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서문 서론-요한복음
 요한복음은 큰 변혁의 시기에 새로운 세대를 위해 기록된 것이다. 요한은 이 새로운 세대에게 어떤 기별을 전하려고 했을까? 나는 그가 의도한 기별은 제4 복음의 이적과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의 이적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 계속해서 접촉을 사용하셨다(마 8:3, 4, 14, 15; 9:18-25, 29, 30; 14:29-31; 20:34; 막 1:29-31, 40-42; 5:21-43; 7:31-35; 8:22-26; 9:25-27; 눅 4:40; 5:12, 13; 7:14, 15; 8:40-56; 13:13; 22:51).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그와 같은 접촉이 없음이 괄목할 만하다. (27.1)
 가나의 혼인 잔치(2:1-11)에서, 예수와의 어떤 육신적인 접촉 없이도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16마일 떨어진 가나에 계시는 동안, 가버나움에 있던 왕의 신하의 아들은 예수에 의해 병이 나았다(4:46-54). 또한 예수께서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중풍병자도 만지지 않으셨다(5:1-15). 9장에서 그는 소경의 눈에 약간의 진흙을 바르셨으나 이적은 그 사람이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실로암 못에 가서 자신의 눈을 씻었을 때에 비로소 일어났다(6, 7절). 11장에서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도록 부름을 받은 것은 멀리 떨어져서 내리신 예수의 명령에 의해서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그를 흔들거나 끌고 나오실 필요가 없었다. 이 모든 “표징들”의 공통분모는 이적을 행함에 있어 육신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점이다. 거리가 예수의 축복을 받는 일에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리하여 제2 세대가 예수와 개인적인 접촉을 갖지 못한 사실이 그들을 불리한 입장에 놓지는 않는다. (27.2)
 또한 위에 언급한 이적 하나하나가 예수의 말씀에 의해 행해진 것도 사실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종들에게 “채우라,” 그리고 “떠서 갖다 주라”(2:7, 8)고 하셨다. 왕의 신하에게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셨다(4:50). 중풍병자에게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다(5:8). 소경에게는 “가서” “씻으라”(9:7)고 하셨다. 나사로에게는 “나오라!”(11:43)고 하셨다. 매 경우에 그가 의도한 것을 이루게 한 것은 그의 육신적인 접촉이 아니라 바로 그의 말씀이었다. (27.3)
 제2 세대를 위하여 이와 같은 장면들 속에서 듣게 되는 기별은 공간의 장벽을 극복하는 예수의 말씀의 능력이다. 그의 말씀은 그분의 만져주심만큼이나 좋다. 그의 말씀은 손에 잡힐 만큼의 가까운 거리에서 하시는 것처럼 능력이 있다. 비록 기록된 지면을 통해서만 제공되지만, 말씀은 여전히 구원하고 치유하는 그 자체의 능력을 간직하고 있다. 성령께서 제2 세대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이다(14:26, 27). 14-16장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문단들로부터 우리는 실제로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예수와 육신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유익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16:7). (28.1)
 제4 복음을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상해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복음서는 특별히 제2 세대, 즉 예수와 아무런 육신적 접촉을 하지 못했거나 그분 및 그분과 접촉을 가진 사람들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록된 유일한 복음서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제2 세대의 결핍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봄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견고히 확증했던 도마의 특권을 누리기를 원할 것이다. 영적인 의미에 있어 우리는 제2 세대에 속해 있다. 이 복음서는 또한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제1 세대 이후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예수를 제시하고 있다. (28.2)
 이 복음서가 우리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쩐지 안 계신 것처럼 보이는 일이 성령을 통해 이루시는 예수의 힘있는 사역에 어떤 장애도 될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의 말씀은 그분의 접촉만큼이나 훌륭한 것이다. 예수의 육신적인 봉사를 통해 가능했던 모든 유익들이 이제 그분의 말씀을 통해 가능해졌다! 또한 이 복음서는 그와 같은 유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모든 이적의 이야기들에는 이적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사람 편에서 행해야 될 일이 있었다. 종들은 그들이 포도주를 떠서 갖다 주기 전에 물을 부어야만 하였고, 중풍병자는 일어나 자기 자리를 접어야 했고, 장님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야 했다. (28.3)
 이 복음서의 독자에게 주는 암시적인 기별은 두 가지다:

 (1) 독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깨닫고 자신의 특정한 상황에 분별력 있게 적용해야 한다. 이 복음서의 주의 깊은 연구는 제자들이 예수와 가졌던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관계를 생생하게 대신하는 것이 될 것이다.

 (2) 독자는 예수께서 명하시는 것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성령을 통한 예수의 능력은 그분의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일을 수반한다. 제4 복음은 보지 않은 자들이 믿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20:29-31). 신자들이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 나눠주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이 복음서를 읽고 적용함을 통해서이다. (29.1)
 이 복음서의 주요 교훈
 예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이다
 서언을 보면 예수께서는 영원하시며(1:1, 2), 하나님과 함께하시며(1, 2, 18절),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시며(1절), 세계의 창조자(3절)와 유지자(4절)이심이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성품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하다(14-17, 9-11절). 그분 자신이 바로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1, 14절). 생명(4절)과 진리(14, 17절)와 은혜(14, 16, 17절), 그리고 지상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궁극적 계시(18절)이다. (29.2)
 이와 같은 주제는 이 복음서의 전반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하늘이 열림을 보게 된다(1:50, 51). 그들은 그분의 영광(2:11), 즉 아버지로부터 내려오신 분의 영광(1:14; 16:27, 28; 17:5)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3:11-13; 6:32-35, 46-51, 8:23; 13:3),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증거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3:31-34; 17:8), 하늘의 사물을 인간과 나눌 수 있는 독자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5:17-21; 8:38; 1:18). (29.3)
 예수께서는 그의 가르침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르러온 복음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셨다(7:16-18; 8:26, 40; 12:49, 50).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의 빛이시다(8:12; 9:5; 1:4, 5, 9-11). 또한 그는 아버지께서 지상에서 예수의 위치에서 하셔야 했을 일을 수행하셨다(9:3, 4; 10:25, 37, 38). 예수를 보는 것은 인간의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14:6-11; 17:26). 그는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셨다(14:31; 15:10).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열등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 똑같은 형상을 가지셨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5:19-23; 10:30). (30.1)
 구원은 생명이다
 G. R. 비즐리-머레이(G. R. Beasley-Murray)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구원이란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Gospel of Life, 1). 이 주제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이 선택하여 사용한 용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핵심 되는 용어들은 하나님의 나라천국이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 12:28; 막 10:15; 눅 12:31; 17:20, 21). (30.2)
 그러나 제4 복음에서는 왕국의 개념이 사실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3:3, 5; 18:36). 요한복음에서 그 큰 구원을 대신하는 용어는 생명이다. 생명은 태초로부터 말씀 안에 있었다(1:4). 그 말씀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다(1:14; 3:11-17). 생명—영생—은 예수를 믿는 자 모두에게 주어지는 현재적 실재이다(5:24-26). 예수께서는 생명의 떡이시며(6:35, 51), 부활이요 생명이시고(11:25),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14:6).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함이었다(10:10; 6:63, 68). 예수께서 새 세대에게 생명을 주심 이라는 이 책의 부제는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와 생명의 시여자(施與者)로서의 예수라는 주제와 그가 복음의 목적이라는 주제를 결합시킴으로써 새 세대에게 예수를 실제적인 분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20:30, 31). (30.3)
 십자가의 영광과 높이 들림[高揚]
 앞서 말한 두 주제는 요한이 묘사한 십자가의 의미 속에 함께 그려져 있다. 예수의 영광, 즉 하나님의 성품의 위대한 계시는 십자가 위에서 치른 희생 속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12:23, 24). 예수께서는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도 십자가 위에서 “들어올리우셨다”(“uplifted,” 3:14, 15; 8:28; 12:32). 예수께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는 것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높이 들린”[高揚, “exaltation”] 시간이다(12:27, 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장 분명하게 하나님을 계시한 것이다. (31.1)
 요한에게 있에서, 세상에게 생명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죽음이다(3:16). 요한복음의 위대한 풍자들(ironies) 중의 하나는 생명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이르러온다는 것이다(12:24, 25).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는 이 복음서의 이야기의 중심 사건이다. 주요 주제들이 함께 만나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31.2)
 끝이 여기에 있다
 제4 복음의 매우 두드러진 주제들 중의 하나는 종말론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신자들의 미래의 소망, 즉 구약의 소망에 근거한 소망에 상당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참고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55—64, 75—83). 그러나 구약에서 세상의 궁극적인 종말의 성격을 띤 것들이,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죽은 자가 생명에 이르게 되는 일이 재림 때뿐만 아니라(5:28-30),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영적으로 반응할 때도 생긴다(24-26절). 심판도 마지막 때에 실현될 일일 뿐만 아니라(12:48에서처럼), 십자가(12:31, 32)와 복음이 전파될 때(3:18-21; 5:24)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