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1 장. 안식일:인간의 뿌리에 대한 기쁜 소식 II. 안식일의 기원에 관한 이설(異說)들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바침하기 위하여 안식일이 주로 사회적인 의미로 제시되어 있는 성경 구절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출애굽기 23장 12절34장 21절이 특별히 중요시되고 있다. 출애굽기 23장 12절에서는 “제칠일에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도록” 하라고 되어있다. 다음 34장 21절에서는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찌니라”고 하여 가장 바쁜 농사 철에도 제 7일을 쉬도록 명령하고 있다. (21.1)
 이 성경 구절들의 중요성은 이 구절들 속에 뚜렷한 신학적 동기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 귀절들이야말로 최초로 표명된 안식일 계명의 모습이라는 것이다.45 그 뿐아니라 이 구절들은 히브리민족이 광야에서 방랑하던 때에는 알지 못했던 생활의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가축과 노예들과 날품팔이들을 사용해야 하는 농업활동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새로운 사회적 요구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제정한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21.2)
 이러한 주장의 논리성은 부정하기 어려우나 문제는 이 주장이 부당한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인간적인 관심들이 신학적인 숙고나 구성에 선행(先行)하며 따라서 안식일을 엄격히 사회적인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는 모세 5경의 성경구절들은 최초의 안식일 준수 형태의 반영으로 보아야하며 그 대신에 안식일을 종교적 내지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의 연대는 훨씬 후기로 내려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46 (21.3)
 그렇다면 인간의 생명이 그렇듯 경시되던 시대에 이같이 인도주의적인 배려와 규칙들을 마련케한 동인(動因)은 무엇이었을까? 땅과 백성들에 대한 미신적이며 제의(祭儀)적인 이해를 가지고는 이같은 운동을 유도할 수가 없다. 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비의적인 미신들이 인권을 신장시킨 예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노예제도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을 느끼고 있지도 않았고 노예제도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기존 법를 제도를 이용하고 있던47 그 시대의 다른 민족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와는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들만은 안식일 제도로 말미암아 노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휴일과 또(노예로 전락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었던) 부채의 취소와 노예 해방의 동기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48 (21.4)
 안식일의 인도주의적인 기능은 신학적인 이유나 동기들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학적인 동기들이 항상 명확히 표시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안식일이 기본적인 민법이나 제의적 (祭儀的)인 법를들 속에 끼어있게 되는 경우는(출 23:12, 34:21)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민간 법전은 그 법를들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민법과 제식법의 다양한 법령들이 들어있는 출애굽기 23장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신학적인 사유(事由)가 들어있다. 사실에 있어서 이른바 “안식일 계명의 최초의 형태” 라고 하는 출애굽기 23장 12절“너희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출 23:9)하여 비특권층에 대하여 동정적 태도를 권고하고 있는 구절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21.5)
 야웨 하나님에 의하여 해방을 얻기까지의 애굽의 쓰라린 노예생활에 대한 이 호소는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게 하는 강력한 신학적 동기 부여가 아닌가?49 7일마다 맞는 안식일과 또 안식년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표시함으로써 자신들이 이미 받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 감사를 표시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매개물이 아니었을까? 아브람 허버트 루위스(Herbert Lewis)가 말했듯이 “사람을 위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50 이미 받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인식은 인도주의적인 생각을 하게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구성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진실인 것이다. (21.6)
 가장 일손이 바른 농사 철에도 가축들과 노예들과 노동자들을 안식일에 쉬도록하라는 말씀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하여 그 땅에 정착하고 노예들을 부리게 되었을 때에 안식일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다는 것을 뜻하는가?51 이와같은 결론은 두가지의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정착 이전에 유랑하는 목축민의 생활을 산 것이 아니라 사막의 변두리에서(필시 네겝 땅이 있을 것이다) 반(半) 정착의 유목민 생활을 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는 점이다.52 (22.1)
 두번째는 설령 이스라엘 민족이 사막에서 소도, 나귀도, 노예도, 경작지도 모르는 유랑하는 유목민으로 살았다고 한다해도, 모세와 같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선지자가 백성들의 직접적인 상황 넘어를 미리 내다보고 미래의 조건에 대처키 위한 법를들을 공포할 수가 없을었까? 필그림 파더즈(Pilgrim Fathers)들은 케이프 코드(Cape Cod)에 상륙하기에 앞서 여러해동안 플리모니 콜로니의 주요한 통치 헌장으로 이용될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에 서명하지 않았는가?53 왜 모세는 이와 유사한 선견지명을 갖지 말아야 하는가? (22.2)
 장(場)날들과 7이란 수(數). 가나안 정착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칠일 제도를 채택케 된 이유를 설명키 위하여 때때로 장날들이나 7이란 수(數)같은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끌어내곤 한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가나안 사람들에게서부터 전해 받았는가?54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 주장은 그럴듯이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가나안 백성들 가운데서나 또는 그들의 동족인 페니키아 백성들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안식일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55 (22.3)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장(場) 제도에서 안식일을 발전시켰는가?56 여러 민족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장날 제도를 보면 5일장, 6일장, 8일장, 10일장 제도들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팔레스타인에서는 정규적으로 장이 섰었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6일장이 섰었다는 흔적은 더 더욱이나 기대하기 어렵다. 그 뿐 아니라 사람들이 안식일에도 장사를 한다고 선지자들이 통박하고 있는 사실은 안식일이 장날에서 연유했다기 보다는 당시에 안식일이 장날로 타락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느 13:14-22, 렘 17:19~27, 암 8:5). (22.4)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대 근동 사람들이 7이라는 숫자에 부여한 상징적 중요성에서부터 자신들의 안식일을 이끌어 내었는가?57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7이라는 숫자는 그 숫자의 위망(威望) 때문에 봄과 가을의 축제 기간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가(무교절과 초막절의 기간이 7일이다) 나중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모든 기간을 측정하는 일반적인 단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58 (23.1)
 이 가설은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어찌하여 7이란 숫자가 위망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치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7일 주일의 계속적인 존재가 연례적인 7일간의 축제 기간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그 역(逆)의 현상 보다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다.59 7일의 주일 및 7일간의 연례적인 축제들과 7이란 숫자 사이에는 분명히 어떤 연관이 있다. 그러나 7이란 숫자가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천문학적인 시간 측정 단위들과는 어긋나고 있기 때문에 창조가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칠 일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는 성경의 설명만이 아직도 이 숫자의 중요성과 용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으로 존속하고 있다. (23.2)
 3. 바벨론 포로 기간 설(說)
 변혁인가 강화(強化)인가?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기간(605~539 B.C.)은 일반적으로 안식일의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대한 시기로 생각되고 있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60 일부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 기간에 안식일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부 다른 학자들은 포로 기간과 포로 이후의 기간을 안식일이 신학적으로 그리고 제식(祭式)적으로 발전하게된 전환기로 보고 있다.61 첫번째 주장은 바벨론 포로 이전에 안식일이 존재했음을 증거하고 있는 구약성경의 기술에 너무도 명백히 모순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신경 쓸 문제가 되지 못한다. (23.3)
 그러나 두번째의 주장에 대해서는 다소의 검토가 필요하다. 주장되고 있기로는 바벨론 포로가 적어도 두가지 면에서 안식일을 사회적인 제도(노예나 가축들을 위한 날)로 부터 종교적인 축제일(하나님을 위한 날)로 변경시키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 첫째는 고향의 땅과 품팔이 노동자들을 상실케됨으로서 안식일이 존재해야하는 사회적인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안식일의 신학적인 사유(事由)가 탐색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B. C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성소(聖所)를 상실하게 됨으로서 포로중에서도 지킬 수 있는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62 (23.4)
 

7이란 숫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어떠한 천문학적인 시간 단위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도 창조의 사업이 완성되었던 제칠일에 하나님이 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이 숫자의 중요성과 그 용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이 되고 있다.
(23.5)
 이 기간에 대한 구약 성경의 기록 가운데는 안식일의 변형 이론을 뒷바침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 활약한 선지자들은 안식일에 대한 혁신적인 신학이나 실천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예로서 에스겔은 안식일을 기념하는 새로운 방식이나 동기 유발을 지시하지 않았다.63 이와는 반대로 에스겔 선지자는 안식일에 대한 지난날의 모독이야말로 이스라엘을 덥친 재난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겔 20:15~16, 21, 36; 22:26, 31). 에스겔은 다시 안식일을 바르게 지키토록 하기 위하여 새로운 신학적 이론에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 관계의 표(겔 20:12, 20)라고 하는, 안식일의 역사적인 옛 의미에 호소하고 있다. (23.6)
 민족의 해체, 더 나가서는 민족 멸절의 위협이 상존했던 까닭에 안식일의 계약적인 기능이야말로 포로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에스겔은 안식일의 계약적인 의미와 기능을 포로의 경험을 통하여 생긴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하지를 않고 출애굽의경험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기원 속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신앙으로 제시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에스겔 선지자의 주장의 힘은 안식일의 전통적인 의미를 포로라고 하는 심각한 새 사태에 적용시키고 있는 데에 있다.64 (23.7)
 안식일은 성소(예루살렘 성전)의 상실로 인하여 거룩한 시간으로 발전되었는가? 그러나 안식일을 빈번히 성물(煙物)들(겔 22:26; 23:38)과 또 장차 있을 성전 봉사(겔 45:17; 46:1~4, 12)와 연관시키고 있는 에스겔에게서는 좀체로 이같은 암시를 찾을 수가 없다.65 국외추방을 당하여 예배의 전통을 박탈당해야 했던 바벨론 포로 기간은 이념이나 실천에 있어서의 급진적인 혁신 보다는 안식일 같은 제도들의 강화에 기여했다고 보여진다. 이점은 포로 기간의 에레미야나 포로 이후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행해지고 있던 상업 행위를 금지시키기 위하여 가르친 기별이나 그밖의 여러 조치들에 의하여서도 확인되고 있다(렘 17:19~27; 느 10:31, 33; 13:15~22). 이들의 목적은 안식일 제도를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악폐를 시정하는 것이었다. (25.1)
 물론 이 같은 관찰의 의도는 신구약 중간사(史)의 기간에 안식일이 크게 변모케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데에 있지 않다. 사실상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신 독점적인 선물로 여겨지고 있었다.66 이같이 배타적인 사상은 랍비주의적인 유대교와 종파적인 유대교로 하여금 안식일의 옳바른준수를 위한 광범위한 지침들을 발전시키도록 하였다.67 불행하게도 이 지침들은 복음서에 힘주어 강조되어 있는 바와 같이 참된 안식일 준수를 위한 영적 지침이 되었기 보다는 율법주의적 부담이 되고 말았다.68 그러나 이와같은 현상은 구약 시대 이후에 발생된 것이다.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