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트(Clememt of Alexandria c. 150- c. 215)는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와 동시대인으로서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교계의 사상을 대변하였다. 그는 전쟁과 군복무 문제에 대해 단편적인 것 이상의 논평을 남기지 않았다. 논평의 분량이 적은 만큼 그의 취지도 분명치 않아 학자들 간에 해석이 대립되어 왔다. (55.1)
 클레멘트의 군복무관을 취급할 때 항상 문제가 되어왔던 그의 논평은「이교도에게 주는 권고」(Protrepticus) X. 100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이다. (55.2)
 “당신이 농사꾼이면 농사를 지으시오. 그러나 땅을 경작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인정하시오. 당신이 항해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계속해서 배를 타시오. 그러나 항상 하늘의 선장을 의지하시오. 당신이 군복무에 종사할 때 지식이 그대를 붙잡았는가? 의로운 것을 명하시는 사령관의 말을 청종하시오”1 (55.3)
 클레멘트가 그리스도인의 군복무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클레멘트가 여기서 군직을 여타의 합법적인 세속의 직업들과 나란히 열거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2 이렇게 되면 클레멘트는 여기서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는 바울의 충고를 군직에까지 적용하고 있는 셈이 된다. 즉 클레멘트는 군복무 중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병사에게 군무를 떠나도록 권고하지 않고 오히려 정전(正戰)을 수행하는 세상 군대 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3 (55.4)
 그러나 군직과 관련된 문제의 이 구절은 문장 전체의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구절은 비교적 긴 단락의 세 번째 문장이다. 즉 “만약 당신이 농부라면 계속 농사를 지으시오. . . 그러나 하늘의 선장을 의지하시오” 라는 두개의 문장이 앞에 있고 그리고는 뒤이어 “만약 하나님의 지식(구원의 지식: 필자 주)이 당신을 사로잡았을 때 당신이 전투하는 군인의 신분에 있었다면 정의를 가리키는 하늘 사령관(지상의 사령관이 아니라)에게 귀를 기울이시오” 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군복무 중에 신앙을 시작하게 된 그리스도인에게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군대를 떠날 수 없는 그리스도교 병사들에게 일상 생활만이라도 하늘 사령관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살 것을, 즉 살인과 우상숭배의 죄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구절이 강조하고자하는 중요한 요점은 여러 가지 세속적인 신분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총이 사로잡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각 사람은 기존의 신분과 직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4 (55.5)
 그렇지만 위의 인용 하나만 가지고 클라멘트의 진정한 의도를 판단하기는 아직 불충분하다. 군복무 및 전쟁관에 대한 클레멘트의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클레멘트의 다른 논평들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55.6)
 군복무에 대해 클레멘트가 중립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증거의 예로 신발 착용에 대한 클레멘트의 권면을 들기도 한다. 그는「교사」(paidagogus; παιδαγωγυs)에서 말하기를 “군복무를 수행할 때가 아니면 남자가 맨발로 다니는 것은 가하다”5고 했다. 그러나 이 글의 강조점은 여자의 다치기 쉬운 피부와 남자의 단단한 피부를 단순히 비교한 것으로서 거친 군복무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데 남자가 맨발로 다니는 것이 어떠냐는 취지이다. (55.7)
 그러나 그는 이곳 저곳에서 군복무와 전쟁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관용적인 태도를 암시하는 단편들을 남기고 있다. 그는 군인들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에 있어 사내답지 못한 남자에게 군인의 직분을 맡기는 것이 위험하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 예로써 미디안족과 싸울 때 그 족속의 여인들에게 미혹되었던 히브리인들을 들었다.6 그는 같은 부분에서 군인은 통제하에서 일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피를 흘리는 일까지 감수하면서 자신의 사내다움을 나타내어야 한다고 하였다.7 뿐만 아니라 그는 구약의 모세로부터 군사와 입법의 지식을 배워야한다고 충고했다.8 클레멘트는 출애굽 당시 모세가 길 없는 광야로 행군하여 이집트 군대의 추적을 어렵게 한 사실을 희랍의 밀티아데스(Miltiades)가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을 패퇴시킨 사실과 함께 나란히 기술하면서 그들의 깊은 지략과 대담성을 칭찬하였다.9 (55.8)
 하르낙(A. Harnack)은 클레멘트의 이러한 논평들을 참고하고자 할 때 하나의 전제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이 앞서 그리스도교회 내부에서 발전하고 있었던 반구약적(反舊約的) 경향이라는 것이다.10 마르키온(Marcion)은 신약에 나타난 사랑의 그리스도와 구약에 나타난 호전적인 신을 대립시키고 구약을 그리스도교의 경전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었다. 구약이 없이는 신약의 기반이 허약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교부들은 마르키온을 배척해야 했다. 전쟁의 주제에 있어서 신구약이 공통하다는 입장을 추구해야 했던 교부들로서는 지금까지의 비폭력적 주장에 신축성을 추가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클레멘트의 군사적 은유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55.9)
 “큰 나팔 소리가 병사들을 모으고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평화의 선율을 땅끝까지 울리어 그의 병사들 곧 평화의 군사들을 모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는 피와 말씀으로 피흘리지 않는 평화의 군대를 모으고 있으며 그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주셨다. 그리스도의 나팔은 그의 복음이다”11 (55.10)
 전쟁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이다. 다른 집단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의 영역을 인간의 내면 세계에로 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며 전쟁의 성격과 형식이 이교도들과 다를 뿐이다. 클레멘트는 전쟁 자체를 인간의 정욕과 억제되지 않는 욕망의 문제로 보고 있었다.12 그에게 있어서 특별히 주목되는 현상은 전쟁이 내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내면화는 전쟁윤리의 내면화와 평화윤리의 내면화를 불가피하게 하였다. (55.11)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14-17). (55.12)
 이 성구는 곧 클레멘트의 영적 병사의 개념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 오리게네스(Origenes)가 바로 이 성구의 앞에 있는 에베소서 6장 11-13절을 취하여 자신의 영적 병사 개념을 발전시킨 것을 생각하면 클레멘트의 영적 병사의 개념이 더욱 뚜렷해진다.13 (55.13)
 클레멘트는 이러한 진술들을 통하여 몇 가지의 효과를 의도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그는 전쟁을 내면화하여 군사 신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복종, 용기, 준비성,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 능력 등의 덕목들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전쟁의 주제에 대한 신구약의 공통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은 특히 반마르키온 쟁투에서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둘째로 그는 전쟁과 평화의 내면화를 통하여 전쟁과 평화의 외적 의의를 감소시킴으로써 편협하고 과격한 평화주의의 공격을 완화시키면서도 교회가 지금까지 주장해 온 평화주의 윤리의 기초에는 아무런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었다. (55.14)
 셋째로 전쟁과 평화윤리의 내면화를 통하여 군복무에 불가피하게 얽매어 있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돌파구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이제 비록 육체로는 군복을 입고 있지만 양심으로는 여전히 평화의 군인으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넷째로 그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병사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군무에 남아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삶의 정황적 배려를 잠정적인 것으로 제한시키고 그들에게 완전한 의미의 영적 병사 생활로 재 헌신할 여지를 계속 비어 주었다. 한마디로 클레멘트는 평화주의적 전통의 유지와 군복무의 현실성에 대한 관용을 동시에 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 (55.15)
 평화윤리 전통의 유지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그의 논문들 속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그의 평화주의는 사실상 원시 그리스도교회 평화주의의 계승이었다. (55.16)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교육을 받았으며 호전적 민족이 아니라 평화 수호의 민족이며 악기로 비유하면 평화의 악기이다. 다른 사람들은 군사적, 전투적 정욕을 부채질하지만 우리는 단 한가지의 도구 곧 평화의 언어를 사용하며 이로써 하나님을 찬양한다.”14 (55.17)
 그는 또 이교도에게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의 무리에 들어온다면 하늘 나라가 당신의 나라가 되며 하나님이 당신의 입법자가 된다. 그러면 그의 법이 무엇인가? . . . 곧 살인하지 말라 . .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다른 쪽 뺨도 내주라”는 것이라 하였다.15 (55.18)
 그는 또 자신이 주장하는 남녀평등의 행동윤리가 여자는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배척을 당하자 “우리는 우리의 여인들을 아마존 부족처럼 전쟁을 위해 훈련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평화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16고 하였다. 그는 또 전쟁 준비와 전쟁 음악을 정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회를 “무기 없는 군대,”17 “피 흘리지 않는 군대, 분노하지 않는 군대”18에 비유하였다. (55.19)
 현실의 불가피성에 대한 그의 관용적인 태도는 그가 누가복음 3장 14절에 나오는 침례 요한의 말을 빌어 그리스도인 병사들에게 교훈할 때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상관에게 복종할 것과 강탈과 압제를 하지 말라고 권면하면서도 군대를 떠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19 클레멘트는 여기서 그리스도인 병사의 문제를 마르키오니즘에 대한 대응책의 차원을 넘어서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서 다루고 있다. (5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