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2 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제2장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요한복음 20:22의 부활하신 주님의 행동은 창세기 2:7의 창조주의 행동과 유사하다. 요한복음 20:22‘숨을 내쉬며’가 칠십인역 창세기 2:7‘불어넣으시니’와 동일한 단어인 에네퓌세센(ἐνεφύσησεν)이다. 이 단어의 기본형은 ‘불다’라는 뜻의 엠퓌사오(ἐμφυσάω)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20:22에 단 한 번 사용되었고, 칠십인역에서는 창세기 2:7을 포함해서 여섯 번이다.52 엘리야가 죽은 아이 위에 세 번 엎드려 숨을 ‘불어’(왕상 17:21 BHS에는 없음) 넣어 살려 주었고, 에스겔이 생기에게 대언하여 죽은 자에게 ‘불어서’(겔 37:9) 살게 했다.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하고(창 2:7)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발생했다. (366.1)
 요한복음 20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장이다.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셨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 20:17).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요 20:19)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던 부활일 바로 그 날 저녁이다. 주님은 그 사이에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그분의 희생을 하나님께서 가납하셨다는 보증을 갖고 제자들을 찾아 오셨다.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는 일이 이미 성취되었건만,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다(요 20:19). 그들은 십자가 희생의 영광스러운 의미도 모르고 낙담 중에 있었고, 풀이 죽어 있었다. 그리스도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더욱 정신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366.2)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낯 익은 목소리였다. 주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주님이 못 박힌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지니신 채로 나타나셨다(요 20:20). 인류를 향한 사랑의 징표로 손에 난 상처 자국은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 13:6). 그리스도의 평강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이제 이들은 걸어 잠근 문을 열고, 온 세상을 향해 나가서 외쳐야 한다. (366.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보좌 곁에 머물지 않고 즉시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원 받아야 할 이 땅의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대표자로 제자들을 세우셨다. 그들이 이 땅의 소망이다. 그들을 통해 마귀의 권세는 정복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이 사명을 위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십자가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요한을 제외한 제자들은 모두 주님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이 겁쟁이들이 어떻게 순교할 수도 있는 적대적인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듬직스런 맏형님 역할을 해야 했던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들 속에는 누가 크냐?라는 정신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367.1)
 새로 태어 나야 한다. 니고데모 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새로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새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제자들의 공동체가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는 일이 필요하다. (367.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에네퓌세센(ἐνεφύσησεν) ‘숨을 내쉬셨다.’ 엠퓌사오(ἐμφυσάω)의 부정과거형인 이 말씀은 주님이 단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행동을 하신 것을 뜻한다. 그 효력은 흙덩어리를 생령이 되게 하셨던 것 만큼이나 강력하다. 이 동일한 말씀을 우리는 창세기 2:7에서 보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367.3)
 ‘성령을 받으라.’ 라베테 프뉴바 하기온(λάβετε πνεῦμα ἅγιον). 이 말씀이 제자들을 살렸다. 에스겔 골짜기에서 죽어 오래된 마른 뼈다귀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부활시킨 그 주님이 성령을 주셨다(겔 37:9-10). 성령을 통해 제자들은 땅 끝까지 영원한 복음을 전할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메시아 공동체로 탄생하였다.53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 우리는 영적 부활을 경험하고, 초대 교회의 사도들처럼 신앙의 새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368.1)
 참고 문헌
 1.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예수 크리스투)이다. 칠십인역에 따르면 창세기 2:4‘하늘과 땅의 내력’‘헤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우라누 카이 게스’(ἡ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οὐρανοῦ καὶ γῆς), 창세기 5:1 ‘아담의 계보’‘헤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안드로폰’(ἡ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ἀνθρώπων)이다. 하늘과 땅의 내력은 천지 창조와 인간의 창조와 타락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되어 있는 단어를 숫자 값으로 나타내는 것을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한다. 다윗은 히브리어로 דוד (דוד, 달렛-와우-달렛)이다. 숫자 값은 ‘달렛(ד d) 4-와우(ו w) 6- 달렛(ד d) 4’이며 합계 14 (4+6+4)이다. 역사를 기간으로 구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주후 1세기 말과 2세기 초의 유대인 묵시록인 바룩 2서(2 Baruch)는 역사를 14개의 기간으로 구별했다. John Nolland, The Gospel Of Matthew: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W.B. Eerdmans, 2005), 87쪽; Craig S. Keener, 마태복음 1:17,’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New Testamen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3. 헤롯 대왕은 의심이 많아서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사람으로 생각될 경우에 누구든지 가차 없이 죽였다. 그는 제사장 아리스토볼루스 3세와 힐가누스 2세를 처행했고, 삼촌 요셉, 장모 알렉산드라, 아내 미리암과 자기의 후계지로 세운 아들 안티 파터를 죽였다. 헤로디움 요새에서 죽을 때 그는 국가의 지도적인 시민들을 여리고의 원형극장에 모아 자기 죽음에 맞춰서 그들을 전부 죽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로버트 스타인, 메시아 예수 (서울: InterVarsity Press, 2001), 81쪽.

 4. 마 3:17, ὁ υἱ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 ἐν ᾧ εὐδόκησα ‘호 휘오스 무 호 아가페토스, 엔 호 유도케사’; 창 22:2, τὸν υἱόν σου τὸν ἀγαπητόν ὃν ἠγάπησας ‘톤 휘온 수 톤 아가페톤 혼 에가페사스.’ 마태복음은 히브리어 성경, בִּנְךָ אֶת-יְחִידְךָ אֲשֶׁר־אָהַבְתָּ ‘빈카 에트-예히드카 아셰르—아하븟타’(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의 문장 형태를 따르지 않았다.

 5. 마 3:13-17; 막 1:9-11; 눅 3:21-22; 요 1:29-34.

 6. 로버트 스타인, 위의 책, 114쪽.

 7. William Hendriksen, Simon J. Kristemaker, Exposition of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2001), 226쪽.

 8. εἰ υἱὸς εἶ τοῦ θεοῦ (에이 휘오스 에이 투 데우)

 9. William Arndt, Frederick W. Danker, and Walter Bauer, ‘εἰ,’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277쪽.

 10. Barclay Moon Newman, Philip C. Stine, A Handbook On The Gospel of Matthews, UHS, 80쪽; Craig L. Blomberg, Jesus and The Gospels: An Introduction and Survey (Nashville, TN: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7), 224쪽.

 11. Franklin H. Paschall, Herschel H. Hobbs, The Teacher’s Bible Commentary: A Concise, Thorough Interpretaiton of the Entire Bible Designed Especially for Sunday School Teachers (Nashville, TN: Broadman and Holman Publishers, 1972), 591쪽.

 12. 예수님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다니엘서의 ‘인자 같은 이’가 자기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에 신성모독 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마 26:64-66.

 13. Robert A. Anderson, Signs And Wonders: A Commentary on The Book of Daniel, 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B. Eerdmans Pub. Co., 1984), 82쪽.

 14. 성소 건축물은 내부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성소라고 부른다. 문맥을 고려해야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다.

 15. 히 10:22, ① προσερχώμεθα μετὰ ἀληθινῆς καρδίας ἐν πληροφορίᾳ πίστεως ② ῥεραντισμένοι τὰς καρδίας ἀπὸ συνειδήσεως πονηρᾶς καὶ ③λελουσμένοι τὸ σῶμα ④ὕδατι καθαρῷ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원어 성경의 주 동사 ① προσερχώμεθα (프로세르코메다)는 ‘나아가다, 접근하다’는 뜻을 가진 προσέρχομαι (프로세르코마이)의 가정법 현재형으로 격려(horatory) 용법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자!’ 현재형은 지속적인 행동을 뜻한다. 우리는 중단 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②와 ③은 이렇게 격려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 것을 제시하는 완료형 분사이다. 완료형은 과거에 성취된 일의 효력이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② ῥεραντισμένοι (레란티스메노이)는 ‘정결하게 할 목적으로 뿌리다’는 뜻을 가진 ῥαντίζω (란티조)의 완료형 수동태 분사 남성 복수형이다. 이미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마음에 뿌려진 채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이미 우리의 ‘사악한 양심’으로부터 정결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아래 놓여져 있는 상태이다. ③ λελουσμένοι(렐루스메노이)는 ‘씻다, 목욕하다’는 뜻을 가진 λούω(루오)의 완료형 수동태(혹은 중간태) 분사 남성 복수형이다. ④ ὕδατι (후다티)는 ‘물’을 뜻하는 ὕδωρ (후도르)의 여격(與格, dative)이다. 이것은 장소를 나타내는 여격으로 ‘물 안에서’, 혹은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으로 ‘물에 의하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물’의 일차적인 의미를 침례로 생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로마의 군인 한 사람이 창으로 찌른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 나온 것을 목격한(요 19:34) 요한은 요한일서 5:6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두 번 씩이나 ‘물과 피로 임하신 이’라고 말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강조하고 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옷입는 경험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예식이다. 침례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그리스도가 구원하신다. 모든 침례식은 주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 씻음을 받고 세상에서 승리자로 거듭났다는 것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예식이 되어야 한다.

 16. ‘스아’는 고체의 부피를 재는 단위로

 17. Johannes P. Louw, Eugene Albert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the 2nd ed. (New York, NY: United Bible Societies, 1996), 1:609쪽.

 18. 창 18:14, μὴ ἀδυνατεῖ παρὰ τῷ θεῷ (메 아두나테이 파라 토 데오). 마 19:26, παρὰ δὲ θεῷ πάντα δυνατά (파라 데 데오 판타 두나타).

 19. Craig Blomberg, Matthew, NAC, 333쪽.

 20. Blomberg, Matthew, 366쪽.

 21. R. Alan Cole, Mark, rev. ed. TNTC, 259쪽.

 22.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행하셨음이라!’ οὕτως μοι πεποίηκεν κύριος (후토스 모이 포포이에겐 쿠리오스). ‘이렇게’(οὕτως 후토스)는 엘리사벳의 임신을 가리킨다. ‘포페이에에켄’(πεποίηκεν ‘행하셨다’)은 완료시제이며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을 취급하신 일이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한다.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다.

 23. 눅 1:27, 30, 4, 38, 39, 46, 56.

 24. 누가를 제외한 복음서 기자들은 막달라인 마리아를 마리암과 마리아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누가는 일관되게 그녀를 마리아라고 부른다(눅 8:2; 24:10).

   (1) 막달라인 마리암 Μαριὰμ ἡ Μαγδαληνὴ (마리암 헤 막달레네): 마 27:61; 막 28:1; 요 20:18.

   (2) 막달라인 마리아 Μαρία ἡ Μαγδαληνὴ (마리아 헤 막달레네): 마 27:56; 막 15:40, 47; 16:1; 요 19:25; 20:1.

 25. Carly Daniel Hughes, ‘Mary,’ NIDB, 3:823-827쪽.

 26. 히브리어 ‘테바’(תֵּבָה)는 ‘방주’(창 6:14; 7:1, 7; 7:23; 8:1), ‘(갈대) 상자’(출 2:3, 5)를 의미한다.

 27. οὐκ ἀδυνατήσει παρὰ τοῦ θεοῦ πᾶν ῥῆμα (우크 아두나데세이 파라 투 데우 판 레마)

 28. 이것은 J.J. Van Oosterzee의 말을 인용한 Godet(1875:1.95)의 책에 나오는 것인데 다음 책에서 재인용했다. Darrell L. Bock, Luke Volume 1:1:1-9:50, BECNT, 126쪽.

 29. ὅτι ἀπελύθη Ααρων (호티 아펠루데 아론). ‘아펠루데’(ἀπελύθη)는 ‘아폴루오’(ἀπολύω)의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 동사이다.

 30. William F. Arndt, Luke, Concordia Classic Commentary Series (Saint Louis, M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6), 91쪽.

 31. 고데(Godet)는 파수꾼의 이미지를 시므온에게 적용시켰다. Frederic Louis Godet, Edward William Shalders, M. D. Cusin,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St. Luke (New York, NY: I. K. Funk & co., 1881), 1:138쪽.

 32. Leon Morris, Luke, rev. ed. TNTC, 97쪽.

 33. John Nolland, Luke 1:1-9:20, WBC, 173쪽.

 34. James M. Freeman, 앞의 책, 25-26, 504쪽.

 35. H.D.M. Spence, The Pulpit Commentary: St. Luke, vol. 1 (Bellingham: Logos Research Systems, Inc., 2004), 246쪽.

 36. John Nolland, Luke 9:21-18:34, WBC, 785쪽.

 37. Flavius Josephus, ‘The Wars of the Jews, 6.9.3(420),’ The Works of Josephus: Complete and Unabridged, 749쪽.

 38. Robert Houston Smith, ‘Pella,’ ABD, 5:220쪽. 펠라는 트랜스요단의 고위 평탄면의 산지 속에 있는 있는 도시로 요단강 동쪽으로 5 킬로미터 약간 못되게, 갈릴리 바다 남쪽으로 32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타바카트 파\일’(Tabaqat Fah\il)이다. 펠라로 그리스도인이 피신한 이야기는 유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 3-5-3’과 에피파니우스(Ephiphanius, AD 377)의 ‘파나리온’(Panarion), 클레멘틴 위서(the Pseudo-Clentine) Recognitions 1-37, 39에 등장한다. 에피파니우스(Ephiphanius)는 유대 기독교 종파인 나사렛파(the Nazoreans, Pan. 29.7.7-8) 에비온파(the Ebionites, Pan. 30.2.7)가 펠라(Pella)에서 기원했다고 언급했다. D. G. Reid, ‘Pella, Flight To,’ DLNTD.; W. Harold Mare, ‘Pella,’ EDB, 1024-1025쪽.

 39. 창 2:8-10, 15-16; 3:1-3, 8(2회), 10, 23-24; 13:10.

 40. 요 2:5, ὅ τι ἂν λέγῃ ὑμῖν ποιήσατε (호 티 안 레게 후민 포이에사테). 창 41:55, ὃ ἐὰν εἴπῃ ὑμῖν ποιήσατε (호 에안 에미페 후민 포이에사테).

 41.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 열매의 즙을 가리키는 단어가 몇 가지가 된다.

   (1) 가장 보편적인 것은 야인(יַיִן)은 141회이며 ‘포도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액체가) 거품이 일다’(effervesce)는 사용되지 않는 어근에서 파생한 말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어원 미상의 외래어로 보기도 한다. 칠십인역은 이것을 오이노스(οἶνος)로 번역했다. 창 9:21; 수 9:13; 잠 20:1; 렘 25:15 ‘진노의 술(포도주) 잔.’ ESL 3196; Eugene Carpenter,‘יַיִן’ NIDOTTE, 2:439쪽.

   (2) 티로쉬(תִּירוֹשׁ)는 38회이며 ‘새 포도즙’인데 이것은 포도를 밟는 것에서 온 말이며, 20회가 곡식이나 기름 등 신선한 수확물과 함께 사용되고 호세아 4:11 외에는 어디에서도 술취함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칠십인역은 이것을 오이노스(οἶνος)로 번역했다. 신 33:28; 왕하 18:32; 잠 3:10; 슥 9:17. TWOT 2505.

   (3) 아시스(עָסִיס)는 5회이며 ‘향기로운 술’(sweet wine)로 번역이 되었다. 이것은 ‘짜다, 짓밟다, 밟아 짜다’는 뜻의 아사스(עָסַס)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찰십인역은 이것을 오이노스(οἶνος)로 번역했다. 아 8:2; 사 49:26; 욜 1:5: 욜 3:18(H. 4:18); 암 9:13. TWOT 1660a.

   (4) 셰카르(שֵׁכָר)는 23회이며 ‘독주’인데, ‘술 취하다’는 뜻의 샤카르(שָׁכַר)에서 파생했다. 레 10:9; 민 6:3; 신 29:6; 잠 20:1; 잠 31:4; 사 29:9. TWOT 2388a. 칠십인역은 셰카르(שֵׁכָר)를

     (가) ‘독주, 맥주’를 의미하는 아카드어에서 차용한 시케라(σίκερα) (레 10:9; 민 6:3; 28:7; 신 14:26; 29:5; 삿 13:4, 7, 14; 사 5:11, 12; 24:9; 28:7; 29:9),

     (나) 메두스마(μέθυσμα), ‘취하게 하는 음료’(삿 13:14; 삼상 1:15; 미 2:11),

     (다) 메데(μέθη), ‘술 취함’(잠 20:1; 잠 31:6)으로 번역했다.

 메데(μέθη)는 신약에서 눅 21:34; 롬 13:13; 갈 5:21 등 세 곳에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15‘소주’는 시케라(σίκερα)를 번역한 것이다. 칠십인역은 ‘독주’인 셰카르(שֵׁכָר) 외에는 모두를 오이노스(οἶνος)로 번역하여 발효하지 않은 포도즙과 발효된 포도주를 모두 같은 단어로 처리하였다.

 42. CWSDNT 746.

 43. 요 2:11, 18, 23; 3:2; 4:48, 54; 6:2, 14, 26, 30; 7:31; 9:16; 10:41; 11:47; 12:18, 37; 20:30.

 44. 그리스어로 물은 후도르(ὕδωρ), 물동이는 후드리아(ὑδρία)이다.

 45. 생수와 샘은 명사 ‘후도르’(ὕδωρ ‘물’)와 동사 ‘자오’(ζάω ‘살다’)의 분사형이 결합된 단어로 ‘살아 있는 물’을 뜻한다.

 46. G.K. Beale, D.A. Carson, CNTUOT, 452쪽.

 47. Elmer Towns, The Gospel of John: Believe and Live (Old Tappan, NJ: Fleming H. Revell Company, 1990), 155쪽.

 48. James M. Freeman, 앞의 책, 515쪽.

 49. CWSDNT 4215.

 50. SDABC, 5:979쪽.

 51. Beasley-Murray, John, WBC, 109쪽.

 52. 창 2:7; 왕상 17:21; 욥 4:21; 나 2:2; 겔 21:36; 37:9; 요 20:22.

 53. Beale, CNTUOT, 506쪽. (3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