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1장 총론 제2절 태양 원반(Winged Solar Disk)에서 장미창(Rose Window)까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우상들을 멸하며 신상들을 놉(Noph, Memphis) 가운데서 끊으며 애굽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고 그 땅에 두려움이 있게 하리라 내가 바드로스(Pathros, 카이로[Cairo]과 아스완[Aswan] 사이의 나일 강 유역—‘남방’[Southland])를 황무케 하며, 소안(Zoan, Tanis)에 불을 일으키며, 노(No, Thebes)를 국문하며, 내 분노를 애굽의 견고한 성(城) 신(Sin, Swn, Pelusium, a frontier city of lower Egypt)에 쏟고 또 노(No, Thebes)의 무리를 끊을 것이라.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리니, 신(Sin)이 심히 근심할 것이며, 노(No)는 찢어 나뉠 것이며, 놉은 날로 대적이 있을 것이며 아웬(Awen, On, Heliopolis)과 비베셋(Pibeseth, Tell Basteh, 하 이집트 제18왕조의 수도)의 소년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그 성읍 거민들은 포로될 것이라. 내가 애굽 멍에를 꺾으며 그 교만한 권세를 그 가운데서 그치게 할 때에 드합느헤스(Tahpanhes, Tell Defneh)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그 성읍에는 구름이 덮일 것이며, 그 딸들은 포로될 것이라. 이와 같이 내가 애굽을 국문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0:13-19). (26.1)
 1. 개요
 나일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기자(Giza)를 필두로 해서 사카라(Saqqara), 멤피스(Memphis), 다슈르(Dahshur), 파이윰(Fayyum), 마이둠(Maydum), 베니 하삼(Beni Hasam), 텔 엘-아마르나(Tell el- Amarna), 아비도스(Abydos), 덴데라(Dendera 또는 Dandara) 테베(Thebes, Luxor), 엘 카브(El Kab), 에스나(Esna), 에드푸(Edfu), 콤 옴보(Kom Ombo), 필라에(Philae) 섬, 칼랍샤(Kalabshah), 그리고 아부 심벨(Abu Simbel)에 이르기까지 계곡과 그 연변에 피라밋과 각종 태양신 신전들의 유적들이 즐비해 있다. (26.2)
 이 중 14곳에서 70여 개의 피라밋 유적이 확인되어 “태양과 피라밋의 왕국”이라 불리게 된 이집트는 고 왕국 시대부터 율리우스 캐사르(Julius Caessar)에 의해 로마에 정복될 때까지 거의 3,000여 년 동안 태양을 주신(主神)으로 하고 영혼 불멸설을 강력히 신봉하는 종교 형태의 다신교국(多神敎國)이었다. (27.1)
 

나일 강변에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과 태양 신전들의 유적들
(27.2)
 그러한 이집트가 비록 무력에 의해 로마에 정복되었을지라도 오히려 로마는 “태양과 피라밋”의 종교에 의해 이집트에 정복당해 버렸다. 환언하면 태양 숭배의 유물인 “일요일 신성설”과 영혼 불멸설의 종교 사상은 근원적으로 “태양과 피라밋”에서 기원된 것이다. (27.3)
 

콤 옴보 신전. 신전 파사드에 양각된 태양 원반이 선명히 보인다. 이러한 태양 신전 건축 문화는 중세기의 성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성당의 장미창이 생겼다.
 몇몇 서양의 사가들은 서양 문화의 뿌리를 이집트에서 그 근원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분명한 것은 그 문화의 일부를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29.1)
 그래서 로마가 서유럽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통일하였을 때 “태양과 피라밋”의 종교 사상이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될 길을 열었던 것이다. (29.2)
 그것은 하나의 이집트 신(神)의 복수였을까! 이집트를 멸망시킨 로마는 어쩌면 그 보복으로 “양 날개가 펼쳐지고 독사 코브라에 의해 보호된 태양 원반”“메달리온”(medallion)으로 하는 그 신(神)에 의하여 독사 코브라의 치명적인 공격을 면치 못한 결과였을까! (29.3)
 

람세스 3세의 아들 아몬-헤르-코페체프의 무덤 벽화, 독사 코브라에 의해 보호받는 태양원반이 그려져 있다.
(29.4)
 로마 공화정 시대에 바빌로니아의 신화를 등에 업고 헬라를 거쳐 먼저 흘러들어 오기 시작한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물결과 그 후 율리우스 캐사르 시대에 이집트의 문명과 종교, 그리고 그들의 신화를 등에 업고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나일 강 문화의 물결이 로마에서 합류되어 제정 시대 로마 정신 문화계에 격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나서 그것들이 한참 고조될 무렵, 즉 로마의 종교적 사회적인 정신 문화의 가장 험악한 조건이 형성되었을 때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로마 도성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 때가 이집트의 바로들처럼 “태양의 살아있는 그 아들”로 자처한 네로(Nero, 재위 A.D. 54-68) 황제 시대 전후였다. (29.5)
 

이탈리아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 이집트의 태양 신전의 태양 원반에서 기원된 장미창이 선명하게 보인다.
(30.1)
 그리스도교 복음을 접하게 된 로마의 첫 반응은 저항과 박해였다. 그야말로 적지(敵地)였다. 그러나 그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그리스도교의 복음 진리는 그 순결성이 더욱 빛나고 강했으며, 교세가 더욱 신장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원형극장인 콜로세움에서 순교했다. (31.1)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Bishop of Carthage, A.D. 160-240)의 증언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었다. 100명이 순교하는 곳에서 1,000여 명의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위정자들도 그리스도교를 무력으로 정복할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인 태양신교와 동화 또는 결합을 통해서 진멸하는 길밖에 없었다. 적그리스도가 꾸며낼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었다. 그 계략은 슬프게도 적중하였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도교를 “태양신교화”하는 것이었다. (31.2)
 

콜로세움, 로마
(31.3)
 

최후의 기도
 2. 태양 원반(Winged Solar Disk)의 기원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오시리스(Osiris)는 대지(大地) 게브(Geb)와 천공(天空) 누트(Nut)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이집트 최초의 왕이었다. 그의 아내 이시스(Isis)는 누이동생으로서,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호루스(Horus)이다. (32.1)
 그런데 오시리스의 남동생인 세트(Seth)는 오시리스를 살해하여 그 시신을 찢어서 나일 강물과 사방에 버렸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여러 곳에 흩어진 유해를 거두어 모아 놓고 자신의 끈질긴 노력과 아들 호루스의 주술로 오시리스를 환생시켰다. 이리하여 오시리스는 죽음과 부활을 거쳤기에 사계(死界)의 왕으로서 명부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후 호루스는 세트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