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와 안식일 제 4 장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
 제칠일이 복되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태초의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신 날이다”(창 2:3). “복 주사 거룩하게 하는” 행위는 언약의 행위이다. 태초의 제칠일은 하나님이 그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신 언약의 날이었던 것이다. “일곱째 날이 이를 때”(창 2:2; 요 17:1)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던 것이다”(요 17:1 참조). 태초의 제칠일에 하나님은 제칠일과 더불어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한 언약을 맺고, 그들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던 것이다. (39.1)
 고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바 “복 주어 거룩하게 하는” 언약의 예식은 왕을 선택하고(왕상 1:39), 제사장을 선택하는(레 21:10) 예식이다(출 40:15). 왕과 제사장은 복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 아들로 구별된 사람이다. 복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로 선포된 사람이다(레 4:3). 혼인 예식도 “복 주어 거룩하게 하는” 언약 예식의 하나이다. 혼인 예식은 신랑이 한 여자를 “복 주어 거룩하게 하는” 예식이다. 신랑이 여자를 신부로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는 예식이다. 사람을 양자로 입양하는 예식도 “복 주어 거룩하게 하는” 예식이다. 아무 관련 없는 소년을 아들로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구별하는 예식이다. (39.2)
 안식일은 제칠일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복 받아 거룩해진 날이다. 하나님의 안식일로, 하나님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날로 “복 받아 거룩해 진” 날이다. 안식일은 제칠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진 날이다. 하나님의 거룩으로 영접 받은 날이다. 하나님의 거룩으로 출가한 날이다. 하나님과 함께 거룩을 공유하게 된 날이다. 하나님을 공경하자면 이 날을 공경할 수밖에 없고, 이 날을 욕되게 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특수한 관계의 날이 되었다. 안식일은 제칠일이 하나님의 위업과 명예와 영광을 공유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호적에 오른 날이다. 하나님의 성(姓)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일심 일체가 된 날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날, 하나님의 인이 있는 날이다. (40.1)
 이름이 무엇인가. 존재가 여기에 “이르름”이 이름이다. 존재가 여기에 “이르러 있음”이 이름이다. 존재의 현존, 곧 존재의 여기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이오니까 하고 했을 때 내 이름은 “나 있다”라고 하였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그 이름으로 “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계명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써 자기 존재를 표시하고, 그 이름을 밝힘으로 자기의 존재를 밝히고, 그 이름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현존을 남기신 것이다. 사람도 이름을 줌으로써 자신을 주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아내에게 이름을 주고 자식에게 이름을 주어 자신의 현존을 내주고 맡기듯이, 하나님은 안식일과 인류에게 그 이름을 맡긴 것이다. 인을 새김 같이(출 28:11) 자신의 현존을 새긴 것이다. 인을 새기듯 사람을 자신의 은밀한 마음에 새긴 것이다. (40.2)
 진실로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그 이름과 현존을 맡긴 날이다. 그리하여 안식일 계명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래서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의 날이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계명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여 그 현존을 거룩히 하라는 말이다. 넷째 계명은 이점에 있어서 셋째 계명과 하나이다. 셋째 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 20:7)는 계명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하지 않으신다(출 20:8).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마음은 “제칠일이 복되고 거룩하여 지이다”라고 기도하는 마음이다. (41.1)
 나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안식일은 제칠일이 거룩하게 된 날일 뿐 아니라 사람이 거룩하게 된 날이다. 하나님이 제칠일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맡기신 날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과 신부의 이름을 얻고 거룩하게 된 날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 보좌의 오른편에 앉히신 날이다. (42.1)
 천지간에 아들이란 이름만큼 존귀한 이름이 없다. 천지간에 아들의 기업처럼 거룩하고 위대한 기업이 또 없다. 천사들도 아들의 이름을 부러워하고 아들의 기업을 부러워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때도 천사들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내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을 사람아들을 위해 봉사하는 종으로 부리신다. (42.2)
 그런데 제칠일 안식일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을 아들로 부르고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셨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아들을 영화롭게 한 날이다. 그래서 사람아들의 안식일 거룩은 태초에 사람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거룩이다. 안식일에 사람아들이 아버지께 하는 기도는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거룩하게 하옵소서”(요 17:5 참조)이다. 진실로 안식일은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도 사람아들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는 날이다. (42.3)
 하나님 아버지는 첫 제칠일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한 그 특별한 언약으로 사람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였다. 특별한 언약, 곧 부자의 언약으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셨다. 부부의 언약으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셨다. 아들의 거룩으로, 신부의 거룩으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셨다. (43.1)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맡기고 존재를 맡김으로써 거룩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부르심이, 그리고 사람과 함께 안식하심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심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자고 같이 호흡하는 것이, 은밀한 깊이에서 호흡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리고 생존의 호흡뿐만 아니라 사랑의 호흡을 함께 쉬는 관계, 곧 부자와 부부의 관계에 사람을 두는 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제칠일 안식일의 하나님이요, 사람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시다. (43.2)
 제칠일에 사람을 아들로, 또 신부로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안식을 상징하는 예식이 기름 부음의 예식이다. 안수와 할례와 침례와 성만찬의 예식이다. 이 예식들은 모두 성령의 부어 주심과 사랑의 부어 주심의 상징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어 주심의 상징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주어 왕을 성별하고 제사장을 성별하고 신부와 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예식이다. 하나님의 제칠일 안식일 안식은 이 모든 성별 예식의 원형이다. (43.3)
 안수는 신적인 접촉에 의하여 성별하는 행위이다. 스랍 천사 하나가 하나님의 전에서 집어낸 숯불을 이사야의 입에 대고 이사야를 거룩하게 했듯이(사 6:6, 7) 거룩한 것의 접촉으로 접촉 대상을 거룩하게 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제칠일 안식은 하나님 남편이 사람을 당신의 여자로 삼기 위하여 사람의 머리를 얹어 주는 거룩 행위이며, 하나님 아버지가 사람을 아들로 삼기 위하여 그 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는 거룩행위이다. 그 거룩한 손으로 아들을 깨끗이 하고, 신부를 깨끗이 하는 거룩한 행위이다. 깨끗이 하여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신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행위이다. 아들과 신부로 인치는 행위이다. 안식일의 사람은 “하나님의 인 치신 자이다”(요 6:27). (44.1)
 사람이 스스로 목욕 재계하여 아들과 신부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제칠일 안식은 주워온 거지 소녀 같고 주워온 거지 소년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그 손으로 씻어 거룩한 아들과 거룩한 신부로 삼으신 행위이다. 하나님이 그 사랑으로 씻어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머리 얹어 주심이요, 머리 쓰다주심이요, 안수하심이다. 사람의 제칠일 안식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거룩이다. (44.2)
 기름 부음의 예식도 거룩의 예식이고 축복의 예식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고 향내 나는 사랑의 기름을 사람의 머리에 부어 그 사람을 향내 나는 거룩한 존재로 바꾸는 예식이다. 보통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왕과 제사장으로, 비천한 아이를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더러운 여자를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예식이다. 하나님이 사랑을 기름 붓듯 부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심의 상징인 것이다. 기름 부음은 하나님의 사랑 부음이요, 성령 부음이요, 생명 부음이다. 성령을 부어주심이 신부 삼음이요 양자 삼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다”(고후 1:22). 안식일의 사람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엡 1:13) 아들이요 신부이다. “주 안에 인친 것이 너희”(고전 9:2), 곧 우리들이다. 사람을 거룩하게 구별한 하나님의 제칠일 안식은 이러한 것이었다. (44.3)
 이러한 사랑, 이러한 축복, 이러한 거룩이 제칠일 안식일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제칠일에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아들 되게 하고, 신부 되게 한 하나님의 안식의 더 직접적인 뜻은 숨의 공유와 쉼의 공유를 통한 사랑의 부어 주심이요, 성령의 부어 주심이다(창 2:7; 요 20:22).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입을 맞추고, 호흡을 공유하는 사랑의 부어 주심으로 사람을 아들로, 신부로 거듭나게 한 날이다. (45.1)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랑의 성령, 생명의 성령을 숨을 불어넣듯 사람에게 부어 주시어 사람을 아들로, 신부로 다시 나게 한 날이다(출 23:12). 하나님이 자신의 깊은 숨, 충만한 숨, 생명의 숨, 사랑의 숨을 사람의 코와 사람의 영혼에 아낌없이 쏟아 부어 제칠일 안식의 동반자로, 하나님의 영생의 공유자로, 하나님의 거룩의 일체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주체인 아들과 신부로 거듭나게 하신 날이다. 이 아들과 이 신부가 제칠일 안식일의 사람이다. (45.2)
 그래서 안식일은 어떤 임금이 그 아들을 위해 베푼 잔칫날이며, 신부를 위해 베푼 혼인 잔치이다. 이 잔치를 위한 예비가 예비일의 십자가이다. 이 혼인 잔치의 예비가 예비일의 골고다에서 “다 이루어졌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물과 피와 성령의 부어 주심을 통한 거룩이 “제칠일이 이를 때”에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마음은 이 십자가의 거룩이 제칠일이 이를 때에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마음이다. (46.1)
 사람의 아들 예수를 거룩하게 하셨듯이, 탕자를 거룩하게 하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