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4 부 안식일 신앙의 한 작은 주장 제 10 장  안식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일
 안식일, 창조와 출애굽의 기념일
 제칠일 안식일과 일요일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가 제일 먼저 전제해야 할 한가지 사실이 있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그 나라의 기본 원리로 제정하신 십계명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출 20:8) 십계명의 하나로 분부하신 날이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할(마 5:18) 하나님의 율법의 날이다. 감히 “작은 뿔”(단 7:24)이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절대로 “변개하고자” 못할 “때와 법”(단 7:25)이요 때의 법이다. (513.1)
 안식일 계명은 기억하고 기념하는 계명이다. 우리가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할” 계명이다. 안식일과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해야하는 계명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하신 까닭은 “야훼께서 엿새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공동번역, 출 20:11). (513.2)
 그러나 안식일과 일요일 논의에 있어서 전제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출애굽 해방의 기념일로 지키게 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신 5:15)고 하셨다. 창조의 일을 다 마치신 다음에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와 창조주의 창조를 기억하고 존중하게 하기 위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은 애굽의 종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해방시키시는 위대한 일을 다 마친 다음에 어떤 조치를 취하셨는가. 첫째 날이나 혹은 다른 날을 구별하여 출애굽의 위대한 사건의 기념일로 정하셨는가. 아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513.3)
 대신에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계명에서 창조의 기념일로 제정하고 인치신 한 날 곧 제칠일로 하여금 창조의 일과 함께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였다. 창조의 기념일 외에 출애굽의 기념일을 별도로 제정하지도 않으셨고 또 출애굽 기념의 날을 정하여 앞서 십계명의 하나로 정한 안식일 계명을 폐하지도 않으셨다. 진실로 제칠일 안식일은 태초부터 “여호와의 행하시고 우리 눈에 기이한”(시 118:23) 그 위대한 일들을 기리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다(시 118:24). 제칠일은 오직 그 목적으로 창조되고 구별된 날이다. 이러한 날은 제칠일 안식일 이외에 달리 없다. (514.1)
 예수님의 부활은 어떻게 기념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창조와 출애굽에 이어지는 중요한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은 정말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사건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가. 어느 날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가.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실지로 무엇으로 어떻게 기념했는가. 신약 성경에는 침례(롬 6:3, 4)와 성만찬(눅 22:19)으로 이 사건을 기념하라고 하셨다. 특별히 어느 날로 기념하라 하신 곳은 없으나 히브리서를 보면 제칠일 안식일로 기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히 4:10). 사도들의 습관적인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미루어 볼 때 이 태도가 당연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514.2)
 그러나 가톨릭을 위시하여 일반 개신교가 하나같이 첫째 날, 곧 일요일로 이 사건을 기념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명령했느냐고 물으면 마치 주님이나 사도들이 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몇몇 신약성경의 구절을 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첫째 날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라고 주께서 명령하신 곳은 신약성경에 한곳도 없다. 사도들이 그렇게 주장한 곳이 한곳도 없다. (515.1)
 그리고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했으니 제칠일 안식일을 폐하라 명한 곳도 신약 성경에는 없다. 오히려 예수님과 사도들이 관례대로 안식일을 지킨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예수님은 침례와 성만찬으로 당신의 수난과 묻힘과 부활을 기념하라 했는데 그리고 안식일을 계속적으로 존중하여 제칠일 안식일로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요일 지키는 교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첫째 날을 별도로 구별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일요일을 주일로 삼아 예수님 사건 중에도 특별히 부활을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515.2)
 그런데 침례는 주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예수 사건의 핵심은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이다. 이점은 교황 바오로 2세의 교서 『Dies Domini』의 제6항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바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 사건은 일요일 하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차례로 금요일과 제칠일 안식일과 일요일에 일어났다. 일요일로 부활을 기념하려면 금요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안식일로 그의 묻히심을 기념해야한다. 일주일의 삼일을 기념의 날로 삼아야 할 것이다. (515.3)
 그런데 주님께서 명하신 성만찬은 예수님의 부활보다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그리고 일요일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해야 한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작 일요일에 행하는 주요 행사는 다름 아닌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만찬이다.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고집하자면 성만찬은 제육일, 곧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 (516.1)
 그리고 로마 가톨릭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또 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십자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십자가는 부활의 상징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상징인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일차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초대 교회의 신앙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주로 강조했다. 그리스도교는 일차적으로 십자가의 종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강조하고 십자가를 강조한다고 해서 주님의 부활을 등한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부활을 강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부활은 강조되어야 하고 기념되어야 한다. 반대하고자 하는 것은 부활만을 강조하여 그 구실로 일요일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일요일을 강조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폐하려는 의도이다. (516.2)
 기독교가 예수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념하려면 예수의 죽음과 묻힘과 부활의 모두를 기념하여야 한다. 심지어는 예수의 탄생과 승천까지를 모두 기념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리고 기념해야 할 사건이 또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구속사의 사건들이 다 완료된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구속사의 기념할 사건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재림이 또 남아있다. 그러면 재림의 기념은 어느 날로 해야 되는가. (516.3)
 출애굽의 사건도 예수님의 사건처럼 세분할 수 있다. 출애굽의 출발과 완성과 홍해의 도강과 요단강의 도강 등을 따로 따로 기념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요일 주창자들의 방식대로 하지 않았다. 출애굽의 사건을 하나로 통합하고 한날로 통합하여 기념하게 하였다. 또 새 날을 정하여 기념케 하지도 않았다. 기존에 있던 제칠일 안식일 즉 십계명의 하나로 하나님의 지성소에 구별해 놓은 제칠일 안식일로 기념케 하였다.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존중된 제칠일 안식일로 출애굽의 총체적인 사건을 기념케 하였다. (516.4)
 창조의 기념일로 출애굽의 기념일이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방식이라면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어떻게 기념해야 옳은가. 그리스도의 탄생과 침례 등을 일주일의 단위에서 어떻게 기념하는 것이 옳은가. 마땅히 창조의 기념일과 출애굽의 기념일인 안식일로 예수의 구속 사건까지 기념하도록 해야 옳다. 십자가와 부활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요 출애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안식일 계명이 하나님이 제칠일에 “쉬어 평안한”(출 31:17) 사건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육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사건을 기념하고 있고 인간의 출생을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애굽의 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쉬심의 기억과 기념의 날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맹렬한 활동의 기억과 기념의 날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쉼의 날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날이다. 하나님은 6일에도 일하시고 제칠일에도 일하신다. 이같은 안식일 신학에 의하여 안식일에는 이미 부활하여 일하시는 예수님의 활동이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과 활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요일을 별도로 선별할 필요가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517.1)
 구속사의 진행과 더불어 제칠일 안식일의 기능과 범위는 계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쉬는 날에서 시작하여 일하는 날의 기능까지, 창조의 완성뿐만 아니라 창조의 활동까지, 창조 뿐만 아니라 출애굽까지, 출애굽 뿐만 아니라 주님의 수난과 부활까지를 포용하는 “큰 날”이 되게 되었다. 아무도 제칠일 안식일을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못한다”(슥 4:10). 제칠일 안식일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삼상 12:24)의 날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그 큰 일들의 날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그 큰 일들을 “생각하며 오직 그를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는 마음으로”(삼상 12:24) 기억하고 거룩히 지켜야 할 날이다. 따라서 금요일의 십자가 사건도 제칠일 안식일로 기념되어야 하고 일요일의 부활 사건도 제칠일 안식일로 기념되어야 옳다. 이것이 성경이 의도하는 제칠일 안식일의 사명이요 목적이다. (517.2)
 제2의 출애굽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십자가 사건이 제2의 출애굽이요 부활의 사건이 제2의 출애굽이다. 예수님의 일생이 출애굽사건을 압축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광야 40일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게 부활절은 또 하나의 유월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어린양이다. 즉 출애굽의 어린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 출애굽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또 한 분의 모세이고 여호수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유월절 양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출애굽의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간 사건이다. “이제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던”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이(롬 8:22) 함께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는(롬 8:15)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로운 삶으로 새롭게 들어간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말미암아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적인 출애굽이 이루어진 것이다. (518.1)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을 때”(눅 9:28, 29),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사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는 일, 곧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였다”(눅 9:21)고 말했다. 그런데 그 “죽음”이 곧 출애굽이라 하였다. 그가 “죽음”을 뜻하여 쓴 희랍어 단어는 70인역 희랍어 성경에서 사용한 “출애굽”과 같은 단어이다. “엑소돈”(ἔξοδον)이다. 에소더스의 목적격이다. 누가는 예수의 이 “죽음”에서 출애굽을 암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519.1)
 예수의 수난과 부활이 하나로 묶어 출애굽이다. 유월절 어린양인 예수의 죽음이 출애굽의 출발을 대표한다면 예수의 부활은 가나안 입성을 대신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금요일이 예비일로서 유월절 어린양이 죽은 날이라면 일요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끝내고 가나안에 정착한 날을 대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출애굽의 사건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로 압축할 수 있다. (5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