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4 부 안식일 신앙의 한 작은 주장 제 13 장  일요일, 주의 날인가, 태양의 날인가?
 창조 주간과 부활 주간에 있어서 첫째 날의 위치
 일요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첫째 날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할 수 있다. 그러나 둘째 날로도 주님의 새 세상을 기념할 수 있다. 셋째 날에도 주님의 부활을 기념할 수 있다. 부활은 첫째 날의 빛의 부활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 만물이 모두 함께 탄식과 고통을 당해오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새로운 삶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은 모두 지나가고 만물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 6:17). 따라서 둘째 날의 피조물도 부활에 참여했다. 셋째 날의 피조물들도 부활에 참여했다. 넷째 날의 피조물도 부활에 참여했다. 어찌 첫째 날의 피조물뿐이겠는가. (542.1)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 모든 것, 곧 이제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과 장차 있을 하나님의 모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한 날을 하나님은 태초에 영원한 율법 속에 정해놓으셨다(시 118:22, 23, 24). 그날이 제칠일 안식일이다. 제칠일이 창조의 기념일이고, 출애굽의 기념일이다. 재창조의 기념일이다. 제2의 출애굽의 기념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침례와 수난과 부활의 기념일이다. 우리의 침례와 거듭남과 구원의 기념일이다. 우리의 성령받음의 기념일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기념일이다. (542.2)
 한편, 일요일은 첫 창조의 첫째 날이다.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첫째 날이다. 첫 창조의 6일 중 어느 한 날도 안식일이 되지 못했다.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안식일이 되지 못했다. 재창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창조의 주간에 있어서 첫째 날은 여섯 날의 으뜸이 아니다. 첫째 날도 “좋은 날”(창 1:4)이고, 둘째 날도 “좋은”(창 1:10) 날이다. “심히 좋은”(창 1:31) 날은 오히려 제6일이다. 제6일에 태어난 사람이 “심히 좋은” 피조물이어서 제6일이 심히 좋은 날이요, 제6일과 함께 앞의 다섯 날의 피조물을 다 갖추게 되었으니, 제6일의 세계가 심히 좋은 세계였다. (543.1)
 여섯 날의 으뜸을 뽑아야 한다면 마땅히 제6일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심히 좋은” 날인 제6일도 하나님이 “쉬고 평안을 누리는”(출 31:17) 안식일이 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은 창조의 6일의 어느 한 날을 높이 들어 다른 다섯 날들을 낮게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섯 날에게 공평하기 위하여 여섯 날의 밖에 있는 제칠일을 선택하여 자신의 안식일로 삼았다. 공평하신 하나님다운 처사이다. 공의의 하나님다운 처사이다. (543.2)
 그런데 가톨릭을 위시한 일요일 기독교도들의 주장은 어떤가. 첫째 날이 신약의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첫째 날이고, 주님이 부활의 삶을 시작하신 날이 일요일이라서 첫째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모습과 기능은 어느 날에 드러났는가. 물론 첫째 날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어떻게 주장하시는가. 첫째 날에 창조의 가라사대의 선포를 시작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첫째 날을 무슨 날이라 하셨는가. 거룩한 안식일이라고 하셨는가. 첫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 날을 “좋은 날”이라고 하셨을 뿐이다. 첫째 날은 다른 날과 같이 “좋은 날”일 뿐이다. 하나님이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날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신 날은 제칠일이다. 하나님은 “제칠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다. 제칠일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를 기념하라 하셨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제칠일로 하나님의 위대한 부활의 능력을 기념하지 말아야 하는가. (543.3)
 첫째 날을 신격화하는 세계는 어디인가? 성경의 세계인가? 이교의 세계인가?
 잘 들어 두어야 한다. 첫째 날을 자랑하는 세계는 성경의 세계가 아니다. 빛의 첫째 날을 자랑하여 이 날을 신격화하고, 빛의 태양을 특별히 신격화하는 차원에서 태양의 날을 신격화하는 세계는 성경의 세계가 아니다. 이방의 세계이다. 이교의 세계이다. 태양을 숭상하는 세계이다. 태양을 신이라 말하는 세계이다. 태양을 으뜸 신으로 믿는 세계이다. (544.1)
 성경의 세계에서는 어느 한 때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첫째 날을 태양의 날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 날이 단순히 안식 후 첫째 날일뿐이다. 그리고 첫째 날은 위상과 성격에 있어서 둘째 날과 같고 셋째 날과 같다.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는 여러 날 중의 하나이고, 여러 좋은 날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전부이다. (544.2)
 그러나 태양 종교의 세계에서 첫째 날은 일요일이다. 태양의 날이다. 신의 날이다. 그들의 주의 날이다. 그러나 성경의 세계에서는 제칠일이 하나님의 날이다. 제칠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날이다. 제칠일이 주님의 날이다. 제칠일이 하나님의 안식일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의 날”이다. (544.3)
 만약 기독교가 타락한다면 어떤 기독교일까. 태양과 하나님을 혼동하는 기독교일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태양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기독교일 것이다. 태양신도들이 주의 날이라 호칭하는 날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의 날이라 하는 날도 구별 못하는 교회일 것이다. 제칠일과 일요일도 구별 못하는 기독교일 것이다. (544.4)
 그러나 무엇보다도 만약 기독교가 타락한다면 그 교회는 필시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는 기독교일 것이다. 하나님이 정한 때를 고치고 하나님이 정한 법이라도 고치는 교회일 것이다. “작은 뿔”이 행하는 짓을 개의치 않는 교회일 것이다. 다니엘은 바로 이러한 세력과 이러한 세력의 행위를 경계하였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하고자 할 것이다”(단 7:25) 라고 경계했던 것이다. “작은 뿔”의 가장 현저한 특징의 하나는 “때와 법을 변개하고자 하는” 그 의도와 행위이다. (545.1)
 그리고 만일 기독교가 타락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시키시지 않는 일을 할 것이며, 하나님이 시키시지 않는 법을 제정하여 하나님의 제정한 법을 폐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을 폐하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 싫어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 단 9:27; 계 17:4, 5)을 배치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곳, 즉 십계명의 자리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밀어 제치고 태양의 세계에서 태양신의 날이라고 받들어온 일요일을 갖다 모실 것이다. 만약 기독교가 이 지경이 되었다면 그 교회는 갈 때까지 간 것이다. (545.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일요일을 태양의 날이라고 말하면서 주의 날로 지키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요일이 기독교적인 날이라고 말해야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을 수용할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을 곧이곧대로 하나님의 날이라 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제칠일 안식일을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의 날이라고 해야 배척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폐한다고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해야 제칠일 안식일을 배척할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일요일 신학이고, 주일 신학이다. 제칠일 안식일을 나쁜 날이라 하고 일요일을 좋은 날이라고 가르치는 일요일 신학이다. (545.3)
 그러나 일요일을 주일이라 하는 신학은 성경에 없다. 오직 제칠일 안식일이 주일이라고 하는 신학만이 성경에 있다. 그래서 성경에 없는 일요일 신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일요일 신학자들은 제칠일 안식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안식일 주일 신학을 끌어다 쓴다. 안식일 신학을 왜곡해서 일요일 신학을 위해서 쓴다. 안식일 신학을 일요일 신학으로 갖다 부쳐서 쓴다. 제칠일 안식일 신학을 빙자하여 일요일 신학을 주장한다. 괴변이고 억지이다. 일요일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정한 하나님의 안식일을 폐하고 대신 태양의 날을 신격화하여 새로 제정한 날이다. (546.1)
 북방 이스라엘의 첫 임금 여로보암이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왕상 13:32)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 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왕상 12:33)다. 일요일 준수자들이 행한 것이 여로보암의 행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일요일주의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일요일을 주일로 정했다. 여로보암이 남방 유다에 대한 악감정으로 8월 15일을 제정하였듯이, 일부 이방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유대민족에 대한 악감정으로 새로 일요일 주일 제도를 제정하였다. (546.2)
 일요일 주일론자들의 주장에는 위험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일요일 주일론을 주장하면서 제칠일 안식일 이야기를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일요일의 의의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안식일의 사상과 안식일의 권위를 끌어다 쓰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신의 날을 높이려고 하나님의 날의 위세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단체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17장 3절이 무엇이라 하였는가. 음녀가 “붉은 짐승을 탔다”고 했다. 그렇다. 음녀의 앉은 자리는 붉은 짐승이다. 일요일 위에 앉아있는 주체가 누구인가. 일요일이 앉아있는 보좌가 무엇인가. 일요일은 붉은 태양신의 보좌에 앉아 있다. (546.3)
 어찌하여 일요일의 주장이 참람한가?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이 일요일을 태양의 날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요일을 태양신의 날이라고 부른다 해도 그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선”(계 14:1) 것이 잘못이 아닌 것처럼 음녀가 붉은 짐승 위에 앉은 것이 잘못이 아니다. 십사 만 사천이 시온 산에 서고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계 14:1)이 잘못이 아닌 것처럼, 음녀의 이마와 짐승의 몸에 음녀와 짐승의 이름을 쓰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제칠일 안식일이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을 쓴 것이 잘못이 아닌 것처럼 일요일이 그 이마에 태양신의 이름을 쓴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다. 그들이 모두 제 본성의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547.1)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의 날이요, 어린양의 인의 날이기 때문이다. 제칠일이 하나님의 날이고, 어린양의 날이므로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요일은 태양신을 숭상하는 사람들에게 태양의 날이고, 태양신의 날이다. 그래서 일요일의 이마에 태양의 이름을 쓰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5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