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서 주일로 제3장 부활 현현과 일요일
 부활(The Resurrection)
 최근의 연구동향에서 일요일 준수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가장 일반적인 신학적인 동기는 주일 중 첫째 날에 발생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현이다. 예를 들어 모스나(C. S. Mosna)는 그의 최근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부활 사건은 일요일을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예배일로 선택하도록 확정지었다.”1) 다니엘루(J. Danielou)에 의해 진술 되었듯이 “일요일에 이루어진 것은 ∙∙∙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주의 날에 일어나는 성찬예배 집회였다”고 주장된다.2) 이런 주장에 따르면, 사도들은 교회가 시작될 바로 그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의 첫째 날을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선택하여 그 유일한 주의 날에 주의 만찬 예식을 거행하고 주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101.1)
 만일에 부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모든 신약의 기록들을 면밀하게 연구해보면, 한편으로는 그 사건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3)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기념하도록 하는 특별한 날과 관련된 징후를 찾을 수는 없다. 헤롤드 리센펠트(Harold Riesenfeld)가 주목하고 있듯이, 사실상 “복음서에 나타난 부활과 관련 된 이야기들 속에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그 발생된 날인 주일 중 첫째 날에 기념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언급이 없다.4) 더욱이 같은 저자가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신약성서의 기록에서 주일 중 첫째 날이 결코 ‘부활의 날’로 불리지 않는다. 그 용어는 이 후에 출현된 것이다.5) 그러므로 맥카슬랜드(S. V. McCasland)가 설득력 있게 진술하고 있듯이, “예수께서 그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일요일을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악순환논증(petitio principii)이 되어버리고 마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경축 의식은 월례 또는 연례행사로 적합할 것이며, 그렇게만 해도 그것이 여전히 그 특별한 날에 대한 의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6) (101.2)
 주의 만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만찬”(κυριακόν δειπνον)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나타난 유일한 기독교 예배이자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날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의 날”(κυριακή ημέρα)을 결정짓게 한 요인이 된 것으로 주장되고 있지만, 사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이 만찬은 주간의 한 특별한 날에 거행되어지지도 않았고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서 이해되어진 의례도 아니었다.7)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동일한 사건에서 나타나는 두 행위이기 때문에 적절히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논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 받은 것”(고전 11:23)을 전한다고 주장한 바울이 이 예식을 그리스도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 11:26)이라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8) 바울의 주장을 고려할 때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그의 희생과 강림을 기념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분명하다.9) (102.1)
 같은 장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방법에 관하여 고린도교인들에게 가르치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나 모임의 시간과 관련된 질문에서는 그 장에서 “너희가 함께 모일 때”(συνερκομένων, 고전 11:18, 20, 33, 34)라는 표현을 네 번씩이나 반복하므로, 그 시간이나 날짜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음을 함축해서 보여 준다. 만일에 주의 만찬이 실제로 일요일 저녁에 거행되었다면 바울은 네 번씩이나 그것을 거행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그 날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일요일이 이미 그들이 모였던 거룩한 시간을 언급하는 “주의 날”로 간주되고 있었다면, 바울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동안에 보다 경건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더 강력하게 호소하고자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주님께 속한”(κυριακός, 그는 20절에서 그 만찬의 속성을 정의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는 형용사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일요일에 적용하지 않았다. 사실 이후에 살펴볼 같은 편지서의 한 구절에서도 바울은 그 날을 단지 유대인들에 의해서 명명되는 “주일의 첫 날”(고전 16:2)이라고만 언급한다. (103.1)
 주의 만찬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거행한 마지막 만찬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만찬이 거행된 때에 대해서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다르게 명시하고 있지만,10) 그리스도께서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셨다는 것은 4복음서 모두에서 일치한다. 하지만 그 때 그리스도는 그 의식에 새로운 의미와 형식을 불어넣으셨다. 유월절 예식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강조하신 주된 요소는 그의 부활이 아니라 속죄와 죽으심이다. 그는 빵과 포도주에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제공하는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의의가 있다고 하신다(마 26:28; 막 13:24; 눅 22:15, 17, 19 비교). 복음서에는 유월절 만찬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주시고자 하실 뿐만 아니라 매주일 그 축제를 재 현하도록 하고자 하셨다는 암시가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지정해 주신 유일한 시간은 “내가 그것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마 26:29; 막 14:25; 눅 22:18 비교)라고 하는 것이다. (103.2)
 이와 유사하게 신약성서 이후 곧바로 나타나는 문헌들 속에서도 부활이 주의 만찬을 거행하기 위해서나 일요일을 준수하기 위한 우선적 이유로 인용되지 않는다. 교회의 법률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자료로 여겨지는 디다케(Didache, 70-150년 사이)는11)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방법에 대해 세 장에 걸쳐 분명하게 다룬다(9, 10, 14장). 잔과 빵을 제공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축도는 생명과 지식, 교회 연합, 믿음, 불멸, 창조, 음식 등에 대한 언급으로 구성된다(9, 10장).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암시는 없다. “신약성서 외에 우리에게 전해진 초기 기독교 문서로 알려진”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클레멘트의 서한(A.D. 95년경)에는12) 네 장에 걸쳐서 부활의 주제를 다룬다(24-27장). “부활이 있게 되는 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의 첫 열매가 되셨다”(24:1)는 것을 고린도교인들에게 재확인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세 가지 서로 다르면서 효과적인 상징들을 사용 한다. 밤낮의 순환, 씨의 재생적 순환(24), 피닉스의 시체로부터 또 다른 새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신화(25)가 바로 그 상징들이다.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될만한 상징들인 주의 만찬과 일요일 예배 등이 생략된 것은 실제로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만찬 예식이 이미 일요일에 거행되었고, 그것이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것으로 정말 받아들여졌었는지 의문을 갖게 해준다.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로마의 감독인 클레멘트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미래의 부활에 대해서 재확신하도록 하기 위해서, 매주 일요일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부활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었겠는가! 하지만 클레멘트는 도리어 후에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발전된 이 의례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해진 때에 제공되는 희생과 예배”“주님께서 우리에게 수행하도록 명령하신 것들”이라고 말한다(40:2-4).13) 클레멘트는 유대인의 종교적 예식에 대한 그러한 심오한 경의와 애착을 드러냄으로써 안식일과 같은 유대인의 제도들을 철저하게 파기하지 않았으며, 잘 규정된 새로운 신학적 동기와 더불어 새로운 예배일을 채택하지도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수십 년 후에 기록된 이그나티우스, 바르나 바스, 유스티누스의 글 속에서 우리는 유대인 제도들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부활이 일요일 예배에 대한 부가적이고 이차적인 동기로서 제시되고 있는 소극적인 언급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14) (104.1)
 초기 문서 자료들 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부활 사건은 새로운 예배일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부차적인 역할로 인식되었는데, 이런 사실은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기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 있어서도 받아들여 지고 있다. 예를 들어, 모스나(C. S. Mosna)는 기록하기를 교부들은 4세기에 부활과 일요일 준수 사이에 “명백한 연결점이 있다”는 견해를 굳혔지만, “1세기부터 3세기까지 그 부활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고 했다.15) (105.1)
 유월절
 초기 교회가 유월절을 준수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최초에는 부활 사건이 그 유월절 축일과 명확한 연관성이 없었다는 추가적인 징후를 보여준다. 그 명절은 분명하게 일요일에 거행되지 않았다. 유월절 준수에 대한 명령은 신약성서에서 오직 한번 나타나는데, 고린도전서 5:7, 8이 그것이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16) (106.1)
 이 구절에서 유월절 의식의 동기는 명확하게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는 사실에 있는 것임을 주목하라. 부활과 관련된 그 어떤 언급도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구절은 제한적으로 유월절 명절에 대한 문자적인 준수를 지지할 뿐이다. 왜냐하면 데이비스(W. D. Davies)가 주목하는 것처럼, 바울은 여기에서 “기독교적 유월절을 위한 특별한 한 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명절로서의 기독교 제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17) 이것이 꼭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실존적으로 유월절을 준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바울 자신이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낸(행 20:6) 후,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갔”다(행 20:16; 고전 16:8)는 사실은 그 사도가 여전히 그의 삶 속에서 규범적인 성전의 전례 행사 목록을 존중하였고, 그 목록에 따라 삶의 일정을 조정하였음을 시사해준다. 게다가, 우리는 초기 교회의 관습을 직접 계승한 것으로 분명히 나타나는(유대인 계산법에 따라 니산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14일주의자들의 자료들로부터 유월절 명절이 사실상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준수되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의식은 마치 우리가 부활 사건이 발생한 그 실제적인 날을 기념하고자 의도된 것으로 기대하는 것처럼 일요일에 거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예레미야스가 잘 설명하는 것처럼, “요일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날짜에 의해서 유대인의 유월절과 같은 시간인 니산월 15일 밤에 거행 되었다.”18) (106.2)
 후에 검토할 한 내용에서 에피파니우스(A.D. 315-403)는 제안하기를, A.D. 135년까지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요일과는 상관없는 니산월 15일에 유대력을 따라서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이다.19) 그 정보제공자가 옳다면, 이 제안은 그 시기(서기 135년) 이전에는 부활을 존중하기 위한(년 1회든, 주 1회든) 기념일로 일요일을 제정할 필요가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07.1)
 이러한 결론은 유월절 의식을 언급하고 있는 초기의 두 문서에 의해서도 역시 지지되는데, 그 두 문서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보다는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외경인 “사도들의 서한”(Epistle of the Apostles, A.D. 150년경)의 에디오피아 번역본에는 기록되기를 “그러므로 너는 나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식, 즉 유월절을 거행한다”(15장), 콥틱 번역본에서도 그 구절은 기본적으로는 같다. “그리고 너는 나의 죽음을 기념한다. 만일에 지금 그 유월절예식을 거행한다면 ∙∙∙ ”(15장).20) (107.2)
 두 번째 문서는 사르디스의 감독이었던 멜리토(Melito)가 한 유월절에 대한 설교(Sermon on the Passover, A.D. 190년경))인데,21) 이 문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월절 의식의 의미에 대한 가장 해박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 감독은 그의 설교에서 상당히 수사학적인 방식으로 고대의 유월절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 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저자가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학가다(haggadah, 유대교 전승(傳承)중 전설, 민요, 설교, 주, 점성 따위로 율법적 성격이 없는 이야기)로 재현해 낸 출애굽 이야기(12:11-30)와 같이 여전히 성서적 배경을 두고 있음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 설교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주님의 고난”(58절)에 관한 것인데, 저자는 “양이 희생당하는 것”에 의해서(3, 4, 6, 8, 15, 16, 32, 33, 44절)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다른 많은 표상 속에서 그것이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58절) 것임을 이해한다. (108.1)
이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월절이 되신다.
이분은 많은 백성들 속에서 많은 것들을 끈기 있게 견디신 분이시다.
이분은 아벨과 더불어 살해당하신 분이시며
이삭과 더불어 희생양으로 묶이셨던 분이시며
야곱과 더불어 유랑생활을 했던 분이시며
요셉과 더불어 애굽으로 팔리셨던 분이시며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분이시며
어린양과 더불어 희생을 당하셨던 분이시며
다윗과 더불어 쫓겨 다녔던 분이시며
선지자들과 더불어 모욕을 당하셨던 분이시다.(69절)
이분은 살해당한 어린양이시다.
이분은 말이 없던 어린양이시다.
이분은 마리아에게서 나신 아름다운 암양이시다.
이분은 무리들로부터 유리 당하신 분이시며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 끌려가신 분이시며
저녁에 죽임을 당하신 분이시며
밤에 묻히신 분이시다.
나무 위에 달려 계신 동안 꺾이지 않으셨고
이 땅에 계신 동안 죽음을 보지 않으셨고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신 분이시며
인류를 지하의 무덤으로부터 들어 올리신 분이시다(71절).
(108.2)
 비록 멜리토는 그의 설교에서 부활을 약간 지나치듯이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유월절의 고난의 드라마를 결론짓는 결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사실상 설교와 그 의식의 반복된 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이다.22) 이것은 그 감독이 제시한 유월절 그 자체에 대한 정의에 의해서도 역시 분명하게 나타난다. (109.1)
유월절이 무엇인가?
사실 그 명칭의 유래는
다음의 사건들로부터 기인하는데—
유월절 의식을 거행하는 것(tou Paschein)은
고통을 당하는 것(tou pathein)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배워야 할 것은
누가 고통당하는 자인지
누가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고통을 당하는 자인지에
대한 것이다(46절).23)
(109.2)
 하지만 머지않아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연례 부활절 일요일 의식뿐만 아니라 매주 일요일 예배의 동기가 되는 일반적인 논거로 알려지게 되었다. 나중에 살펴볼 것이지만, 사실상 이 두 축제의식은 서로 다른 시간에 동일한 부활의 사건을 기념하는 하나의 기본적인 축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110.1)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약성서와 초기 교부들의 문학에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매주일 혹은 매년의 일요일 예배를 통하여 그 사건을 기념했다는 암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연례 기념축제가 되어 부활절 일요일에 지속된 유월절 의식이 처음에는 본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린 것이고,24) 일요일이 아니라 니산월 15일이라는 고정된 날짜에 거행된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도들의 시대에 일요일 예배가 기원했음을 설명해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할 수 없는 근거가 된다.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