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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신문기자도 지구의 창조와 첫 결혼의 축하를 취재하기 위하여 참석한 자는 없다. 창세기 1장2장의 간단한 설명은 하나님께서 홀로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말한다. 그분은 창조사업의 완성과 절정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창 1:27)셨다. (23.1)
 이 근원적인 성경절은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인류의 첫 부부는 진화적 과정이 아닌 거룩한 창조로부터 기원되었다. 둘째, 두 낱말이 대치되며 비교하여 나타내 보여주듯이(대구법) 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남자와 여자” 두 성을 포함하는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남, 여의 구별을 초월하신 이래로, 이것은 모양이라기보다는 도덕적, 이성적, 그리고 영적 능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또한 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일치처럼 남녀의 친교가 하나 되는 능력도 포함한다. 셋째, 인간은 남, 여 양쪽을 구성하는 성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남녀가 성적으로 기능이 서로 다른 것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존엄과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23.2)
 반려자의 필요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그분의 창조가 좋았다고 말씀하신다(창 1:4, 10, 12, 18, 21, 25, 31). 하나님께서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유일한 것은 독신이었던 남자의 창조에 대한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23.3)
 이와 같은 의미에서 창조는 아직 불완전했었다. 남자 혼자로서는 자녀를 낳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 곧,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친밀한 교제 같은 것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남자나 혹은 여자가 된다는 그 이상의 뜻을 가진다. 그것은 순수한 이해와 절친한 영적 교제를 즐 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좋지 않다”는 상태에 대처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고 선언하셨다. (24.1)
 돕는 배필
 하나님께서는 여자로 하여금 남자의 돕는 배필, 혹은 문자적으로 그를 돕는 조력자가 되도록 계획하셨다. 이브는 모든 면에 있어서 아담에게 다른 반쪽이 되도록 창조되었는데 결혼으로 완전하게 연합될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노예가 아닌 조력자가 되도록 창조되었다. 단어 “돕는 배필”(히, ‘ezer)은 어려운 자를 돕는 자로서 하나님께도 사용된다(시 33:20, 146:5), 이와 같이 여자는 결코 열등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여자는 본질과 가치에 있어서 동일하며,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창 1:27). 그러나 여자는 조력자로서 돕는 기능에 있어서 다르다. 우리는 4장에서 가정과 교회에서 조화된 관계들을 확실하게 하는 창조적 역할의 차이의 중요성을 살펴볼 것이다. (24.2)
 여자는 남자의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 교제의 짝이요, 그녀가 홀로 있을 때보다 더 위대한 인격으로 만드는 짝이요, 여성에 대한 이해를 다른 방도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그녀로 말미암아 그의 생애에 가져오게 하는 상대편 짝으로 창조되었다. 또한 남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은 아내의 생애를 부요케 할뿐만 아니라, 결혼으로 배우자가 없었을 때보다 더욱 완전하게 만드는 남성적인 면의 영향을 그의 아내에게 끼친다. 이와 같이 결혼의 결합은 짝의 필요를 채울 뿐만 아니라 한 남자로서, 그리고 한 여자로서 더욱 완전하게 하며 더욱 완전한 인격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24.3)
 독신 생활
 “좋지 않다”고 하신 독신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은 그리스도의 진술에 따르면 모순되는 것같이 보인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 19:11, 12). 비슷한 표현이 독신 생활을 말하는 바울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전 7:7). (25.1)
 이 두 구절(마 19:11, 12; 고전 7:7)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독신 생활을 하도록 가려내신다는 제안을 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독신의 은사를 허락하심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라는 선언을 어떻게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가? 이 분명한 모순에 대한 해결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반적 원칙에 예외를 가지셨다는 인식에서 찾을 수가 있다. 죄가 낳은 사회적 왜곡이나 위기 때문에, 그분의 나라의 사업의 전진을 위하여 교회에 의탁된 긴급한 요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어떤 사람들을 준비 하신다. (25.2)
 독신의 은사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성경에 확실하게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은사들은 짝을 찾는 능력, 혹은 다른 종류로서, 결혼에서 제외됨, 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결혼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에 깊이 관련될 수 있음(고전 7:32-34 참조) 등을 들 수 있다. 그 리스도께서는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 19:2)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독신 봉사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는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고 추구해야 한다. 누가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독신 생활의 은사를 받았는지에 대하여 마태복음 19:22고린도전서 7:8, 9에 입각한 두 시금석을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1) 나는 나의 성적 충동을 자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2)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데 만족하며 협력적인가? (25.3)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독신의 은사를 받은 독신 그리스도인들은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경멸이나 무시를 당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근원적인 목적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진전시키는 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그들의 자원함이 존중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온전히 그리고 더욱 자유롭게 섬기기 위하여 독신 생활을 선택한 바울을 경멸하지 않는다. (26.1)
 여자의 창조
 하나님께서 첫 신부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방법은 대단히 중요하다. 남자와 다른 것들의 창조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이브를 “흙의 티끌”(창 2:7)로 만들지 않으시고, 그녀의 남편이 될, 바로 그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심으로 만드셨다(창 2:21). 비록 상세히 명시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브 창조 방법의 중요성은 빼놓을 수 없다. 이브는 아담을 지배하도록 그의 머리로부터 만들 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짓밟혀야 하는 발로부터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동등한 자가 되도록, 그의 팔 아래서 보호받고 그리고 사랑받도록 심장 가까이 그의 옆에서 취하여 만들어졌다. (26.2)
 아담이 잠에서 깬 후, 하나님의 창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을 바라보았을 때 놀라 외쳤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창 2:23). 아담의 즐거움은 그의 불완전함을 완전케 할 인격체를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완전에 대한 굶주림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배필로 필요로 하는 남자를 만드셨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을 이브가 없이는 불완전하도록 만드셨다는 뜻이다. (27.1)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신 방법은 남자와 여자를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완성과 만족을 위해 다른 상대편을 필요로 한다. 그들 개인은 하나님께서 남자 혹은 여자에게 주신 성적 그리고 기능적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성적 그리고 기능적 역할을 상호 교체하려고 하는 노력들은 창조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역할의 구분에 대한 위반임을 의미한다. 참된 완전과 자아실현은 우리의 성적 혹은 기능적 역할들을 초월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다르지만 보완의 역할 가운데 완성을 가져오는 데 있다.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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