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2. 그리스도의 위격: 우리의 확증
 성경이 우리의 신앙의 확증의 기초이긴 하지만, 우리가 구원의 확증을 찾는 것은 바로 예수의 위격(person, 혹은 인격) 안에서이다. (29.1)
 예수께서는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구원의 확증을 성경—특히 자신들의 생애를 성경의 법과 규정에 일치시키는데 있어서—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셨다. 그는 그들이 성경을 수박 겉핧기식으로만 읽는 사람들이며 그것의 구속적 기별까지 간파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들은 심지어 메시야적 예언들조차 오용했으며, 그것들이 미래의 정치적 인물을 예견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근본적인 오해에 대해 유대 지도자들을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29.2)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 40).
(30.1)
 여기에 모든 시대를 위한 교훈이 있다. 우리의 구원의 확증은 한권의 책의 아닌 한 사람(인격)—예수, 곧 예언의 메시야와의 개인적 관계—에게 달려 있다. (30.2)
 이 구원의 확증을 얻기위하여 우리는 예수, 곧 성경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만 한다. 엘렌 G. 화잇은 편견 없는 통찰력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30.3)
메시야의 강림을 갈망하기는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사명에 대하여 참된 개념을 전혀 갖지 못하였다. 그들은 죄로부터의 구속이 아니라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압제자의 권세를 깨뜨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상 만국을 지배하는 나라로 높이는 정복자로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이 구주를 거절할 길이 마련되었다. ∙∙∙ 그들은 예언을 그들의 이기적 욕망에 일치되게 해석하였다.1)
(30.4)
 구원의 확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과 그것의 약속 이상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와 중심이신 예수—그분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30.5)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 9).
(30.6)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사랑하고 현재적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영적기쁨은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사도는 이 구원의 확증이 부활하신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온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진술함으로써 이 확신을 증대시킨다: “그[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벧전 1:3, 4). 그의 말은 구원의 확증이 예수의 인격과 그분과의 개인적 교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31.1)
 베드로는 히브리 선지자들이 메시야적 약속들을 연구함으로써 이런 기쁨과 확실성을 구했다고 선언했다(벧전 1:10, 11). 하지만 메시야의 사명의 두 국면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모호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예언 성취의 견지에서 자신의 고난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었다: (31.2)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 27).
(31.3)
 구약의 중심 기별은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메시야가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반면, 메시야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신약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중대한 질문은 나사렛 예수가 예언된 메시야라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깊이 확신하느냐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자기 제자들에게 물은 후, 예수께서는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메시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강조 첨가)라고 대답할 때, 그는 그에게 축복을 선언하셨다. (31.4)
 예수의 메시야직을 믿는다는 이 고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32.1)
 성경의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적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위격을 알 필요가 있다. 예수의 위격으로부터 그분의 사명을 분리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분의 사업에 영원하고 우주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그분의 신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G. C. 베르카우어(G. C. Berkouwer)는 그것을 잘 인지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이해, 즉 계시가 없이 그리스도의 사업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2)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메시야적 예언의 성취로서 우리에게 오시며 그 기초에서 우리가 그를 믿게 되길 원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이것을 아주 분명히 한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요 5:46, 47). (32.2)
 심지어 더 충격적인 것은 엠마오로 가는 실망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야직을 납득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사용하신 방법이다. 그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는 의도적으로 “[그들로] 눈이 가려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게 하시고 구약의 메시야적 예언과 상징에 관한 광범위한 성경 가르침을 주셨다(참조 눅 24:16, 27). 구약이 자신에게서 성취된 것에 대한 예수의 교훈은 그분의 신성한 위격과 사명에 대해 그들로 확신하게 했다. 그들의 눈이 열리고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33.1)
 곧 바로 부활하신 주님은 예루살렘에 모인 사도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자신의 부활의 실체들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그들과 함께 잡수셨을 때,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4, 45). (33.2)
 예수의 신성에 대하여 확증은 하나님의 영의 조용한 확신과 마음의 “뜨거움”을 통해서 예언의 말씀을 배우는 자에게 온다. 이 기쁜 확증은 어떤 일시적인 느낌이나 혹은 놀라운 사건이 아닌 성경의 그리스도에게 기반을 두고 있다. 제자들이 알았던 믿음과 기쁨은 믿음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기록되었으되”—에 굳게 기초를 두고 있다. (33.3)
 따라서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의 성취에 기초를 두고으며, 신약의 복음서들은 구속에 관한 구약의 약속들에 대한 놀라운 성취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약을 기독교 책으로 만든다. 베르카우어는 복음서들이 예수를 “전체 구약의—성취”로 본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이 결론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자료—몇몇 우연하고 인위적인 실례들이 아니라 도래하는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에게로 집중되는 포괄적인 증거—를 통해 분명해진다.”3) 이 놀라운 사실은 모든 성경이 예수의 신성한 메시야직을 선포하고, 또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 중심적 책이라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논증한다. (33.4)
 그리스도의 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