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가? 앞에서 말했듯이 초림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기별이다. “회개하라 메시아의 시대가 가까웠다”는 기별이다. 메시아의 시대는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시대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기 위하여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실”이사야 61장 1-2절을 찾아 읽으셨다(눅 4:16, 17).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로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는 구절이다. (485.3)
 이 유명한 성경절은 다름 아닌 안식년과 희년의 기별이다. 안식일의 기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은혜의 해이다. 주님의 은혜의 날들이고 주님의 은혜의 달들이고 주님의 은혜의 해들이다. 안식일은 “하나님 나라”의 다른 표현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대표한다. 이같은 안식일은 여섯 날에 대한 심판이고 여섯 날의 구원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의 심판이고 세상 나라의 구원이다. 바벨론의 심판이고 바벨론 안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이다. 8․15는 일제와 친일파의 심판이고 일제 치하의 한 민족에게 구원이었다. (486.1)
 예수님의 메시지는 안식일의 나라가 오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안식년의 나라가 오고 있고 희년의 나라가 오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안식일의 하나님으로 부터 심판을 받아 안식일의 나라의 “바깥 어두움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가는”(마 8:12) 사람이 되지 말라하는 기별이었다. (486.2)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세상 끝 날에는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아서 묶어 불에 태우듯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들을 보내어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 나라에서 추려내어 불구덩이에 쳐 넣을 것”이라고 하셨다(공동번역, 마 13:40, 41). 그러면 거기서 그들은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셨다(마 13:42). 그때에 천국 복음 곧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은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 곧 안식일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2)고 하였다. (486.3)
 이와 같이 “세상 끝에는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마 13:49). 세 천사의 기별은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는” 기별이다. 곧 세 천사의 기별을 듣고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계 14:7) 사람들은 하늘 임금이 베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여 하늘 임금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 천사의 “영원한 복음,” 곧 안식일의 복음을 배척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늘 임금이 천사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둠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실 것이다”(마 22:13). (486.4)
 세 천사의 “영원한 복음”(계 14:6)은 하나님의 이같은 심판이 이제 이르렀다는 소식이다. “만일 어리석은 종이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 53:1) 하고, 또 “만일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고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마 4:49), 또 만일 사람들이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몰두하여 산다면”(마 24:38),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을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50, 51)는 소식이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는 날과 시간에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할 것이다”(마 24:36, 38)라는 소식이다. (487.1)
 안식일의 기별을 듣고도 마치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둔” 종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시는”(마 25:26) 하나님, 없는데서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산 자 같이 불러들이시는 창조의 하나님(창 1-2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그를 경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아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할 것”이다(마 25:30)라는 소식이다. (487.2)
 또 세 천사의 영원한 복음 곧 안식일의 복음은 회개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 새 삶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24)는 기별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는 너희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눅 13:25)는 것이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 13:28)는 기별이다. (488.1)
 세 천사의 기별과 안식일 기별
 그러면 세 천사의 기별 하나 하나가 어떻게 안식일 기별인가. 첫째 천사의 “영원한 복음은” 어떻게 안식일 복음인가.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11, 8) 하신 계명이다. 안식일 계명을 제시할 때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문구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문구 때문에 안식일은 십계명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장이 되는 계명이 되었다. 하나님의 인이 되는 계명이 되었다. 그런데 첫째 천사의 기별도 마차가지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두려워하고 존귀히 여기고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첫째 천사의 선포는 창조주 하나님의 서명이 들어 있는 포고인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경고인 것이다. 즉 안식일 하나님의 경고이고 안식일 계명의 경고인 것이다. (488.2)
 둘째 천사의 기별은 바벨론의 몰락의 경고이다. 여기에서 몰락하는 바벨론의 다른 영적 이름이 우상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 막 13:14; 계 17:4)이다. 요한계시록 17장 4절에서는 바벨론을 가리켜 분명하게 “가증한 물건과 그 음행의 더러운 것”이라 하였다. 바벨론은 영적 음행의 주체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을 짓밟는 주체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여자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을 더럽히는 영적 간부이다. 요한계시록 14장 8절에서 그의 구체적인 죄악들이 지적되고 있다. 곧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였던” 것이다. 요한 계시록 17장에서도 이 바벨론의 정체가 폭로되고 있다. 바벨론은 “큰 음녀이다”(17:1). (488.3)
 “땅의 임금들도 그 음녀와 더불어 음행했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계 17:2). “그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했다”(계 17:3). 무엇이 이 여자에게 참람된 이름인가. 이 여자는 어린양의 신부가 아니다. 음녀이다. 거룩한 언약의 여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여자는 음녀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가 세상에서 음녀로서 처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음녀라고 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음녀라고 쓴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는 열녀라고 쓴 의자에 앉아 있다. 열녀라고 쓴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이다. (489.1)
 음녀의 집에 열녀의 비각이 세워져 있다면 참람하지 아니한가. 적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 교회를 대표한다면 참람되지 아니한가. 큰 마귀 곧 적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로 행세하고 있다면 참람되지 아니한가. 이 참람의 주체가 바로 우상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거짓 선지자이고 적그리스도이다. 곧 바벨론이다. 계 18장에서는 이 바벨론을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라고 말한다(계 18:2).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취하는” 삶의 다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우상숭배의 삶의 표현이다. 우상 숭배의 정체를 폭로하는 표현이다. (489.2)
 그런데 우상숭배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가. 안식일 계명이 있다. 안식일 언약의 파괴가 곧 우상숭배이다. 우상 숭배를 무너뜨리는 능력이 안식일이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기별이다(마 4:10).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출 20:3)는 기별이다. 이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만이 하나님이라는 기별이다. 바로 안식일 계명의 기별이다. (490.1)
 그러나 안식일의 하나님의 신분이 둘이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이요 둘째는 언약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우상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천사의 기별에서 서명하신 하나님이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 둘째 천사의 기별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언약의 하나님이다. 우리를 당신의 여자와 자녀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만 특별히 아버지가 되시고 신랑이 되시는 거룩한 분이시다. 거룩한 언약과, 거룩한 맹세로 하나님은 우리의 여호와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자녀와 아내가 된 것이다. 안식일의 계명은 언약의 하나님의 계명이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아들이 되는 줄을 알게 하는 표”(겔 20:20; 계 20:7) 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을 우리로 알게 하는 표징(출 31:13)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에 의하여 거룩하게 구별된 자인 줄을 우리로 알게 하는 표징인 것이다. 둘째 천사가 전하는 하나님은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 안식일의 하나님이시다. 안식일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490.2)
 둘째 천사는 이 안식일, 언약의 안식일을 짓밟고 이 언약의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 언약의 여인과 자녀들을 짓밟는 바벨론의 임박한 멸망을 선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있는 그의 자녀들에게 “거기서 나오라,” “나와서 그 죄와 멸망에 참여하지 말라”(계 18:4)고 촉구하고 있다. 안식일 계명이 바로 그러한 계명이다. 탈출의 계명이고 해방의 계명이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계명이고 출 바벨론을 촉구하는 계명이다. 신명기 5장 15절을 읽어 보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는 까닭이 네가 애굽 땅에서 종노릇하였을 때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출애굽의 하나님, 그리고 출애굽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 하신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둘째 천사의 입을 빌어 호소하고 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재앙의 원형은 출애굽 때 애굽 땅에 내린 재앙이다. 이처럼 둘째 천사의 기별은 안식일의 기별이다. (490.3)
 셋째 천사의 기별도 “영원한 복음”이다. 안식일의 복음이다. 셋째 천사는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고 있다. 둘째 천사의 기별과 마찬가지로 짐승과 그 우상에 대한 경배의 정반대에 하나님의 경배가 있다. 짐승과 그 우상의 정반대에 창조주와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이 계시다. 짐승과 그 우상의 법의 정반대에 안식일의 계명이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안식일의 기별이라는 사실은 셋째 천사가 “짐승과 그 우상의 표”를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점에서도 분명해지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표이고 하나님의 자녀의 표이기 때문이다(겔 20:20). 안식일은 하나님의 이름이신 여호와의 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표이다. 우리를 부르고 택하고 거룩히 하는 하나님의 이름의 표이다. 우리가 그 이름으로 회개하고 용서받고 회개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의 표이다. 그런데 셋째 천사의 기별에는 짐승과 그 우상의 표가 있는가 하면(계 14:9) “짐승과 그 우상의 이름의 표가 있다”(계 14:11). 하나님의 이름의 표의 반대편에 그리고 그 적대적인 표로서 짐승과 우상의 표를 제시하고 있다. 짐승과 그 우상의 이름의 표를 말하고 있다. (491.1)
 뿐만 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은 짐승과 그 우상의 표를 받은 자의 형벌을 말하고 있다. 그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계 14:11)고 하였다. 반면 안식일 계명의 선물이 무엇이냐. 안식일 언약의 축복이 무엇이냐. 쉼이다(창 2:3; 출 20:8-11). 숨돌리는 것이다(출 23:12). 쉬어 평안하는 것이다(출 31:17). 안식일은 그 자체로 쉼의 날인 것이다. (492.1)
 셋째 천사는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여 그 짐승 표를 받은 자들의 반대편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세우고 있다(계 14:12). 하나님의 언약, 예수의 언약 안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일 언약의 백성들이 아니고 누구들이냐. 뿐만 아니라 셋째 천사는 “이제부터 주안에서 죽는 자들의” 축복을 말하고 있다(계 14:13). 그들의 받을 복을 말하고 있다. “성령이 가라사대 저희의 수고가 그치고 쉬리라”(계 14:13) 하였다. 주 안에 죽는 자가 누구냐. 주님과의 언약 안에서 죽는 자들이다. 주님과의 언약이 무엇이냐. 바로 안식일 언약이다. 그리고 그들의 누리는 축복은 바로 “안식일의 축복이다”. 안식일 안식의 축복이다. “수고를 그치고 쉬는” 축복이다. 그렇다. 셋째 천사의 기별도 안식일의 기별이다. (492.2)
 첫째 천사, 둘째 천사, 셋째 천사의 기별이 모두 “영원한 복음”이다. 하나 하나가 “영원한 복음”이고 전체로서 영원한 복음이다. 회개하여 천국을 맞이하는 기별이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용서를 받아 성령을 받는 기별이다. 회개하여 돌이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는 기별이다. 안식일의 기별이다. (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