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야고보서 서문 서론-야고보서
 지도자요 목양자였던 저자는 그의 서신을 읽고 듣는 청중들의 상황에 매우 민감했다. 서신의 수신자들은 붕괴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하고 압제받았다. 그들은 핍박받았다. 그들은 고통받았다. 야고보가 고난의 신학을 발전시킨 것은 이런 배경으로부터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관심이 개인적 고난의 단계를 넘어선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말하기를 잠시 멈추도록 하자. 야고보서는 대중적 관심의 배경 안에서 고난을 다루고 있다. Peter Davids가 “이 서신을 개인적인 초점으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저자는 개인들의 행동에 대하여 역설한다. 왜냐하면 그 행동은 대중의 삶에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James, 13)라고 저술한 것은 올바른 시각이다. (23.2)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소망, 용기, 고난 중의 보증에 대한 말씀이 필요하다. 압제, 핍박 등, 이 편지 안에서 언급되는 그 외의 경험들은 삶의 결말로서 보여서는 안 되었다. 소망은 압박받는 상태에서 그 백성들이 파선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며, 그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23.3)
 서신의 배경
 야고보서를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고난에 대한 문맥의 대부분이 사회적, 경제적 세력이나 긴장에서 기인된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서는 심각한 경제적 불안(5:1-6), 사회적 불만(1:9-11; 2:1-7; 5:4-6), 정치적 공세(4:1-3), 종교적 격변(4:4-12)의 시대에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 문서를 그 초점이 매우 유대적(1:1)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 구절들을 병치해 볼 때, 이것이 초기 신약시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쓰여진 작품으로 결론짓게 된다. (24.1)
 저자, 시대, 수신자, 생활 배경 등의 문제는 신약 성서 주석류와 개요 등에서 깊이 다루고 있다. (이 장의 마지막 부분의 추천 도서를 참고하라.) 나는 여기서 다양한 견해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에 지면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서신을 적절한 배경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나의 견해를 진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24.2)
 이 편지서가 후기에 저술되었다는 강한 주장들이 있긴 하지만, 증거의 비중을 보면 초기에 저술되었음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서신이 더 후기에 저술되었다고 지지하는 것에 사용되곤 하는 궤변적 헬라어와 다소 논쟁의 대상이 되는 구절들(1:1; 5:7, 14)은 실제로 후대에 편집된 것을 지적해 줄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성경은 원래의 본문을 (물론 내가 믿기는 성경의 감동하심에 따라) 후대에 편집한 많은 예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주 언급되는 두 부분은 신명기 34장(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사)과 예레미야 52장이다. 후자의 경우는 예레미야 51:64“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는 기록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확실히 52장은 후대의 어느 편집자의 작품이다. 야고보서의 경우에도 야고보의 편집자나 제자가 후대의 그리스도인 사회와 교회에 더욱더 밀접한 문서로 만들기 위해 야고보의 언어와 신학적 표현들을 개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서신의 본문과 사상이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예수를 따르는 무리의 지도자인 야고보에 의해 비롯되었음을 확신한다. (24.3)
 야고보서가 신약 성서의 책들 중 가장 유대적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인정한다. 그 내용이나 예증들은 구약 성서와 마지막 구약 성서의 책과 A.D. 1세기 사이의 기간의 유대 문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 서신의 이런 유대사상(Jewishness)은 아직도 유대주의가 예수를 따르는 무리의 일부에 자리잡았던 시절, 아마도 A.D. 49년 예루살렘 총회가 있기 전(행 15장), 초대교회의 매우 초창기 시대에 야고보가 이 편지를 썼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24.4)
 이 문서의 유대적인 면뿐만 아니라, 서신에 묘사된 사회적 조건들은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이 있기 전인 초기 시대의 팔레스타인 작품임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4장에는 60년대 후반에 로마에 대한 유대의 대규모 전쟁이 있기 이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극단적인 민족적 혁명 운동에 대한 강한 암시를 주고 있다. 야고보서는 극단적 율법파괴, 살인, 계층간의 증오 등의 정황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4:1-2; 4:6-5:6). 이런 행동과 태도는 폭력을 동원하여 로마 정부와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정부의 사두개파 꼭두각시들을 전복시키려 한 유대주의적 국가 정당과 조직체인 셀롯당의 성격들이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특별히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5.1)
 2장과 5장에 언급된 심각한 사회경제적 상황은 1세기 중반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완전하게 일치된다. 예를 들어, 2:6에서 야고보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괄시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이 빚, 임대, 담보 등으로 법정에 끌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5:4에서 저자는 하루 품꾼(밭의 일꾼)들에게 그들의 삯을 고의적으로 지불치 않음을 맹렬히 비난한다. 이런 것들은 유대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지리적 지역의 독특한 상황과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이다. (25.2)
 나는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야고보서가 아마도 예수의 부활하신 10년에서 15년 뒤에 기록되어 신약 성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라는 제안을 하려 한다. 이 서신의 날짜는 서기 40년 초 어느 때가 될 것이다. 서신의 내용은 유대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새로이 구성되고 조직된 기독교 공동체가 있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아마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유대인을 가리켜 형제자매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생각으로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기록하며 모든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전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은 우리가 야고보서에 나타나는 여러 난해 기사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개의 난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25.3)
 첫 번째 것은, 바울 서신(특히 갈라디아서와 로마서)과 야고보서(2:14-26)에 나타난 믿음과 행함의 역할에 관한 “논쟁”(특별히 루터를 시작으로 신약을 연구하는 개신교 학도들의 정신에 새겨진)이다. 누가 먼저 기록했을까?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있는가? 누가 누구를 수정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야고보가 바울을 더 명확하게 교정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저술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2:14-26을 다룰 때 명확히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야고보의 관심이 바울의 관심보다 선행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들의 관심사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26.1)
 두 번째 것은, 이 서신에서 주요 기독교 신학적 생략 즉 야고보서의 독특한 생략이 있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주제가 빠져 있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유일한 대답은 기독교와 그 지도자들(특히 바울)이 비기독교 유대 공동체와 믿음의 기독교 공동체를 구별할 수 있는 매우 명료하고 간결한 교리들을 발전시키기 전에 야고보는 그의 서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생략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26.2)
 서신의 내용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생략은 예수에 대한 어떤 중요한 언급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곳은 단지 두 곳이며(1:1과 2:1), 명백한 기독론적 견해를 보여주는 곳은 전혀 없음이 사실이다. 야고보는 약 열 번 정도 “주”라는 용어를 사용한 반면에, 단지 1:1과 2:1에서만 정확하게 예수와 관련되어 언급했음이 명료하다. 나머지 여덟 번의 언급에 내포된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강력한 주장으로 제기된다. 사실, 어떤 이들은 1:1과 2:1의 예수님의 언급이 야고보서를 명백하고 틀림없는 기독교적 향취를 풍기기 위해 후대의 기독교 편집자가 삽입했다고 주장해 왔다. (26.3)
 다른 신약 성경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또 다른 신학적 문제들과 교리들도 야고보서에는 부족하다. 그런 교리에는 십자가, 부활, 성령의 은사와 사역, 침례, 성만찬, 예배, 교회 조직 등이 포함된다. 이런 주제들에 대한 결핍은 이 서신이 그러한 주제들이 논쟁의 중심이 되기 전, 교회가 발전하기 전, 예수의 제자들의 매우 초창기 시대에 기록되었을 것을 지적해 준다. (27.1)
 부가하여, 이런 생략들은 야고보서가 교리적 문제보다는 윤리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할 수도 있다. 우리가 윤리적인 것과 교리적인 것을 구분하는 법에 있어서는 신중함이 필요하며, 특히 전자보다 후자를 승격시키려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둘은 상호 관련이 있다. 사람이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믿느냐는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위에 언급되어진 목록들(예를 들면, 십자가, 침례 등)에 관한 교리를 생각하거나, 경고와 의무들과 관련하여 윤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야고보서가 윤리적인 것에 맞추어져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27.2)
 이 서신은 아마도 신약 성경 중 시종일관되게 가장 윤리적인 글일 것이다. 총 108절 가운데 약 60절 정도가 명령형이다. 신약의 다른 어떤 책도 이처럼 명령형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없다. Douglas Moo는 야고보서의 목적이 “안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명령하며, 권면하며, 용기를 주는 것이다”(36)라고 명백하게 진술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야고보의 다양한 경고들과 교훈들, 명령들은 목회적 격려와 권면의 표현이며, 이 모든 것은 고통받는 무리에게 소망을 주려는 의도였다. (27.3)
 야고보서가 학자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예수 운동의 전승으로 기록되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서는 예수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예수의 핍박자나 반대자들에 의해서 예수께서 인식된 지도자였음에 대한 1세기 유대주의 운동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운동의 활동에 대한 자료들은, 그들의 기본적인 실행과 신념들에 따라, 복음서신과 사도행전에서 발견된다. 이런 문서들은 예수의 사역 후에 예루살렘 교회 초창기의 수십 년 동안 기록되었을지라도, 그것들은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의 가르침과 활동들을 반영하고 있음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다. 야고보는 그 전통과 운동의 맥락에서 저술하였으므로, 그의 글이 복음서 특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조금 적은 비율로)에 있는 예수님의 윤리적 가르침과 병행하고 있음이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글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영하였을 지라도, 기자들은 그것들은 달리 사용했으며 달리 해석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청중들과 배경들, 관심들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27.4)
 야고보서는 예수의 생애, 가르침, 공중 봉사에 대해 다룬 문서들과 병행되기도 하지만, 그의 편지는 1세기 후반부의 교회 생활 속에서 야기된 문제들을 다룬 후기 서신들과도 병행을 이룬다. 가장 확실한 병행은 베드로전서와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신약 정경에 포함되지 아니한 다른 기독교 문서와도 많은 병행구절이 있다. 이런 문서들에는 허메의 목자, 클레멘트 서신, 특별히 초기 서신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정경화된 신약 성서 중에서는 베드로전서가 야고보서와 가장 많은 유사점이 있다. (28.1)
 야고보와 베드로는 둘 다 시련과 순복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그들의 청중은 서로 달랐다. 야고보의 청중은 초기 유대인이었고 베드로의 청중은 후기 이방인이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들이 구절 대 구절을 비교․연구하는 것처럼, 우리는 유사성을 살필 뿐만 아니라, 그 구절들이 다양한 문맥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성경 구절들을 우리들의 시대로 적용시키는 모본-페러다임-이 될 수 있다.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