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이었지만 3년 반 동안 신계훈 목사님을 모시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幸運)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년 반 동안 스승을 따라다녔던 것처럼 원래 대학에서 가르쳐 주신 은사이기도 한 신 목사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었다. (8.1)
그러면서 그분의 지혜와 열성과 영성에 늘 감탄하곤 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영감적인 말씀과 글, 만나는 사람마다 감동을 한 아름씩 주어 보내는 그 자상함과 따뜻한 관심, 늘 지평선 너머를 보는 예지(叡智), 끼니와 잠자는 시간을 잊고 몰두하는 그 정열, 정말 살아갈수록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감동이 되는 분이었다. (8.2)
신 목사님께서 투병 중에 가장 안타까워하셨던 것이 “내게 1년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꼭 시편 강해를 마치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간절한 소원을 그렇게 되뇌이곤 하셨다. 타고난 문재(文才)탓이기도 하겠지만 성서 문학의 핵심이요 믿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 옛 성도들의 심전도(心電圖)라 할 수 있는 시편에 대한 애착이 무척 깊으셨다. (8.3)
그렇다. 시편을 읽으면 인간의 행복의 길이 있고, 내 몸과 영혼을 맡길 수 있는 목자를 만날 수 있으며, 가장 뼈아픈 회개가 무엇인지를 공감할 수 있다. 인간이 말할 수 없는 웅덩이에서 절망에 빠져 부르짖는 호소에 가슴이 함께 아리는 것을 체험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주적인 찬양대에 합세할 수 있다. 시편을 읽고 외우며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신앙을 가슴 뜨겁게 하는 길이며 글이 아니라 심장과 가슴으로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첩경이다. (8.4)
3년 반 동안 여수 출장을 여러 번 다녀왔으면서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던 오동도 한 번 모시고 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힌다. 그리고 홍천에서 횡성으로 넘어가는 길에 삼마치재를 지날 때마다 나와 동갑이던 남동생을 1 • 4 후퇴 때 피난 중에 폭격으로 잃었던 그곳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던 그 소원도 이루어 드리지 못했다. 늘 바빠서 다음 번에 다음 번에 하고 고속도로로만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9.1)
아아. 짧은 3년 반을 그분과 함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겪으며 보냈던 시간은 세월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추억과 함께 내 남은 인생에 채찍이 되고 손뼉소리가 될 것이다. (9.2)
2월 12일. 그분이 돌아가신지 벌써 3주기가 되는 날이다. 생전에 시조에 실었던 시편 강해를 모아 다시 작은 책자로 묶어 그 분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이 나눠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9.3)
혼자서 다녀온 여수의 오동도에는 동백꽃이 유달리 붉었다. 그분에 대한 추억과 함께 다시 읽는 시편의 구절들 위에 회한의 눈물이 어린다. 하늘에서 꼭 다시 뵙기를 ∙∙∙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