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유사하게 신약성서 이후 곧바로 나타나는 문헌들 속에서도 부활이 주의 만찬을 거행하기 위해서나 일요일을 준수하기 위한 우선적 이유로 인용되지 않는다. 교회의 법률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자료로 여겨지는 디다케(Didache, 70-150년 사이)는
11)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방법에 대해 세 장에 걸쳐 분명하게 다룬다(9, 10, 14장). 잔과 빵을 제공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축도는 생명과 지식, 교회 연합, 믿음, 불멸, 창조, 음식 등에 대한 언급으로 구성된다(9, 10장).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암시는 없다.
“신약성서 외에 우리에게 전해진 초기 기독교 문서로 알려진”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클레멘트의 서한(A.D. 95년경)에는
12) 네 장에 걸쳐서 부활의 주제를 다룬다(24-27장).
“부활이 있게 되는 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의 첫 열매가 되셨다”(24:1)는 것을 고린도교인들에게 재확인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세 가지 서로 다르면서 효과적인 상징들을 사용 한다. 밤낮의 순환, 씨의 재생적 순환(24), 피닉스의 시체로부터 또 다른 새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신화(25)가 바로 그 상징들이다.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될만한 상징들인 주의 만찬과 일요일 예배 등이 생략된 것은 실제로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만찬 예식이 이미 일요일에 거행되었고, 그것이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것으로 정말 받아들여졌었는지 의문을 갖게 해준다.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로마의 감독인 클레멘트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미래의 부활에 대해서 재확신하도록 하기 위해서, 매주 일요일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부활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었겠는가! 하지만 클레멘트는 도리어 후에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발전된 이 의례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해진 때에 제공되는 희생과 예배”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수행하도록 명령하신 것들”이라고 말한다(40:2-4).
13) 클레멘트는 유대인의 종교적 예식에 대한 그러한 심오한 경의와 애착을 드러냄으로써 안식일과 같은 유대인의 제도들을 철저하게 파기하지 않았으며, 잘 규정된 새로운 신학적 동기와 더불어 새로운 예배일을 채택하지도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수십 년 후에 기록된 이그나티우스, 바르나 바스, 유스티누스의 글 속에서 우리는 유대인 제도들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부활이 일요일 예배에 대한 부가적이고 이차적인 동기로서 제시되고 있는 소극적인 언급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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