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2 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제2장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358.1)
 창세기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358.2)
 주제 : 그리스도의 교훈, 생수 (358.3)
 요한복음 4:10‘생수’(ὕδωρ ζῶν 후도르 존)는 칠십인역 창세기 26:19‘샘’(ὕδατος ζῶντος 후다토스 존토스)과 같은 말이다.45 창세기에 야곱이 수가에숙곳 우물을 팠다는 기록이 없지만, 이삭에 대해서는 ‘생수의 우물’(φρέαρ ὕδατος ζῶντος 프레아르 후다토스 존토스, 창 26:19을 얻었다는 기록이 본 절에 있다. (358.4)
 요한복음 4:10‘생수’로 번역된 ‘후도르 존’(ὕδωρ ζῶν)은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다. 칠십인역에 이 구절은 두 번 나온다.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긴 붉은 암송아지를 사른 재는 시체로 더럽혀진 자를 정결하게 했다(민 19:17). 세상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께 굴복하고 여호와의 영광의 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빛 날 메시아 시대에 ‘생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솟아나서 동해와 서해로 흐를 것이다(슥 14:8). (358.5)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그녀의 죄된 삶을 흘러 넘치는 용서의 샘물에서 시원하고 깨끗하게 씻김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는 영혼을 살린다. 그녀는 그 동안 그리심산이 옳으냐 예루살렘이 옳으냐는 세기를 내려 온 케케묵은 사람의 유전 속에 질식하며 죽어갔지만 그리스도를 만나 신령과 진리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녀의 숨통이 터졌고 죽어있었던 영혼이 새 생명으로 활력을 얻었다. 그녀는 콸콸 샘솟듯 쏟아지는 구원의 기쁨을 갖고 그 이웃들에게로 달려갔다. 지금 구원의 복된 소식은 천하 사방으로 증거되고 있다. (359.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359.2)
 창세기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359.3)
 주제 : 그리스도의 교훈, 생수, 성령, 초막절, 므리바, 초청 (359.4)
 요한복음 4:11의 사마리아 여인이 ‘생수’(τὸ ὕδωρ τὸ ζῶν 토 후도르 토 존)를 발견했던 것처럼 칠십인역 창세기 21:19에서 하갈이 ‘생수의 샘’(φρέαρ ὕδατος ζῶντος 프레알 후다토스 존토스)을 발견했다. 두 여인은 모두 이방 여인이었고,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생수를 발견했다. 하갈은 물질적 생수를, 사마리아 여인은 영적 생수를 발견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서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마주 앉아 통곡하는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물을 발견하게 하셨다. (359.5)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자기가 생수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요 4:10). 그녀가 생수는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물 길을 도구 타령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가 생수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요한복음 7장에서 선포하셨다. (360.1)
 유대 민족은 생수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때에 광야 생활을 했던 것을 기념하여 초막절(티슈리월 15-21일, 현재의 9월이나 10월)을 지켰다. 초막절 기간 동안 매일 새벽에 제사장은 실로암 못에 가서 황금 주전자에 1.5 리터 정도의 물을 담아 와서 대제단의 서쪽에 가서 은으로 만든 대야 속에 물을 부었다. 대야 바닥의 구멍을 통해서 물은 빠져 나갔다. 제 8일은 특별한 안식일이었으며 이 의식이 초막절의 절정을 이루었다.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엄숙하게 물을 부은 것 때문에(사 12:3) 초막절은 종말론적 소망들과 연관되었다(슥 14:16-19). 요세푸스(Ant. 8.100)는 이것을「유대인들의 절기 중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거룩한 절기」라고 불렀다.’46 (360.2)
 이 의식에는 백성들의 노래와 함성과 나팔 소리가 수반되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 중에는 이사야 12:3도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47 ‘이 의식은 세 가지의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1)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에게 물을 준비해 주신 것에 대한 기념.

   (2) 늦은 비의 도래를 상징 함.

   (3) 메시아가 오실 때에 성령이 부어질 것을 대표 함.’
48

 예수님은 셋째 사실에 대해 백성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셨다. (360.3)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360.4)
 ‘성경에 이름과 같이.’ 이 의식 동안에 그들은 광야에서 반석으로부터 물을 얻은 사건을 상기시키는 성경 말씀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 출애굽기 17:6민수기 20:11이 있다. 이 두 장의 배경이 되는 므리바는 백성의 불평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인내심을 잃고 범죄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슬픈 추억의 장소이다(민 20:2-13). 장막절에 이 구절들을 낭송함으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축하하는 동시에 축복의 조건이 되는 순종에 대한 엄숙한 결심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4-6에서 므리바 사건을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신령한 음료를 광야 생활 동안 저들을 계속해서 따라 다녔던 신령한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얻어 마셨다. 그러나 다수가 악을 즐겨한 것 때문에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서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 (361.1)
 그들의 멸망은 마음 상태에 달렸다. 그들은 악을 즐겼다! 우상 숭배(고전 10:7), 음행(고전 10:8),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고전 10:9) 당하는 등, 죄의 목록을 바울은 열거한다. 그들은 날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쏟아지는 생수, 구름기둥과 불기둥 등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며 살다가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건만,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히 3:17)이 되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불평거리로 바꾼 그들, 그들의 마음 상태를 히브리서 3:12은 세 단어로 표현했다. ‘믿지 아니하는 악심,’ 카르디아 포네라 아피스티아스(καρδία πονηρὰ ἀπιστίας). (361.2)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 모든 문제의 주범이다. 마음을 고치려면 주님께로 가야 한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배경으로 놓고 생각해 본다면, 위대한 설교자를 알아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 4:19). 예배 장소가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이냐 하는 신학적 지식도 아니다(요 4:20). 심지어 막연하게 기다려 보는 메시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요 4:25). ‘지금’ 내가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갖고 있는가, 이것이 풍요로운 삶의 핵심이다. ‘그러나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요.’(요 4:23 쉬운성경). (361.3)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믿는 마음’이 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배’로 번역된 코일리아(κοιλία)는 신체의 소화 기관인 ‘위장’(마 12:40; 15:17; 눅 15:16), 생식 기관인 ‘자궁’(마 19:12; 눅 1:44; 11:27; 요 3:4)을 뜻한다. 이 기관들은 인간 속에 감추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코일리아(κοιλία)는 개인의 깊은 내면의 세계인 ‘마음’(요 7:38)을 의미한다. 유대인이 지켰던 손 씻고 식사하는 장로들의 전통은(마 15:2) 마음의 변화에 비교하면 허접 쓰레기에 불과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κοιλία)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7-20). (362.1)
 생수의 강에 대해서 요한은 부연 설명을 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9). 원어 성경에 ‘강’은 포타모스(ποταμός)의 복수형인 ‘포타모이’(ποταμοὶ)이다. 포타모스(ποταμός)는 ‘흐르다’(to flow)는 뜻의 포타조(ποταζῶ)에서 파생했다.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성령 충만을 제한하지 않으셨다. 믿는 사람 모두가 하나 하나의 생수의 강이 되어야 한다. 호메로스는 바다를 가리킬 때 포타모스(ποταμός)를 자주 사용했다.49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연합하여 죄와 사망의 세계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생수의 강 역할을 한다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사 11:9)이며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합 2:14)하게 될 것이다. (3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