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야고보서 서문 서론-야고보서
 이 서신에 대한 나의 어린 시절의 첫 회상은 자마이카의 킹스턴에 있었던 우리 집에서 성경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의 숙모인 베릴(Beryl)로부터 들을 때의 추억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나의 가족이나 더 넓은 의미의 가족에게와 마찬가지로, 이 서신은 반복되는 다른 문학서와는 같지 않았다. 이 서신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품성 형성에 매우 중요하며 우리의 행동에 의미심장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특별한 문서였다. 그것은 비록 율법적인 법전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지침서였다. 야고보서의 요약된 다섯 장 속에는 우리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발전과 성장에 도움을 주는 기본적인 지침들이 설명되어 있다. (19.1)
 다음의 과제들은 당신이 야고보서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시작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 서신의 장엄함을 붙잡도록 도와주실 것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발전과 성장을 갖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라. (19.2)
 1. 야고보서를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통독하라. 그중 적어도 한 번쯤은 큰 소리로 읽으라. (또한 이 책을 읽은 것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서신과 친숙해지라. (19.3)
 2. 이 서론을 읽기 전에, 당신이 본문을 읽은 것을 바탕으로 이 서신의 개요를 작성해 보라. (19.4)
 3. 좋은 성경 사전이나 성경 백과사전에서 “야고보”“야고보서”에 대한 기사를 읽어라. 이것은 이 책의 역사적인 배경에 관한 조사를 적절하게 입증할 수 있다. (20.1)
 4. 이 서신에 대한 당신의 연구를 위해 보관할 노트에, 과거에 그대가 중요하게 여겼던 야고보서의 구절들을 너댓 가지 정도 기록하라. 왜 당신은 그 구절들을 선택했는가? 그 구절들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20.2)
 5. 당신이 야고보서 안에서 이해하기 힘들거나 개인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찾아낸 서너 개의 본문이나 구절들을 기록하라. 당신에게 그것들이 문제가 있거나 딜레마에 빠질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간단히 메모하라. (20.3)
 6. 당신이 이 서신을 통독하면서, 이 책을 관류하고 있는 하나의 특별한 주제를 이해했는가? 그것을 당신의 노트에 메모하라. 그 주제를 현저하게 드러낸 특별한 구절들을 열거하라. (20.4)
 7. 야고보가 시험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대여섯 개의 절들을 열거하라. (20.5)
 비록 야고보서가 나에게는 경이로운 작은 문서가 되었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그 지위는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존 엘리어트(John Elliot)는 야고보서가 “일반적으로 두 번째 성경의 ‘쓰레기 서신’으로 자리매김하였다”(71)고 주석한다. 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A.D. 2, 3, 4세기에 이르기까지, 야고보서는 정경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만한 이유는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이 믿어 왔던 서신 속에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적절한 지지뿐만 아니라, 부유한 그들의 생활에 대해 불필요하게 거친 비평을 한 것을 발견할 때 당혹스러웠던 것이다(Blondel, 256). (20.6)
 둘째, 아마도 야고보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의 가장 중대한 이유는 이 책에 대한 마틴 루터의 평가이다. 그는 야고보서, 유다서,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들(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과 베드로전서와 같은 책들에 비해 부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후자의 책들은 그리스도를 명백히 나타내며 지원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요한, 바울, 그리고 베드로의 서신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필수적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쳤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성경의 책이나 다른 가르침에 대해 전혀 읽거나 듣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이 세 사도들의 서신으로부터 전도적인 기독교의 기초들을 가질 것이었다. 그것들과 비교할 때, 루터에 의하면,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었다. 야고보서는 어떤 복음도 포함하지 않았다; 전도적이지 않았다(즉, 복음의 자유에 기초하지 않았다); 율법적이었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정경 밖으로 아주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성경 제일 뒷전으로 내려앉혔다. (20.7)
 개신교 성경 학도들은 이 위대한 개혁자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루터처럼 그들도 야고보서가 바울의 척도와 반대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또한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속죄, 그리고 기독론의 다른 측면들과 구원론 등과 같은 위대한 신학적 주제들을 깊이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야고보서는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21.1)
 그러나 문제는 야고보서에 있지 않다. 문제는 독자들과 해석자들인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와 주제들은 무게 있고 신학적인 반면, 다른 것들은 가볍고 실천적이라는 논쟁으로 신학적인 사상에 대한 인위적인 계층을 만들어 왔다. 우리는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하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신학적인 사상과 실천적인 종교는 우리의 전체적인 성장에 있어 똑같이 중요하다. 모든 신학적 측면들—교리적이고 건조한 학문들이나 실천적인 윤리들—은 그리스도인의 품성 형성에 필수적인 것이다. (21.2)
 야고보서가 (그 신학적 특성을 경시하지 않고서) 아마도 신약에서 가장 실천적인 책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은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아모스 등과 같은 선지서 중의 하나처럼 읽혀진다. 야고보서는 구약의 그 책들 속에 스며있는 것과 비슷한 도전과 대립에 대한 예언적 고리를 가진다. 하지만, 야고보서가 “예언”서처럼 읽혀질지라도, 거기에는 목회적인 격려가 담겨져 있다. 분명 저자는 자신의 백성들의 매일의 정황으로부터 동떨어지지 않은 진실한 목양자이다. 그는 상아탑 신학자가 아니다. 다소, 그는 직무 중심의 신학자이다. 즉, 그의 실천적 신학이 그의 백성들의 매일의 삶 속에 있는 노동과 행함에 대한 그의 봉사에서 생기는 그런 신학자이다. (21.3)
 야고보서는 오늘날의 목양자들과 교회 지도자들과 모든 신자들을 위한 모범적 요람이다. Paul Cedar은 이를 “how-to-do-it-manual”(11)이라 불렀다. 비록 현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런 주제들이 거의 2,000년 전 야고보서의 독자들에게만큼 우리에게도 관련되어 문서 속에 다루어졌다. (22.1)
 교회와 사회 모두에서 개인적이며 단체적인 갱생에 대해 많이 논의되는 한 시대 속에서 야고보서의 폭발적인 가르침은 독특한 가능성들의 세계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제 이 실천적이고 목양적인 신학자의 새로운 기별을 들어보자. (22.2)
 서신의 목적과 구조
 야고보서는 신약의 책들 중 개요를 만들기가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은 책 중 하나이다. 당신이 개요를 만들어 보려 했다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것이다(17쪽의 질문 2를 보라). 만일 당신이 책의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는 유기적인 주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더욱 힘들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지경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당신 혼자 그런 것은 아니다. (22.3)
 마틴 루터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책의 초점을 찾지 못하였다. 이는 윤리적 권고, 충고, 상담, 지도에 대한 단순한 잡동사니처럼 보인다. 루터에 의하면, 야고보는 단지 제자들이 말한 어떤 것을 취해서, 그 말들을 종이 한 장에 내던져버렸다! 그는 마음속에 아무런 특별한 목적이 없었고, 그 책의 기원도 아무런 특별한 근거도 없었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그래서, 주석서들을 조사해 보면 이 서신의 개요가 둘에서 스물다섯까지 나누어지는 것과 그 대부분이 이 서신을 해체하고 있으며 통일된 주제가 결핍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22.4)
 그러나 점점 더 야고보서의 학도들은 이 서신이 다양하고 관계가 없는 항목들의 과일 대접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그 편지에는 유기적이 될 수 있는 통일된 주제가 있다. 성경 학도들은 이제 그 문서를 읽을 수 있는 렌즈가 있음을 깨닫는 중이다. 나는 야고보서의 고난이라는 주제가 그 렌즈임을 믿는다.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