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서문 사무엘상∙하 서론
 시작부터 사무엘서는 재난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 기반도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무엘서의 첫 “장면”은 엘가나, 한나, 사무엘이 실로에서, 엘리의 악한 아들들이 성도의 제물을 훔치고 예배하러 온 여인들을 겁탈하는 와중에서도,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악한 자들이 법궤까지 전쟁터로 끌고 나갔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이겼고 법궤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26.4)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경건한 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심층 주제는 왕권을 반대하는 사무엘의 성난 논조 속에 가려졌다. 그것 역시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26.5)
 그러나 동시에 사무엘상∙하는 왕권의 결과에 관한 사무엘의 경고의 무서운 진리를 예증한다. 이 결과들은 다윗의 초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무엘하 11장 이후로) 간음과 살인의 이중 범과로부터 시작하여 왕권의 어두운 면이 더 진하게 드러난다. 사무엘하의 마지막 장면은 다윗의 과신으로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는 일을 묘사한다. 권력은 참으로 혼돈을 정복하였으나, 권력의 무자비함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이상을 새로이 위협하게 되었다. (27.1)
 열왕기상의 첫 두 장은 권력의 위험을 계속 예증한다. 확실히 우리는 솔로몬이 권력을 합당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보좌에 대한 위협이 되는 아도니야를 제거하고,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쫓아내고, 요압이 흘린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가게 하였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저주한 것에 대한 간접적인 보복으로 시므이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도록 교묘히 덫을 놓았다. 이 모든 것은 매우 적합한 것이었으나 너무 차갑도록 감정이 메마른 것이었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자신과 그 왕국을 파괴하는 데 자기의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솔로몬이 보여줌으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사실이 되고 말았다. (27.2)
 그런 식으로 사무엘상하는 혼돈의 위험을 극복한 바로 그 권력 자체가 새로운 위험 즉 권력의 위험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역시 역사의 주인이시다. 자기 백성을 파괴적인 혼돈으로부터 구출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으로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용인하실 수 없다. 왕국의 역사가 르호보암과 그의 후계자들로 진행되면서 “네 피가 네 머리 위로 돌아가리라”는 구약의 명언이 철저하게 예증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유혹이 생길 것이다. 열왕기하의 마지막 장은 왕국의 마지막 장면이며, 그 장면은 아름답지 못하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그 마지막 왕은 바벨론에서 포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7.3)
 왕권 제도가 좋은 것이었나? 그것은 매우 좋은 질문이다. 이 질문이 사무엘상․하의 갈피마다 따라다닌다. (28.1)
 2. 순종: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반응. 비록 시내 언약이 사무엘상․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애굽의 속박과 이스라엘의 구원의 메아리가 이스라엘의 유산과 의무를 독자에게 계속 상기시켜 준다. 엘리의 조상의 집은 그 위임을 애굽에서 받았으며(삼상 2:27, 28), 블레셋 사람들은 재앙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며(삼상 4:8), 사무엘은 사울이 왕으로 확정될 때에 출애굽의 역사를 이야기하였고(삼상 12장),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에 괴롭힌 죄로 아말렉 족속은 멸절되어야 할 것으로 나타났으며(삼상 15:2), 다윗과 나단 역시 다윗의 계획을 출애굽의 경험으로 해석하였다(삼하 7:6, 23). (28.2)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들이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했는가? 그 답은 순종이다. “영원히” 계속될 약속들도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취소될 수 있다. 실패의 가장 현저한 예는 엘리의 집이다: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28.3)
 사울도 역시 불순종 때문에 실패하였다. 고뇌하는 사무엘의 선고는 여러 세기에 걸쳐 메아리치고 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죄에 대하여 더 오래 참으신 것 같다. 참으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철갑을 두른 것 같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4-16). (28.4)
 그러나 인간이 여호와를 반역하기를 계속할 때는 “영원히”를 의미하지 않는다. 엘리의 집은 쓰라린 경험과 함께 그 교훈을 배웠다. 이스라엘과 다윗의 집이 너무 늦기 전에 교훈을 배울 것인가? 아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상∙하는 예루살렘과 다윗 계통의 왕정을 화염으로 멸망시킨 죽음에로의 행진의 첫 단계를 기술한다. 그렇다! 역시 순종이 중요하다. (28.5)
 3. 하나님의 섭리: 인간사(人間事)에 하나님이 간섭하심. 섭리(攝理)와 하나님의 최상권(最上權)의 사상은 쉽게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나는 최상권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주를 계속적으로 주관하시는 것에 대하여, 섭리는 인간 세상에 특별히 개입하시는 것에 대하여 각각 사용하였다. 이 두 개념은 사무엘상∙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9.1)
 애초부터, 하나님의 섭리적 개입이 완연하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고(삼상 1:5), 사무엘의 잉태와 탄생(20절)뿐만 아니라 자녀를 더하여 주시는 일(삼상 2:21)에도 “그녀를 기억하셨다”(19절).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새 왕으로 택하시는 일에도 직접 개입하셨다(삼상 16:7-12). 그러나 가장 가슴 조이는 섭리의 장면은 버림당하였으나 아직도 기름부음을 받은 왕인 사울과 새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 다윗에 의해 목격되었다. 그때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고,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해하기를 거절하였던 것이다(삼상 24:18; 26:23). 마치 섭리가 다윗을 시험한 것 같다. (29.2)
 4. 하나님의 최상권: 여호와는 역사의 주인임. 사무엘상․하가 인간의 폭력으로 넘친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이 두 책의 시작에 한나가 어린 아들 사무엘을 성전에 바친 후 드린 찬송에서 그 점을 분명히 말하였다: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리라(삼상 2:9, 10). 사무엘하 끝의 시에서 다윗은 같은 말을 한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삼하 22:31, 32). 한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내다보며 찬양하고, 다윗은 뒤돌아보며 찬양한다. 그러나 둘 다 만물의 주인이신 그분을 노래한다. (29.3)
 마지막 대사에서, 다윗이 어리석게도 자기 백성을 계수한 후에 그 같은 진리는 더 뼈아픈 상황 속에서 드러난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오셔서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셨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구하였다. 사무엘서의 마지막 말은 여호와께서 아직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자기 백성의 병을 치료하실 것임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 24:25). (30.1)
 이제 우리가 사무엘상∙하를 더 조직적으로 연구할 때에 인간의 정욕과 욕망이 얽힌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를 주의하여 볼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가장 잘 실현될까? 사무엘상∙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그 문제와 어떻게 씨름하는지 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로이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신다. 심지어 그들의 선택이 그분의 이상과 맞지 않을 때에라도 그렇게 하신다. 그들은 무서운 죄의 값을 치른다. 그러나 다윗은 외친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 (30.2)
 사무엘상∙하의 개요
 I. 사무엘: 왕도 없고 여호와의 말씀도 희귀함 (삼상 1-7)

   A. 거룩한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때에 자라남 (삼상 1-3)

   B. 법궤: 무가치한 매력, 거룩한 공포 (삼상 4-7)


 II. 사무엘과 사울: 여호와께서 주시고 여호와께서 가져가심 (삼상 8-15)

   A. 악한 요구, 높은 희망 (삼상 8-12)

   B. 여호와께서 사울로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심 (삼상 13-15)


 III. 사울과 다윗: 누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가? (삼상 16-31; 삼하 1)

   A. 충실한 종에서 쫓기는 원수로-제1편 (삼상 16:1-18:9)

   B. 충실한 종에서 쫓기는 원수로-제2편 (삼상 18-23)

   C. 두 사람이 다 그 점수를 알 때 (삼상 24-삼하 1)


 IV. 다윗: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옴 (삼하 2-12)

   A. 이스라엘에서 세력을 잡음 (삼하 2-6)

   B. 하늘에서 지옥으로 (삼하 7-12)


 V. 다윗: 상처난 왕의 몰락 (삼하 13-24)

   A.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1편 (삼하 13-17)

   B.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2편 (삼하 18-20)

   C. 자비로운 여호와의 손에 빠짐 (삼하 21-24)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