 7:11-13이사야 9:6, 7; 11:1-5에 기록된 다윗 언약의 메시야적 약속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출생하셨다. 이 예언들은 잃어버린 바 된 세상을 위한 유일한 희망을 담고 있다. (53.1)
 시편 2편, 45편, 89편, 110편등과 같은 소위 말하는 왕의 시편들(Royal Psalms) 역시 이 소망을 그 중심 주제로 삼는다. 이 시편들은 단순히 경건한 바람들을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다윗을 향한 나단의 예언을 드러내고(참조 삼하 7장) 오시는 왕이신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하는데, 그의 평화와 의의 왕국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53.2)
 신약은 시편 110편을 33회에 결쳐서 인용하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어떤 시편보다 더 빈번하게 인용된 것이다. 이것은 사도 교회의 복음증거를 위해 이 시편이 탁월한 중요성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에게 말씀하실 때, 이 시편의 첫 절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다윗이 그것을 기록했다는 전제 위에 그가 이 구절을 해석하였음에 틀림없다. 시편기자는 자신 보다 위에 두 거룩하신 이, 곧 여호와와 그의 주, 메시야[아도나이 Ádonay, “나의 주”]를 위치시켰다. 일찍이 유대인들을 향한 예수의 도전도 그의 확신을 표현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메시야]를 주라 칭하여”(마 22:43). 이들 두 경우는 시편 110편이 예수의 메시야직에 대한 이해의 기본적인 핵심(기둥)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3.3)
 오순절 날 예수의 사도들은 이 시편의 메시야적 성취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참조 행 2:34-36).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제 “하나님이 ∙∙∙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행 2:33; 5:31)가 되셨다는 증거로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진봐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늘에서의 예수의 제사장적 봉사를 시편 110:1, 4에서 예견된 그것으로 설명했다. (54.1)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는 이 시편의 신성한 명령은 다니엘 7:13, 14“인자”의 신성한 대관식—시편 110편에 대한 영감의 주석으로 이해될 수 있음11)—과 평행을 이룬다. 메시야는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린다: 그의 권위와 능력과 영광을 나누기 위해 바로 여호와와 나란히—발아래가 아니라—앉는다(비교 계 3:21). (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