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5장 여정 중의 도전들 (민수기 11~12장)
 1982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술과 마약에 취한 젊은이가 야기한 끔찍한 고속도로 충돌사고가 있었는데, 그 사고로 내 아내와 나는 거의 죽을 뻔하였다. 그의 쉐보레 노바 차량은 580번 고속도로 중앙선을 넘어와서 폴크스바겐 차량과 정면충돌하였다. 그 충돌로 운전자는 즉사하였고, 그 여인의 두 딸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혔고, 그녀의 차량을 날려 우리의 작은 닷선 B-210 차량의 보닛 위에 떨어뜨렸다. 그 때 우리 뒤를 따라오던 트랙터-트레일러가 우리 차를 깔아뭉개지 않으려고 길가의 가파른 제방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차에 설치된 큰 날들이 V 자로 구부런 진 채로 격렬하게 떨면서 망가진 우리 차 15피트 뒤에 멈추어섰다. 소스라치게 놀란, 코니와 나는 서로 끌어안았고, 우리는 물리학이 미친 짓을 할 때, 일초의 몇분의 1 차이로 우리가 목숨을 건진 것은 하나님의 기적임을 깨달았다. (79.3)
 코니는 뇌진탕을 입었고, 내 갈비뼈는 금이 갔다. 또한 우리 둘 다 목뼈와 등뼈에 골절상을 당했다. 그 게다가, 우리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회복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였다. 우리 둘다 전업 학생신분이었기에, 우리는 재정적으로 겨우겨우 살아남기 위해서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 사고는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진시켰으며,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페이스를 유지해 나갈 수 없었다. 하나님이 그리로 나를 부르신 그 직임을 위해 준비하기 위해 Ph.D 학위를 마치려는 나의 목표는 절망적으로 요원해 보였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좌절감에 빠졌으며, 화가 났고, 깊은 우울감에 빠졌으며, 그러한 환경에 빠뜨린 하나님을 비난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의 불평은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내 삶의 주이신 하나님께 대해서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로 이겨내게 하셨다. 그분은 심지어 상황이 안 좋아지더라도 결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80.1)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단히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자 하나님께 울부짖었다(출 14:10). 그런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모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을 때, 그들의 불평은 추악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리더십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1,1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러한 모욕을 눈감아 주시고, 그들을 극적인 방법으로 구출하셨다(19-30절). 그분은 그들이 믿음에 있어서 “아기들”이었던 연고로 참아주셨으며, 그분의 전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31절). (80.2)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불평이 아니었다. 홍해와 시내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과 음식이 떨어졌을 때, 모세 (또는 모세와 아론에게)에게 몇 번 더 불평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극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으며, 그들을 징계하지 않으셨다(출 15:22-25; 16:2-36; 17:1-7). 이런 일들 가운데 마지막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라고 질문함으로써 “여호와를 시험”하였다(출 17:7). 여기에, 그들이 불평할 때마다 그들이 넌지시 비쳤던 기본적인 질문이 있었다. 이제 여기서 그것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 다음 번에는 그런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었다. (80.3)
 그 일은 다베라 사건이 있은 지 일 년 후에 일어났다(민 11:1). 하나님께서는 그 일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많은 일들을 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르비딤에서 아말렉에게 승리를 거두도록 도우셨고(출 17:8-16), 시내산에서 그분의 십계명을 반포하셨으며(출 20장), 모세를 통하여 추가적인 법들을 발표하셨고(출 21-23장), 피로 맺어진 관계로서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셨으며(출 24장), 성막의 건립을 위한 계획들을 주셨고(출 25-31장), 금송아지를 경배함으로써 그들이 언약을 깨버린 후에(출 32장) 그 언약을 새롭게 하셨다(출 33장; 34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 건축을 마치자 여호와께서는 그리로 이주해 들어가셨(출 35-40장)다. 그분은 예배와 정결(레 1-17장), 그리고 거룩한 생활양식(레 18-27장)에 대한 상세한 지시들을 마련해 주셨다. 그분께서는 백성들과 그들의 진을 조직화하셨고, 가나안 정복을 위한 준비를 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지시 사항들을 주셨다(민 1-10장).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그들에게 주시는 기적을 통하여 그들의 음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그것은 만나의 공급이었다(출 16장). (81.1)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주한 노예들의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맺은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그들 편의 의무를 다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책임을 다해야 할, 훌륭하게 조직된 국가가 되었다. 그분은 그들을 방어해 주시고, 먹여주시고, 물을 공급해 주시고, 그들 가운데 거주하셨다. 그 결과,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넌지시 비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그렇게 할 아무런 변명거리도 없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계시지 아니한가?” (81.2)
 이 모든 것은 다베라에서의 그들의 불평에 대하여 주님이 나타내신 반응의 배경이다. 거기서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투덜거림에 대하여 첫 번 째로 징계를 내리셨다. 이러한 배경 지식 없이 이 이야기만 읽는다면,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가혹할 정도로 과잉반응을 하고 계셨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그분께서는 자비롭게도 그들이 곧장 잊어버리지 말도록 “경고장”을 주신 것이다. (82.1)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불이 진정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도움을 간곡하게 부탁하고, 그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을 때에였다(민 11:2). 대개의 경우 그들의 불평은 모세를 겨냥한 것이었다. 욥의 친구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욥 42:7-9),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일을, 그들이 상처를 주었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받아들이시기 전에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모세에게 겸비하게 고백해야 했다. (82.2)
 우리가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저 곧바로 하나님께로 감으로써는 그들과의 화해를 회피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23,24). 이것은 생소한 개념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들에 의하면, 거짓된 맹세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잘못 취한 것에 20퍼센트를 더해 돌려보내어 회복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레 6:1-5). 이러한 배상제도는 자연스럽게 부당하게 대우한 사람에게 자복할 것을 요구하였다(레 5:5 참조). 그 사람과의 일들을 바로잡은 후에야 죄인은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리고 용서를 받도록 허락되었다(레 6:6,7). (82.3)
 삭개오는 하나님께 용서를 얻는 일은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대하여 파산을 선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약속하였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예수님은 그의 약속을 받아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9,10절). (83.1)
 참으로, 자복은 우리 영혼에게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불을 피했던 다베라에서 이 교훈을 가르치셨다. 그분은 또한 그분의 불이 우리의 이웃-행성 지구 행성-으로 옮겨와서, 그분의 독생자의 중보를 거절하는 이들을 소멸시키기 전에 그것을 배울 기회를 나머지 인류에게 주고 계신다(히 4:14-16; 7:25; 요일 1:9; 계 14:9-12; 19:20; 20:9-15; 21:8). (83.2)
 고기 가마를 탐함
 오호라, 다베라에서 받은 불의 경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분하지 않다니! 상황이 진정되자, 그들은 다시 그 짓을 저질렀다. “그들 중에 있는 인간쓰레기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며 말하기를 ‘우리에게 먹을 고기가 있으려면 좋으련만! 애굽에 있을 때 먹곤 하던 생선, 오이, 멜론, 부추, 양파, 그리고 마늘들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의 식도가 쪼글아 들었구나. 전혀 아무것도 없구나!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 만나 밖에는 없구나!’ 하니”(민 11:4-6, Tanakh). (83.3)
 이 “인간쓰레기들”“잡족”이었다(출 12:38 참조). 성경은 다베라에서 그들이 한 역할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매우 분명히 나타난다. 이 섞인 무리들이 식탐(食貪)의 폭동을 선동하였다. 그들이 굶주려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거룩한 영양사에 의해 그들의 건강을 위하여 완벽하게 디자인된, 맛있고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풍성하게 갖고 있었다(맛에 관하여는, 출 16:31민 11:8을 보라).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모든 처방을 잘 따른다면, 애굽인들을 괴롭혔던 질병 중 어떤 것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출 15:26). 음식을 주시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차질도 없었다. 하나님 자신이 음식 공급자 셨으며, 그분은 항상 정시에 음식을 제공하셨다. (84.1)
 섞인 무리들은 그들의 배가 “그리운 옛 애굽 시절 엄마가 집에서 요리해 주신 것”을 달라고 속에서 꾸르럭 꾸르럭 소리를 내자 불평을 해댔다. 아, 맞아. 생선과 신선한 야채와 멜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곁들임 요리이거나 양념들이었다. 주식은 고기였다. 광야 이곳에서 천국의 씨리얼은 잊어 버려라. 우리에게 맥도날드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아니면 집에서 만든 바비큐를 달라! 우리는 일일 최저 콜레스테롤과 최소의 발암물질도 얻지 못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만나를 거절하고 경멸하는 것은 그분께 대한 큰 모욕이었다. (84.2)
 이스라엘 백성들은 섞인 무리들보다 애굽에서 더 고된 삶을 살았고, 그들처럼 호사스럽게 산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곧 불만이 그들에게 확산되었고, 마치 굶주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징징거림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84.3)
 백성들은 그들의 필요를 몸에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것보다는,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이 최고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갈망을 자극시킬 어떤 상업 광고도 필요치 않았다. (85.1)
 식사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탐식이다. 탐식은 일반적으로 많이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탐식은 미국과 같이 몇몇 부유한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죄악들 중 하나이다. 탐식으로 인하여 생기는 고통, 일의 손실, 그리고 의료비용의 대가는 매우 크다. (85.2)
 또 문제되는 것이 영양가 측면에서 좋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무시하지 않는 한 여러분이 먹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고, 그것이 음식으로 좋을 것이라는 하와의 시각적인 평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정확했다(창 3:6).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가 그것을 먹는 것을 옳게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먹는 일을 금하셨기 때문이었다(창 2:17). 섞인 무리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강에 좋은 몇 몇 것들, 예를 들면 오이, 멜론, 양파 그리고 마늘을 갈망하였다. 하지만 이것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야 얻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광야에서는 자라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들을 갈망하는 것은 애굽을 갈망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주님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암시했다. (85.3)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하였다. 모세 역시 너무도 속이 상했다(민 11:10).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명적인 위험 가운데 빠졌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을 위하여 이렇게 탄원했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2). 다베라에서 그는 다시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기 위하여 기도했었다(민 11:2). 이제 그는 하나님께 “좋아요!”라고 말씀드린다. 그러나 중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사를 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완전히 불합리하게 행동하였고, 배우는 일에 있어서의 그들의 실패는 심지어 가장 참을성 많은 사람조차도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모세는 이 모든 철부지 같은 백성들의 짐을 그에게 지우신 데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하였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는 비명횡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11-15절). (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