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4 부 안식일 신앙의 한 작은 주장 제 12 장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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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안식일, 가나안의 안식일
 구약에는 제칠일이 안식일이고, 신약에는 첫째 날이 안식일이라는 주장은 구약의 십계명이 신약에는 폐했다거나 신약에는 십계명이 달라졌다고 하는 말과 같다.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변개치 않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십계명은 영원하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한다. 제칠일은 구약에도 안식일이고, 신약에도 안식일이다. 창세기의 안식일은 출애굽 때도 없어지지도 않았고, 달라지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로 출애굽까지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였다. 신명기 5장 15절에서 그렇게 하였다. (536.1)
 낙원에서도 제칠일은 안식일이었고, 에덴 동산을 떠난 다음에도 제칠일은 안식일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와 홍해를 넘어 광야로 행군할 때도 제칠일은 안식일이었으며,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에도 제칠일은 안식일이었다. (536.2)
 제칠일 안식일은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자유의 삶을 상징했고 40년 동안 광야를 헤맬 때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삶을 상징했다. 제칠일 안식일이 미래에 있을 자유와 안식의 삶, 곧 가나안과 메시아 때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한다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제칠일 안식일을 철폐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신명기 5장 15절의 분부대로 계속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켰다.” (536.3)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인이 안식일로 상징되었던 은혜의 왕국에 들어왔으므로 안식일을 폐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일요일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크게 주목해야 한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제칠일 안식일로 상징되었던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제칠일 안식일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 일요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의 삶을 시작한 일요일을 구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되는 새 시대를 기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날을 구별해서 그들의 가나안 입성을 기념하게 하지 않았다. (537.1)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극복하고 이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제칠일 안식일을 통하여 찬송하게 하고, 이 세계의 좋고 거룩한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였듯이, 가나안 땅에서도 이스라엘을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제칠일 안식일을 통하여 찬양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였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신 5:15) 하였던 것이다. (537.2)
 창조의 때에 이루어 진 신약 시대의 안식일 안식
 이 방식은 신약 성경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대로 이어진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창세기 창조의 안식일 안식이나, 출애굽기의 가나안 안식일 안식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일 안식”(히 4:9)에 의하여 이루어 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참 안식에 들어가는 일은 어제와 오늘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 4:3)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절의 안식일 안식이 바로 그 안식이라는 것이다. (537.3)
 히브리서는 출애굽과 예수의 사건 같은 구속사의 새로운 일들에 의하여 창세기의 제칠일 안식일이 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세기에 소개된 그 안식일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고 새로운 깊이가 더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의 제칠일 안식일에는 출애굽의 백성들과 다윗의 백성들을 위하여 “남아있는”(히 4:9) 차원과 깊이가 있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남아있는 약속”(히 4:1)이 있다는 것이다. (538.1)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출애굽의 백성들과 다윗의 백성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이 이미 들어간 “그의 안식”의 경지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신”(창 2:2) 그 안식일 안식에 다름이 아니라고 한다(히 4:10). 즉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는 것이라”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태초부터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누리는 삶의 시간적 표현이었다는 말이다. 신약의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창세기 2장 2절의 제칠일 안식일이외의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다. (538.2)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고 그의 안식, 곧 예수의 안식에 들어갔다. 다른 예수, 곧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안식에 들어갔듯이 우리는 나사렛 예수와 함께 “그의 안식에 들어갔다”(히 4:1). 주지하다시피 여호수아의 희랍식 표기가 예수이다. 여호수아와 그 무리들이 제칠일 안식일을 폐하지도 않았고, 다른 안식일을 제정하지도 않았듯이 초기 기독교들의 사도들도 제칠일 안식일을 폐하지 않았다. 일요일 같은 다른 안식일을 제정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는 “그의 안식”이 전혀 새로운 안식이란 인식도 없었다. “하나님이 제칠일에 쉬어 평안한”(출 31:17) 안식이 바로 그리스도의 “그의 안식”이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끼치는 평안이기”(요 14:27; 20:21) 때문이다. (538.3)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는 동일한 방식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는 방식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것이 없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도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차이가 없었다. 구약의 백성이나 우리가 만약 제칠일 안식일의 참 안식에 이르지 못하고 “그의 안식”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들과 우리가 모두 한결같이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히 4:2) 이었던 것이다. 안식일 안식의 복음을 들었지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 안식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539.1)
 이와 같이 구약의 백성이나 신약의 백성은 모두 복음의 말씀을 들은 점에 있어서는 같은 토대에 서있다. 그리고 믿음이 없으면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도 그 서있는 토대가 같다. 그들이나 우리들 모두에게 조건은 똑같다. 믿음이 없으면 그 들은 바 복음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창세기의 백성이나, 출애굽의 백성이나 또 시편의 백성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지해서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이나 우리가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믿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히 4:6).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히 4:6)던 것이다. 다윗의 세대가 안식에 이르지 못한 까닭도 “믿지 아니하는 악심”(히 3:12) 때문이고, 그 마음이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히 3:13; 4:7)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539.2)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의하면 그 때나 이 때나 우리의 목표는 하나이다. 창세기 2장 2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우리도 자기 일을 쉬는 것”(히 4:10)이다. 하나님이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셨듯이”(출 31:17), 우리도 제칠일 안식일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전이나 오늘에 한결같다. 너 뿐만 아니라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 모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듯이 “아무 일도 하지 말”(출 20:10, 11)고 쉬는 것이다.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출 23:12)는 것이다. (540.1)
 창조와 재창조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창조와 재창조의 날인 제칠일 안식일
 일요일 주장자들은 다음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재창조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인가. 아니다. 창세기의 창조 자체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요 1:3)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골 1:16)다. 첫 창조의 예수 그리스도와 둘째 창조의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그리스도이다. (540.2)
 그리고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창세 때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다(계 13:8).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약성경의 인식이 이와 같았다. 구약의 토대가 신약이고 구약의 깊이가 신약이다. 신구약이 하나이다. 하나의 구속사이다. 하나의 구속사가 어느 날로 기억되고 기념되도록 하나님이 명하셨는가. 제칠일 안식일 아닌가. 그런데도 첫째 창조의 그리스도는 제칠일 안식일로 기억되어야 하고, 둘째 창조의 그리스도는 첫째 날 곧 일요일로 기억되고 기념되어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신약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일한 제칠일 안식일로 동일한 그리스도가 찬양되고, 동일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업이 기념되었다. (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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