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히브리서 서문 서론-히브리서
 5. 믿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순례 백성을 특징짓는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남녀들의 행진 장(章)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상 믿음은 전 책을 통하여 강조되고 있다. 믿음은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으니, 곧 안 보이는 것을 보는 것과 소망을 현실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믿음은 능동적이요 역동적(力動的)인 것이다. 그것은 참을성 있게 견디는 것이다. 믿음은 신실(信實)한 것이다(Faith is faithful). (22.3)
 6.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우리의 안식의 상징으로서 히브리서에서 뚜렷하고도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안식일의 신학적 중요성과 초기 그리스도교에서의 안식일의 위치에 관한 통찰력을 가지고 3:6-4:10의 토론을 주의 깊이 연구한다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22.4)
 7. 재림. 순례자 사상과 그리스도의 하늘 사역(使役)을 매우 힘있게 발전시키고 있는 히브리서는 “그 날”(10:25)—그리스도인 순례자들을 그들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할 주님의 그 날—도 가리키고 있다. (22.5)
 참으로, 그리스도의 과거의 사역(갈바리)과 그의 현재의 사역(중보)은 그의 미래의 오심을 보증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9:27-28). 그리스도인 순례의 길이 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10:37). 한때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땅을 진동시키신 분께서는 다시 그 땅을—땅뿐만 아니라 또한 하늘도—진동시키실 것이다(12:26-27). (22.6)
 히브리서의 개요
 I. 예수의 탁월성 (1:1-4)

   더 좋은 계시 (1:1-4)

 II. 예수의 인격의 탁월성 (1:5-7:28)

   A. 더 좋은 이름 (1:5-2:18)

   B. 더 좋은 지도자 (3:1-4:13)

   C. 더 좋은 제사장 (4:14-6:20)

   D. 더 좋은 제사장직 (7장)

 III. 예수의 사업의 탁월성 (8:1-9:10)

   A. 더 좋은 언약 (8:1-9:10)

   B. 더 좋은 피 (9:11-10:18)

 IV. 예수의 업적에 의지하여 살아감 (10:19-13:25)

   A. 더 좋은 나라 (10:19-11:40)

   B. 더 좋은 도성 (12:1-13:25)
 영구적인 질문
 여러 해 동안 히브리서를 가르치면서 나는 다른 많은 질문들보다도 이 질문을 자주 들어 왔다: 누가 히브리서를 기록했는가? (23.1)
 「제임스왕역」에서 이 책의 표제어(標題語)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Hebrews)”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표제어는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 첨가된 것이며, 가장 오래된 제목은 단순히 “히브리인들에게(To the Hebrews)”이다. (24.1)
 사실, 「제임스왕역」의 표제어는 낱낱이 도전을 받아 왔다. 히브리서는 서신의 통상적인 흔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발신자의 호칭, 독자들, 허두의 인사말, 그리고 사적인 문제들. 우리가 보았듯이, 이것은 서신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기록된 설교이다. (24.2)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신원도 의문시되어 왔다. 몇몇 학자들은 독자들을 이방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견주어 보건대, 내 생각에는, 증거는 그들의 동족에 의한 거절의 고통과 아마도 조상들의 믿음의 의식들로부터 제외되는 것을 느끼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24.3)
 그러나 질문—누가 그것을 기록했는가? 하는—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자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억측들만 무성할 뿐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일찍이 2세기경에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서의 저자에 관하여 토의하고 있었다. 190년대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바울이 그것을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누가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결론지었다. (24.4)
 그러나, 몇 년 후에, 오리게네스(Origen)라는 학자가 그 문제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24.5)
만일 내 의견을 말한다면, 사상들은 사도의 것이지만 어법이나 어투는 사도의 가르침을 기억하였다가 그의 선생님에게서 들은 것을 시간이 한가할 때 다 기록한 누군가의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교회가 이 서신은 바울의 것이라고 주장하면, 그렇게 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옛 사람들이 그것이 바울의 것이라고 전수하여 주었을 때는 까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기록했는지는 진실로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 앞서 간 몇몇 사람들은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가 그것을 기록하였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기록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관하여는 이쯤 해 두도록 하라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6:25).
(24.6)
 이러한 문제들은 초기 교회의 가장 풀기 어려운 사실들의 하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히브리서는 신약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여진 마지막 책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하나의 책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도의 손에서 나왔거나 사도와 연관이 있는 누군가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백 년이 지난 후에야 바울이 저자라는 견해가 지배적이 되었고 히브리서가 만인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25.1)
 그러나 바울이 정말 히브리서 저자의 필연적 후보인가? 만일 바울이 아니라면, 그럼 누구인가? (25.2)
 나는 침묵의 논증들(arguments from silence)을 대할 때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바울이 이 걸작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히브리서를 기록했음에 틀림없다는 주장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이 히브리서를 썼을 가능성이 없다는 견해—이것은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음—도 역시 거절한다. 그들은 언어와 사상들의 큰 차이점들을 지적한다(히브리서의 헬라어는 바울 서신의 그것과 다르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의 저자는 자신을 사도라고 말하지 않으며(2:3-4; 13:6-7), 또한 율법 그리고 믿음과 같은 용어들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사용한 것과는 매우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25.3)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저자 문제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예언적 선물을 받았다고 믿는 엘렌 G. 화잇(Ellen G. White)은 여러 구절들에서 바울을 그 책의 저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녀는 단순히 “사도”로 언급한다. (25.4)
 바울의 것으로 인정된 서신들과 다른 점들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반면, 히브리서에서 그 서신들과 공명(共鳴)하는 것도 발견한다. 내 생각에 히브리서는 바울의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술과 관련된 몇 가지 다른 요인 때문에 그 생각은 속히 사라진다. 나에게 있어, 누가나 베드로나 아볼로나 브리스가(브리스길라)가 그것을 기록했다고 추측하는 것 보다 이 것이 훨씬 더 데이타(data) 감각을 갖게 해 준다. 이 책은 영감을 받은 책이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그리고 나—에게 힘있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작품이다. (25.5)
 마지막 질문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시점(時點)을 잡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추론은 60년대의 어느 때로 보고 있다. M. L. 앤드리어슨(M. L. Andreasen)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임박한 성전의 파멸에 직면했다고 하는 그 환경을 강하게 주장했는데, 그의 논리는 힘이 있다. 그리고 60년대 초로 연대를 잡는 것은, 물론,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라는 사실을 지지해 준다.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