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2 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제2장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요한복음 1:51창세기 28:12의 야곱이 본 사닥다리 꿈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요한복음 1:51에 기록된 ‘하늘,’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창세기 28:12의 동일한 단어와 평행을 이룬다. 창세기의 사닥다리는 요한복음의 인자이시다. 인자, ‘호 휘오스 투 안드로포우’(ὁ υἱός τοῦ ἀνθρώπου)는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즐겨 사용하신 명칭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분이 되셨음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요 14:6). 이 세상의 인간 자녀들과 하나 되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이 마련하신 최선책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었다(요 1:14). (352.4)
 ‘하늘이 열리고.’(τὸν οὐρανὸν ἀνεῳγότα 톤 후라논 아네오고타). ‘열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노이고’(ἀνοίγω)를 사용하여 ‘하늘이 열렸다’고 한 구절은 성경에서 에스겔 1:1; 마태복음 3:16; 누가복음 3:21; 요한복음 1:51; 사도행전 10:11; 요한계시록 19:11 등 여섯 번 나타난다. 개천(開天)은 구원의 역사 속에 특이할 만한 새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가 희망을 상실한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고(겔 1:1) 사람의 모양을 한 분이 찾아 오셨다(겔 1:26). 그 분을 통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아들(人子) 에스겔은 금강석같이 담대한 심령의 사람이 되어(겔 2:9) 백성들의 죄를 책망했고, 골짜기의 바짝 마른 뼈다귀처럼 패망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통해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부활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했고(겔 37:1-14), 여호와의 성전이 회복되고(겔 40-46) 죽음의 땅에 생명강이 흐를 것이라는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겔 47:1-12. 비교, 계 22:1-2). (353.1)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늘이 열렸다(마 3:16; 눅 3:21). 죄와 사망의 땅에 소망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베드로가 이방인을 위해 복음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을 때 또 하늘이 열렸다(행 10:11). 선과 악의 싸움을 결정적으로 끝내야 할 위기의 때, 교회가 하늘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께서 하늘을 여시고 백마를 타고서 구원자로 오셨다(계 19:11). (353.2)
 야곱처럼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자, 나다나엘처럼 정직하게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내는 그리스도인에게 오늘도 하늘은 활짝 열려 믿음의 새 역사를 기록하게 한다. (353.3)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354.1)
 창세기 41:5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354.2)
 주제 : 그리스도의 봉사, 가나의 혼인 잔치, 필요를 공급하시는 주님 (354.3)
 요한복음 2:5에서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한 말은 창세기 41:55에서 바로가 모든 백성에게 한 말과 같다. 요한복음 2:5‘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칠십인역 창세기 41:55‘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와 같거나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두 곳은 동일한 문장 구조로 되어 있다.40 대기근 때에 세상에 먹을 것을 제공한 요셉은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시는 위대한 공급자이신 예수님을 표상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가 어떤 문제든지 이야기하면 적절하게 해결해 주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요 2:5).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로 극상품 포도즙을 만드셨다. ‘포도주’로 번역된 오이노스(οἶνος)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와 발효된 포도주 모두를 가리킨다.41 (354.4)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기적을 ‘첫 표적’이라고 했다(요 2:11). ‘첫 표적’(ἀρχὴν τῶν σημείων 아르켄 톤 세메이온)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표적들의 처음’인데, 둘 째, 세 째 표적 등등으로 계속해서 표적들이 발생할 것을 암시한다. ‘처음’을 뜻하는 아르케(ἀρχή)는 연속되는 길의 ‘시작,’ 혹은 사건의 ‘시작’을 의미하며 본문은 ‘표적들의 시작’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42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에서 두 번째 표적으로 거의 죽게 된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만으로 고쳐주셨다(요 4:46-54). 이 기적은 아버지가 아들이 나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가던 순간에 발생했다.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요 4:52-53).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신다. (355.1)
 아르케(ἀρχή)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창조의 근본’(계 3:14. 비교, 골 1:18), ‘처음과 나중’(계 21:6, 22:13)으로 번역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발생시키신 효과적인 원인이시기 때문에 창조의 근본과 처음과 시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요셉은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미리 식량을 비축해 놓아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분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의 능력으로 어떤 것이든지 그 필요를 채워주셨다.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온갖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맛보는 새 역사가 ‘시작’된다. (355.2)
 요한복음에는 ‘표적’으로 번역된 세메이온(σημείων)이 17회 나온다.43 이것은 예수님이 이 숫자만큼 표적을 행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을 단순한 초자연적 능력자로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세상에 두기에도 부족할 만큼 표적을 행하셨던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 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히 4:16 표준새번역). (356.1)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357.1)
 창세기 48: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357.2)
 주제 : 그리스도의 봉사, 야곱의 우물, 진정한 예배 (357.3)
 요한복음 4:5에서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창세기 48:22에 근거한 것이다. 이 땅은 야곱이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던 곳으로 그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창 33:17, 19)다. 이곳에서 야곱의 딸 디나 사건이 발생했다. (357.4)
 가축을 기르는 일에 물은 필수적이다. 수가의 야곱의 우물 곁에서 주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셨다. 이곳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통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이곳을 피해 먼 길로 돌아가는 부정한 땅,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예수님은 최초로 자기가 메시아시라는 것을 공개하셨다(요 4:25-26). 예수님은 낮고 낮은 곳에 임하셔서 가장 좋은 것을 아낌 없이 주시는 참 좋은 구주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해야 할 장소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다(요 4:20). 하나님은 그리심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올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스도에 대해 목말라 하는 영혼에게 예수님은 오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신다. (357.5)
 ‘여자가 물동이를44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르되.’(요 4:28).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갖게 되었다(요 4:14). 그녀는 의문의 율법에 억매여 신앙을 짐처럼 여기게 했던 옛 물동이와 같은 사람들의 교훈을 내던져 버렸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의 심령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해방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쁨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에 이와 같은 신앙의 감격이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357.6)