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수난 주간의 금요일 없이는 창조주간의 제 6일이 다 밝혀지지 않으며, 겟세마네의 고뇌와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사람의 코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깊이와 넓이가 다 드러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는 만물 중에 그의 말씀과 사랑에 반응하는 한
“아들을 낳는”(
시 2:7) 경험이며, 이로 인하여 만유를 함께 모아 크게 잔치하는 일(
욥 38:7)이면서 동시에 하나밖에 없는 친
“외아들을 내주시는”(
마 16:34) 경험이었으며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는”(
눅 23:44) 사건이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깊은 의논과 교제가 발전하는 경험(
창 1:6, 7)이면서, 아들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마 27:46) 것 같은 사건이었다. 하나님이 마른 흙 같은 인생을 목마름 없는 생명의 강으로 인도하는 행위이면서, 그 자신이
“목마르고” 사망의
“신 포도주”를 마시는 경험이었다(
마 27장). 진흙의 사람이 흡입하고 생령으로 살아나게 된 그 호흡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머리를 떨구시고 영혼이 돌아감”으로써(
요 19:30) 우리에게 돌아온 호흡이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숨진” 호흡을 보기까지는 하나님이 흙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그 숨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십자가 사건이 발생하기까지는 태초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이 우리에게 미처 드러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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