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제 1 장 시편의 종교적 의의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 25, 26)
(29.1)
 이같은 찬양의 간증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여 준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 22:3)신다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히브리 신자들은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바로 삶의 본질이요 생과 사의 문제로까지 생각했다. (29.2)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시 115:17, 18)
(29.3)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시 30:9)
(29.4)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 6:5)
(29.5)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바로 삶의 본질이었다. 히스기야 왕이 심히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질병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30.1)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주께 감사하며”
(사 38: 18, 19) (30.2)
 이 말씀은 참된 생명이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믿음의 깊은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죽음이 있는 곳에는 결코 찬양이 있을 수 없나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삶의 가능성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유일한 목적이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사 43:21)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서는 인간은 주님 안에 있는 기쁨을 알 수도 없으려니와 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30.3)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11)
(30.4)
 셰익스피어의 격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히브리 식으로 바꿔 놓는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리라. 히브리 성경은 시편을 “찬양”(Tehillim)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히브리 신앙의 주된 추진력을 제시하고 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모든 이방인들도 참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시가(詩歌)가 개방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31.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시 145:21)
(31.2)
 다음의 조언에 금언(金言)이 들어 있다. (31.3)
 재난이 홍수처럼 밀려와 우리를 삼키려 위협할 때, 만일 우리가 애통하며 울고 절망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이미 주신 많은 축복을 인해서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음을 인해 그분께 찬양을 돌린다면, 우리의 가는 길이 그분께 큰 기쁨이 될 것이며, 우리는 더욱 그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31.4)
 시편과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고난과 장차 올 승리의 사명이 시편 기자들의 경험 가운데 예시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계 셨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일찌기 다윗이 그 자신 스스로 경험했던 것보다 더 깊은 영혼의 고뇌 그 실체를 경험하셨다. 시온의 왕으로서 다윗은 그의 주 메시아의 표상으로 공헌했다. 그러므로 몇 개만을 골라 구원의 시라고 말하기는 적합하지 않을 듯하다. 시편 전체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과 신약의 빛으로만 식별할 수 있는 기이하고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32.1)
 왕의 시(王의 詩)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왕의 덕행을 염두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왕의 영광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지상의 왕은 오실 이스라엘의 구세주, 위대하신 왕의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이 왕의 시들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으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오실 왕국에 관한 감추어진 예언이 되고 있다. 신약의 빛 가운데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시편이 말하고 있는 그분일 뿐만 아니라 그 시편에 영감을 주셨던 분이였음이 점점 보다 확실해지고 있다. (32.2)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성경이 바로 당신 자신을 증거하는 것임을(요 5:39) 설명하셨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구원의 줄기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셨다. 그분께서는 또한 그들이 성경에 나타난 두 가지 구원의 이치를 너무 더디 깨달으므로 그들을 나무라기 조차 하셨다. (32.3)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33.1)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4, 45).
(33.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뢰하는 제자 중 하나가 입 맞춤과 더불어 당신을 배반하여 피에 굶주린 권세 앞에 넘기기로 결정했을 때도 결코 놀라지 않으셨다. 유다가 그의 은밀한 계획을 실행하고자 만찬의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예수께서는 다윗이 그 가장 신뢰하던 참모들에 의해 배신당했던 사건 가운데 미리 예고되었던 하나의 임무를 유다가 성취하고 있음을 보신 것이었다.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