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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사갈은 야곱의 아홉 번째 아들로, 첫째 아내 레아가 다섯 번째로 낳은 아들이다. 개인으로서의 잇사갈에 관해서 성경은 그의 출생을 언급한 다음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의 형제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가 임종시에 한 축복은 자아희생과 책임감, 온유하고 침착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의 생애의 내력을 보여준다. (327.1)
 야곱은 그를 두 개의 큰 짐을 지고 그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인내심이 강한 나귀와 같다고 비유했다. 이 나귀는 보통 동물이 아니라 건장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잇사갈의 성격의 강인함을 암시해주고 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리고 이 족장은 두 배의 짐을 지고서 자아희생의 생애를 걸어갈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창 49:14~15). (327.2)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갑절의 짐을 짊어지라는 요청을 받을 때, 불평하고 원망함으로 축복을 상실한다. 그러나 잇사갈은 예비된 아름다운 땅과 거기서 취하게 될 휴식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지탱하였다. 이와 동일한 희망이 오늘날에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지탱시켜줄 것이다. (327.3)
 므깃도 전쟁에서 보인 그들의 처신은 야곱이 임종시에 남긴 축복에서 묘사한 그의 성격이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삿 5:15). 여기 드보라의 기록을 보면 잇사갈은 바락보다도 더 큰 짐을 맡고 있었던 것 같다. (328.1)
 모든 지파들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윗을 추대할 때도 잇사갈은 같은 특성을 나타냈다. 잇사갈은 명확한 식별력을 가지고 있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가 200명”(대상 12:32)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무거운 책임과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을 대표한다. 그들은 스불론 사람들처럼 전쟁에 능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을 위하여 작전을 세우고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328.2)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품을 나타내는 데는 그리스도인 성품의 각기 다른 모든 국면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짐을 지는 사람들도 왕가(王家)인 유다나 레위 계통의 교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업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328.3)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144,000인 가운데는 이런 훌룡한 사람들이 12,000명이나 있을 것이다. (328.4)
 잇사갈의 자녀들은 힘써 일하며, 고생을 참고 용감무쌍하게 부지런히 업무에 종사하며, 전쟁엔 패배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 큰 용사”였다(대상 7:1~5).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비옥한 지역들 중의 하나를 유업으로 받았다. 그 땅은 동으로는 요단강과 연해 있었고, 북으로는 스불론, 남으로는 므낫세의 반 지파와 인접해 있었다. (329.1)
 성경에서 주목되는 여러 장소들이 잇사갈의 영토 내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바락과 드보라가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곳도 잇사갈의 땅에서였다(삿 5:19). (329.2)
 집이 협소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엘리사를 모실 수 없어서 추가로 방을 들여 그를 모실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수넴의 고귀한 여인의 집이 있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왕하 4:8~10). (329.3)
 그녀의 생애에 임한 풍성한 축복을 통하여(왕하 4:12~37) 그녀는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란 말씀의 진실함을 깨달았다. (329.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고, ∙∙∙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 앉”은 곳도 잇사갈의 경계에 있는 나인 성의 대문에서였다(눅 7:11~17). (329.5)
 그곳은 구주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발자취로 거룩하여지기도 했고, 마귀가 그 힘을 과시하기도 했던 장소이다. 사울이 무당을 찾아가 그의 생애의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여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밥이 되어버린 곳인 엔돌도 잇사갈의 땅이었다(삼상 28:7~25). 사울은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였으므로 죽임을 당하였다(대상 10:13~14). 오늘날에도 이와 동일한 전철을 밟는 사람은 같은 운명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 마침내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사 8:19~20). (329.6)
 에스드랠론의 비옥한 평야에 자리 잡은 이스르엘은 나봇을 살해한 악한(惡漢)의 고장이었다(왕상 21:1~19). 그리고 그 도시의 한 거리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먹었다(왕하 9:30~37). (330.1)
 23년간 이스라엘에게 평온을 주었던 사사 돌라는 잇사갈 지파 출신이었으며(삿 10:1~2). 24년간 북방 왕국을 다스린 바아사도 잇사갈 족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엘라는 그의 아들이었는데, 그도 그 아버지의 악행을 좇아서 시므리가 그를 죽임으로 왕권이 잇사갈을 떠나버렸다(왕상 15:27~34; 16:1~10). (330.2)
 잇사갈 지방은 이세벨 세력의 중심지로 그녀에 의해 도입된 바알 숭배는 그녀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330.3)
 잇사갈이 앗수르의 살만에셀에게 포로로 잡혀가기(왕하 17:3~6) 약 5년 전에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유월절 행사를 가졌다. 이때 잇사갈 지파는 참된 경배로부터 너무 멀리 빗나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결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얼마가 그 초청에 응하여 행사에 참석은 하였으나 그 의식에 참예하기에는 부적당한 상태였다. 히스기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것이 어떤 의식이나 형식보다 더 중요함을 충분히 알 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월절 음식을 먹도록 허락하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이때 여호와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쳐주셨다”(대하 30:17~20; 삼상 16:7). (330.4)
 요 약

 • 이스라엘의 자손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잇사갈 지파의 수는 64,300명이었다(민 26:23~25).

 • 잇사갈은 가장 비옥한 지역들 중의 하나를 차지했다.

 • 므깃도 골짜기와 에스드랠론 평야는 잇사갈의 경계 안에 있었다.

 • 3년간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돌라는 잇사갈 지파였다(삿 10:1~2).

 •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도 잇사갈 지파 출신이었다(왕상 15:27).

 • 잇사갈은 네 아들을 가졌는데, 그들이 그 지파를 이루었다(대상 7:1). (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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